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엄마 과학자
나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엄마 과학자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1.05.03 10:44
  • 수정 2021-05-08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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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늘도]
바이러스와 싸우는 문성실 미생물학자
미국 애틀랜타서 바이러스·백신 연구중
두 아이 키우며 과학자·작가 활동도
최근 과학에세이 『사이언스 고즈 온』 펴내
미국 내 ‘아시아 혐오’ 대응 노력도
“일하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며
바이러스 무찔러달라는 아이들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야죠”

[엄마는 오늘도] 일, 육아, 나의 삶. 모두 잘 해내려 분투하고, 좌절하고, 다시 힘을 내는 워킹맘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멋지고 유능한 워킹맘’ 신화보다, 울고 웃는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비슷한 길을 걷는 여성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문성실 박사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14년째 백신 연구를 하고 있다. 사진은 문 박사가 그린 자신의 자화상. ⓒ문성실 박사 제공
문성실 박사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14년째 백신 연구를 하고 있다. 사진은 문 박사가 그린 자신의 자화상. ⓒ문성실 박사 제공

바이러스성 질병에서 인류를 구하고 싶었다. 감염/면역학을 전공하고 미국 애틀랜타로 건너갔다. 각국의 인재들과 14년째 바이러스 감염률과 치사율을 낮추는 방법을 찾고 있다. 지금은 아이들의 설사를 유발하는 로타바이러스의 백신을 연구 중이다.

문성실(41) 미생물학자의 프로필은 성공한 여성 과학자의 모델이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어떨까.

“반짝이는 롤 모델들을 따라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멘토이자 동료였던 언니들이 사라진 거예요. 과학자의 꿈을 품고 같이 대학원에 다니던 언니들이 결혼, 출산, 육아로 조용히 떠나버렸죠. 왜 아무도 이런 이야길 안 하지?”

그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문 박사에겐 남의 일이 아니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8년 ‘언니들이 사라졌다’라는 칼럼을 국내 최대 생명공학 커뮤니티 BRIC(포항공대 생물학전문연구정보센터)에 게재했다. 요지는 “언니들의 네크워크가 필요하다”였다.

“멘토이자 동료였던 언니들이 사라짐으로써 기울어진 운동장을 외롭게 뛰어온 세대가 지금의 30-40대 여성과학자이다. (...)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 여성과학계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완벽한 가정과 완벽한 환경 속에서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상적인 롤모델이 아닌, 깨지고 부딪히고 노력하고 고민하는 평범한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언니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후 여러 지면을 통해 과학과 젠더, 다양성에 관한 의견을 펼쳐왔다. 최근 첫 단독 저서, 과학에세이 『사이언스 고즈 온 : 바이러스와 싸우는 엄마 과학자』(알마)를 펴냈다. 큰애의 편지가 책 표지가 됐다. “엄마가 코로나19를 무찌르면 좋겠어요! (Dear Mom, I hope you defeat Covid-19!)”

문성실 미생물학자의 과학에세이 『사이언스 고즈 온 : 바이러스와 싸우는 엄마 과학자』(알마) ⓒ알마
문성실 미생물학자의 과학에세이 『사이언스 고즈 온 : 바이러스와 싸우는 엄마 과학자』(알마) ⓒ알마

일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책도 쓰려면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이 절실했다. “퇴근해서 애들 밥 차리면 하루가 가버려요. 글을 쓰면서부터 애들에게 ‘엄마 일하니까 한 시간만 있다가 올래?’라고 선을 그었어요. 그랬더니 애들이 자연스레 엄마의 일과 시간을 존중하더라고요.”

미국의 여러 일·가정 양립제도도 도움이 됐다. 아쉬운 점도 많다. “아이 낳으면 알아서 쉬어야 하는 게 미국입니다(편집자주 : 미국은 2021년 4월 기준 OECD 국가 중 출산휴가, 유급 육아휴직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유일한 나라다). 첫째 낳고 남은 휴가를 끌어모아 12주를 쉬었어요. 또 쉬지 않고 일해서 둘째 낳고 12주 쉬었고요. 젖먹이를 키우며 한 5년간은 책 한 권 볼 틈이 없었죠. 남자 선배가 ‘실험은 연구소에서, 논문은 집에서 쓰면 된다’는데 화가 났죠. 마음속으로 ‘넌 와이프가 있으니까 그렇지’라고 쏘아붙였어요.

