[29년생 김두리] “미군들한테 뿥들래갔나 애로 애로 쓰고 있었어”
[29년생 김두리] “미군들한테 뿥들래갔나 애로 애로 쓰고 있었어”
  • 최규화 작가
  • 승인 2021.09.17 10:21
  • 수정 2021-09-17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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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19화. 남편을 찾으러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안강 구불암 거 올라오니까 어덥더라꼬. 그래 그 집을 찾아 드갔는 거야.” ⓒpixabay
“안강 구불암 거 올라오니까 어덥더라꼬. 그래 그 집을 찾아 드갔는 거야.” ⓒpixabay

그래서 즈그 차 태아준다는 거 안 타고 걸어왔다. 새복(새벽)에 아무것도 안 묵고 그양 갔제, 입에 갈풀이 끼고 배도 고프고 글터라꼬.

걸어오다 하이, 안강[경북 경주시 안강읍]꺼정 와도 차[버스]가 안 오는 거야. 포항서 안강꺼정 걸어왔는 게 아까워서, 버스비 그게 아까워서 삼통(줄곧) 걸어왔다. [남편 만나면] 돈 쫌 주고 올 끼라꼬, 머시나 사묵고 하라꼬 내가 돈을 쫌 빌래가지고 가주갔거든. 사람도 못 만니고 차비만 쓸라 하니까 그래 아까워서.

안강 구불암 거 올라오니까 어덥더라꼬(어둡더라고). 머여 우리 집에 와서 피란해서 갔는 사람이, “안강장 왔다가 목 마르거든 와서 물또 묵고 가고, 배고프거든 밥또 묵고 가고, 우리 집에 들오세이.” 하고 집을 갈치(가르쳐)주더라꼬, 그래 그 집을 찾아 드갔는 거야.

“하이고 피란 잘 해서 살았네, 신랑은 왔나, 으엤노(어떻게 됐나)?”

“날 여 하룻밤 재(재워)줄 수 있능교?”

“아이고 하룻밤 애이라(아니라) 이틀 밤이라도 자고 가라. 내가 그 공을 언제 할꼬[그 덕을 언제 갚을까] 싶으다.”

사람이 참 안면이 무섭더라, 야야. 그 집을 찾아 드가니까(들어가니까), 늘그이(늙은이)가 반가버가지고 날로 안고 그라더라. 부잣집이야, 그 집이. 손녀 들고(데리고) 우리 집에서 자고 매칠로 있었거든.

그래가지고 자라 하면서, 콩죽을 쏘(쑤어)가지고 한 그릇 갖다주더라꼬. 그게 목에 넘어가지를 안 하는 거야. 아침버텀(부터) 굶었는데도 그게 앤 넘어가더라. 요고만큼 떠묵고 몬 뭇다.

“앤 넘어가서 몬 묵겠니더.”

“그래도 무아라. 물에다 저져가지고[말아가지고] 마세라(마셔라). 집이 가지도 몬할따(못하겠다).”

오새 같으면 집에 전화라도 하제? 그때는 전화가 있나 뭐가 있노. 죽을 요만큼 똑 덜어서 물에다 저져가지고 마세라 하면서 주데. 그거를 마시고, 이튿날 아침에 새복에 먼동 틀메(틀 때) 앤 나왔나.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전쟁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전쟁기념관. ⓒ최규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전쟁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전쟁기념관. ⓒ최규화

느그 증조모[시어머니]도 집에서 걱정할 끼고, 느그 큰아버지[첫째 아들]도 걱정이 되고.

밥으는 해서 [아들을] 이붓(이웃)집에 맽기놓고 왔거든. 그 집에 아(아이)가 없어놔놓이 심심해놓이 그 집에 있지도 안 하고, 아(아이) 있는 집에 거 가 놀았어. 놀아놨디 그 집에서 밥을 줬더라꼬. 밥 묵고, 저녁 묵고 있으니까 할매[시어머니]가 데리고 가고.

느그 증조모는 미군들이 그마이 버글버글 끓는데 새복에 나갔는 사람이 안 오고 있으니까 걱정이 되는 거야[김두리 할머니의 구술에 따르면 당시 미군들이 한국 여성들을 붙잡아서 욕보이는 일이 많았다고 함].

아들[할머니에겐 남편]을 만내가지고 있으면 다행인데, 미군들이 그마이 허채서(곳곳에 흩어져) 있으니까 거 뿥들래갔으면 인자 다 봤다꼬[영영 못 본다고] 애로 애로 쓰고 있었어.

내가 어디 갔다는 거야 느그 이모할매[언니]자테(한테) 듣기는 들었겠지. 그래 갔으이 걱정하지 말고 있으소 했겠지.

그래도 해가 빠져(져서) 어더븐데(어두운데) 안 오니까, 미군자테 뿥들래갔는강 싶으기도 하고, 아들을 만나서 애(안) 오는강 싶으기도 하고, 만나서 그때꺼정 안 올 택은(리는) 없다 싶으기도 하고, 늙은이가 혼자서 얼매나 신경을 썼는가봐.

그래 집에 와놨디, 날로 뿥들고 우더라꼬.

“나는 야야, [아들을] 보고도 몬 머시 했는데[말을 못 나눴는데] 니는 만났나?”

“즈그는(저는) 보지도 모했니더. 거 친한 사람이라 하면서 나와가지고 이야기는 하는 거 보니까 [시어머니가 본 그 군인이] 맞는 거 같애도 모리겠니더. 날 띨라꼬(떼어놓으려고) 일부러 그라는지 모르겠니더.”

나제(나중에) 느그 할아버지 편지 왔는데, 포항에서 내 만낸 그 사람이 와서 이야기해주더란다.

“니 편지 금방 해라. [부인이] 내 말로 믿지를 않았는 것 같으니까, 편지 할 때, 날 만내가지고 느그 마누라 안부 들었다는 거로 말해레이. 느그 마누라 속 쓰이니까 편지 금방 해라.”

그래서 내가 살어 있는 줄 알았단다. 나제 느그 할배가 할매[본인]인데 “나는 꼴짝(산골)에 처박혀서 바보인 줄 알았디, 온바보는 아이네. 어예(어떻게) 그래 말할 줄 알았노?” 그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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