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트로피가 더 빛나는 이유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고 기자실에서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고 기자실에서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처럼 통쾌한 일이 또 있을까? 배우 윤여정씨의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이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윤여정씨의 오스카 트로피는 코로나로 우울하고 각종 사고로 흉흉한 국민들 마음에 기쁨과 희망을 선물했다. 74세의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이라니… 기적 같은 뉴스였다.

윤여정씨의 수상이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을 된 이유를 네 가지 키워드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절실함이었다. 이혼 후 두 아이의 양육을 책임져야 했던 윤여정씨는 가장으로 생활전선을 지켜야 했다. 배수진을 친 장수처럼 하루하루 생업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우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가장 잘 한다’거나 ‘너무 절실해서 대본이 성경 같았다’는 ‘작은 역이라도 돈을 준다면 고마웠고, 어떤 역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솔직한 말 속에 그 절박함 잘 드러나 있다.

두 번째는 버팀. 여성신문은 4월26일자 1642호에서 윤여정씨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 지명 소식을 전하며 그가 보여준 버팀의 미학에 찬사를 보냈다. 생활고가 심할 때도, 아이들이 잘 자라고 생활이 안정되었을 때도 오스카 수상을 한 이후에도 ‘죽을 때까지 민폐가 되지 않는다면 연기를 계속하겠다’고 말하는 배우다. 55년의 연기생활 동안 숱한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는 쉬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

우리사회에서는 어떤 성과를 냈을 때 ‘훌륭하다’고 말한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좋은 성적을 ‘승리’라고 말한다. 물량적 성과주의 틀 안에서 ‘버팀’이라는 역량은 평가받지 못한다. 그러나 한 인생을 지켜주는 건 꾸준하게 지켜나가는 버팀의 힘이라는 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우리 사회를 지탱시켜주는 것도 곳곳에서 묵묵히 자기자리를 버텨주는 힘이지 않은가? 이런 보이지 않는 버팀의 수행자들도 빛날 수 있다는 걸 윤여정씨의 성공이 보여주었다.

세 번째 키워드는 나다움이다. 윤여정씨의 버팀이 빛나는 건 자기다운 방식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버텨냈다는 데에 있다. 이혼 후 귀국해 연예계 복귀했을 때 이혼에 대한 편견은 대단히 심했다. 나이와 허스키 톤의 목소리 역시 당시 여성다움의 틀 속에 들어맞지 않았다. 획일적인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여배우’ 윤여정씨는 최악의 조건에 가까웠다. 그가 훌륭한 건 그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과 불이익을 기꺼이 겪으면서도 자기다움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민폐가 되지 않는 한’ 자기소신을 지키며 살았던 충직한 여성 배우가 세계 최고의 성공을 거두는 게 가능해진 시대가 되었다. 74세의 노장 배우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나답게 살면서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최고의 선물이다.

네 번째는 솔직함이다. ‘꼭 최고여야 하나? 최중하면 안되나?’, ‘경쟁하는 거 싫다’는 그는 자신을 멋있게 보이는 도구를 전혀 쓰지 않는다. 결코 꿈에도 특별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나이 때 불가피해 보이는 ‘라떼’ 증상도 솔직함으로 씻어 내렸다. 나이가 많지만 꼰대가 아니라서 젊은이들이 좋아한다. 윤여정씨의 입담이 좋다고 칭찬하며 그의 어록이 만들어졌다. 그의 말솜씨가 좋은 이유는 자기다움과 솔직함 때문이다. 거품이 없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고, 자기다움에 충실하므로 예리한 감성이 살아있기 때문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가 있는 것이다.

오늘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버티고 세상의 편견에서 나를 지키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을 사람들. 그들을 귀하게 여기기 바란다. 나 스스로 존중하라. 그들이 언젠가 최고의 트로피를 쥘 주인공이다. 윤여정처럼.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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