그래도 유연근무제, 눈치 안 보고 휴가 쓰는 문화, 야근·회식을 권하지 않는 문화가 큰 도움이 됐죠. 연구비를 따냈으면 기한 내에 결과를 내놔야 하는데, 임신·출산 등 신상에 변화가 있으면 연기할 수 있어요. 한국에선 거의 불가능하죠. 미국에서 일하면서 ‘워킹맘’이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 없어요. 일하며 애 키우는 여성이 많으니 특별히 호명할 일이 없어요. 아이 키우며 회사 다니는 아빠들, 한부모도 많고요.”

코로나19가 어렵게 쌓아온 균형을 무너뜨릴 뻔했다. 미국 내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문 박사는 2020년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올해 8세·6세인 두 아이는 등교를 중단했다. 엄마라는 이유로 일과 돌봄을 모두 떠안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남편과 상의해 가사·육아를 분배했다.

문 박사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로 실험실에 자주 출근한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 대신 홈스쿨링 중이다. 낮엔 교육 종사자인 남편이 아이들을 가르친다. 저녁이면 문 박사가 퇴근해 남편과 교대한다. 문 박사는 남자도 요리, 빨래, 청소 같은 가사노동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과학자답게 다양한 ‘과학 놀이’도 함께한다.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섞어 ‘화산 폭발’ 실험, 생선을 사서 요리하기 전 손질하고 해부도를 그려보기도 한다. 공부에 흥미를 느끼는지 이것저것 스스로 찾아 배우는 아이들이 기특할 뿐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일하는 게 좋고 자랑스럽대요. 제가 모든 백신을 만드는 줄 알아요. 독감 예방접종하러 가자니까 ‘엄마는 왜 아직도 패치형 독감백신을 안 만들어서 내가 주사를 맞게 하냐’고 따지더라고요. 하하. 저도 애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죠.”

문성실 박사와 올해 여덟 살, 여섯 살이 된 두 아들. ⓒ문성실 박사 제공
문성실 박사와 올해 여덟 살, 여섯 살이 된 두 아들. ⓒ문성실 박사 제공
문성실 박사는 14년째 미국 애틀랜타에서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 ⓒ문성실 박사 제공
문성실 박사는 14년째 미국 애틀랜타에서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 ⓒ문성실 박사 제공

요즘 문 박사는 미국 내 ‘아시아 혐오 바이러스 확산’에 마음이 무겁다. 3월 애틀랜타 총격 사건 현장은 그의 직장에서 고작 15분 거리였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주변에도 공항에 파견됐다가 ‘코로나19는 너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은 연구소 직원, 코로나19 확산 초기 카페에서 살균 스프레이 세례를 받은 사람 등 차별과 폭력을 겪은 이들이 많아요. 제가 속한 재미여성과학기술자협회 동남부지부는 반아시아계 차별·폭력 대응 매뉴얼 제작, 교육프로그램 등을 만들 계획입니다. 직장 내 다양성위원회 활동에 참여하려고 해요. 얌전하고 고분고분한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려고요. 우리 아이들이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저희 세대가 똑바로 대처해야죠.”

아시아계 여성 과학자가 겪는, 더 두꺼운 ‘유리천장’ 고민도 털어놨다. “직장에서 직접적으로 인종차별을 당한 적 없지만, 조직문화는 확실히 백인 중심적이에요. 고위직에 여성은 백인뿐이죠. 아시아 여성은 한 명도 없어요. 연구자는 여성이 더 많은데, 관리자는 대부분 남성이고요. 회사에 ‘왜 여성 관리자가 없냐’고 물었더니 인재가 없대요. 게으른 태도 아닌가요.”

그는 “여성이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하려면 같은 여성은 물론 남성 동료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했다. “내 능력을 갈고닦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높이 올라가려면 여성들끼리 지지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해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중국인들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데 한국인은 그런 게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여성의 재능과 가능성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동료도 큰 힘이 돼요. 제가 존경하는 남성 상사는 제 논문 초안을 검토하면서 ‘당신은 선구자다(You’re the frontier)’라고 격려해줬어요. 자신감도 부족하고 영어도 서툴러서 힘들어하던 때에 큰 힘이 됐죠.”

다른 여성들에게 그는 “같이 걸어가자”고 했다. “우리 사라지지 말아요. 같이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가요.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요. 혼자선 못해요. 남편과 가족의 도움, 사회 전반의 변화도 따라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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