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18화. 무작정 포항으로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한국전쟁 당시 전투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전쟁기념관. ⓒ최규화
한국전쟁 당시 전투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전쟁기념관. ⓒ최규화

느그 할배[남편] 군대 가고, 일곱 달 동안 편지도 없었다. 편지도 한 장 일곱 달로 걸려서 왔제, 살아 있는강 얼굴 한번 보면 얼매나 좋겠노, 그제?

그 먼저는 한번 느그 증조모[시어머니]가 장 간다고 갔어. 군인들 부대가 이래 이동한다고 차 타고 가는데 웬 군인이 “엄마!” 하면서 손질[손을 흔드는 일]을 하더란다. 시어머니는 못 봤어. 아는 사람이, 웬 군인이 저래 손질을 하는공 싶어가지고 보고 [시어머니한테] 말로 해줬단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허브고 뜯고[악착같이] 차를 따라갔단다. 그래 따라가니까 대장이 탔는 차가 서우더란다(세우더란다). 근데 세워서 있으이, 뒤에 오는 차가 다 서는 거야. 이래서 차 밀려서 안 되니까 가자 하고 다부(다시) 가더란다.

“엄마, 내 앤 죽고 살았으이 집에 가소! 상회[남편 이름] 살어 있다!”

느그 할배가 그래 거서 괌(고함)을 지대메(지르면서) 손질을 하더란다. 얼굴은 앤 비고(보이고), 느그 증조모도 말소리를 들으니까 아들 말소리 같은 거지. 그래 어디 가서 주둔할랑공 싶어가지고 허브고 뜯고 따라가이 마, 포항으로 삼통(줄곧) 빠져뿌렀는 거야.

그래서 느그 증조모가 소문 듣는다꼬 그날 집에 안 오셨어. 그래 누구를 만내가지고, 포항 가서 주둔한다꼬, 배 타고 저 어디로 가는데 포항 거 가 하루 잔다 하더라꼬 듣고 오셨는 거라.

느그 중간 이모할배[작은언니의 남편]도 그때 국도에 자갈 그거를 해서 길로 고룻는(고르게 하는) 부역을 했어. 자갈이 없는 데는 져다 붓고, 가예(가장자리에) 밀렸는 거는 마카(전부) 복판으로 끌어서 팬팬하이 하거든. 그래 느그 이모할배가 느그 할배를 봤다면서 말을 하더라꼬.

“동세[동서, 할머니의 남편]가 차 타고 가메 손질하더라. 포항 가서 있으이, 처제[할머니 본인] 오늘내일 거 포항에 가면은 만낼 꺼시더.”

그래가지고 [포항으로] 갔다. 새벽에 나서서 안강 머시[정류장]에 가서 포항 가는 차를 타고 그래 갔다. 차 타는 게 왜 이렇게 지업은고(지겨운가) 싶었다.

거 가서 내리니까 군인들이 마이 있더라꼬. 군인들이 마이 와서 주둔하고 있으니까 임시로 사무 보는 사람이 있더라꼬. 느그 할배 이름하고 주소를 가져가 가지고 거 들받았지(들이밀었지).

"군인들 이마이 마이 있는데 머 갔능교? 안 만내줄라고 그라는 거 아잉교?" ⓒpixabay
"군인들 이마이 마이 있는데 머 갔능교? 안 만내줄라고 그라는 거 아잉교?" ⓒpixabay

“그 사람들은 선발대라서 머여(먼저) 갔니더. 어제 갔니더.”

“여 다 있다 하던데……. 목소리라도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고 얼굴이라도 함 봤으면 좋겠니더. 어야든동(어떻게든) 쫌 찾어주소. 군인들 이마이 마이 있는데 머 갔능교? 안 만내줄라고[못 만나게 하려고] 그라는 거 아잉교?”

어제 갔다 해도, 내가 마 만내게 해돌라꼬 울며불며 떼를 썼다.

“그기 아이고, 그 사람들[선발대]은 어디 가도 머여로 가가지고 자리를 잡아놔야 그래 군인들이 다 가서 먹고 할 수가 있으니까 언제든지 선발대가 앞에 가야 되니더.”

“어제 머여 갔으면은 [남편] 아는 사람이라도 쫌 만내보도록 해주소. 무진(무슨) 소리든 이꺼정 와가지고 한마디 듣고 가야 되지, 이래서는 내가 돌아설 수가 없네요.”

그꺼정(까지) 허브고 뜯고 갔는데 소식 하나도 듣지도 몬하니까 어야노(어떻게 하나). 그렇게라도 머시 해야지[떼를 써봐야지]. 첩때는(애초에는) 찾아줄 생각도 없더라꼬. 선발대로 머여 갔다꼬만 하고, [나보고] 집에 가라 하더라고, 그라는데 내가 앤 가고 거 앉아서 앤 있었나. 앉어 있으니까, 그래 쫌 딱했는갑지.

느그 할배도 사무 보고 있었으니까 거 대장이 느그 할배 이름은 다 아는 거야. 이름도 대지만은 생긴 모습도 어떻게 어떻게 생기고, 딸린 식구가 엄마하고 내하고 아(아이)들하고 어떻다 하는 것도 다 말했다.

소소한 사람 같으면 그래 찾아주지도 안 한단다. 그래 그 사람이 일로 절로(이리로 저리로) 전화를 하더라꼬. 무전 있잖아. 그거를 가지고 연락하디, 그래서 느그 할아버지 아는 사람이라 하면서 하나 나왔드라꼬.

“편케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으소. 앤 죽고 살아 있다는 것만 알고 안심하고 가 계시소. 엄마인데(한테)도 그래 전해주고 있으이소. [새 주둔지에] 가면은, 자리 잡으면은 연락할 끼시더. 내가 가서 잘 전해드리께요.”

그래도 거짓말 같드라, 야야. 날 띨라꼬(떼놓으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그때는 버스가 몇 시간째 있어야 오는 거야. 그래서 자기네가 날로(나를) 차 태아준다 하더라꼬. 그래도 마 걸어가다가 타지 싶어서 머시[거절]해뿟다. 그때는 하도 세월이 바리(바로) 안 잡히고 그라니까, 차 태워서 어디로 보내뿔동 그것도 내 속으로 걱정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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