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피해자 SNS 폭로로 논란 점화
김 작가, 26일 반박 입장...법적 대응도 시사
“소설 속 인물과 에피소드는
작가의 경험과 상상 덧붙여 만든 허구
사생활 침해 주장에 동의 못해
명예 걸고 진실 밝힐 것”

김세희 소설가의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 ⓒ민음사
김세희 소설가의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 ⓒ민음사

김세희 작가의 소설 두 편이 사생활 침해와 아우팅(타인에 의해 성적 지향 또는 정체성이 공개되는 행위) 논란에 휩싸이자, 작가가 반박에 나섰다.

김 작가는 26일 법률대리인 법무법인(유) 지평 박성철 변호사를 통해 “소설 속 인물과 에피소드는 작가의 경험과 상상을 덧붙여 만들어낸 허구의 서사다. 특정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법적 대응도 시사했다. 

앞서 지난 23일 자신을 김 작가의 18년 친구라고 밝힌 A씨는 트위터를 통해 김 작가로 인해 아우팅을 포함한 3가지 피해를 겪었다며 폭로했다. 그는 자신이 “필요에 따라 주요 캐릭터이자 주변 캐릭터로 부분부분 토막 내어져 알뜰하게 사용됐다”며 자신을 비롯한 가족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A씨가 폭로한 작품 중 하나인 『항구의 사랑』을 출간한 민음사는 25일 SNS를 통해 입장문을 내고 “A씨와 작가의 입장 차이가 확연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A씨가 작가의 사과, 출판사의 후속 조처 등을 요구한 데 대해서는 “피해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품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26일 반박 입장문을 발표하고 “소설 속 인물과 에피소드는 작가가 삶에서 겪은 다양한 사람들과 경험을 모티프로 삼고, 여러 문헌과 창작물을 참고하면서 상상을 덧붙여 만들어낸 허구”라고 밝혔다. 

또 “수많은 외양과 성격의 특성, 일화와 대사 중 한두 개를 발췌하고, 더구나 특별한 개성이 아닌 보편적인 정형성을 드러내는 요소를 골라 특정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김 작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작가이기 이전에 친구로서 A씨가 고통받았다고 말하는 사실만으로도 수차례 사과했다”며 “A씨는 작품 회수와 수정을 강요하고, 출판사에 일방적인 주장과 비방을 담은 내용증명을 발송했고, 사적 대화까지 녹취하며 괴롭혔다. 작가도 더는 인내할 수 없었고 상처받고 고통받았다”고 호소했다. 

“분신과 같은 작품에 대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결과물이라는 공격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만큼 명예를 걸고 진실을 밝히며 대처하고자 한다”며 법적 대응도 시사했다. 아울러 “믿고 응원해주신 독자분들께 불편한 소식을 전해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작가로서 책임을 다해 소명하며 바른 이해를 구하고 온당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세희 작가가 26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 일부. ⓒ법무법인(유) 지평
김세희 작가가 26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 일부. ⓒ법무법인(유) 지평

아래는 김 작가의 입장문 전문.

1. 소설가 김세희의 법률대리인 법무법인(유) 지평 박성철 변호사입니다. 김세희의 소설 작품 ‘항구의 사랑’과 ‘대답을 듣고 싶어’가 특정인(이하 ‘A’로 칭합니다)의 사생활과 비밀을 침해하였다는 주장에 대한 입장을 말씀드립니다.

2. ‘항구의 사랑’은 소설입니다. 김세희가 쓴 글이지만 소설 속 ‘나’는 김세희가 아닙니다. 화자인 내가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민선 선배’, 세련되고 이지적인 단짝 ‘규인’, 팬픽이반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유년의 친구 ‘인희’, 후반부에 잠시 등장하는 지인 ‘H’ 모두 작가가 창작한 인물들입니다. ‘항구의 사랑’은 팬덤 문화, 동성애 문화가 퍼져 나갔던 2000년대 초반을 허구로 재창조한 소설입니다.

작가도 “나의 경험을 섬세하게 옮기기만 하면 소설이 될 줄” 알았으나 그런 방식으로는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그 여자를 허구의 인물 - 민선 선배”로 바꾸면서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항구의 사랑’ 작가의 말).

‘대답을 듣고 싶어’ 역시 소설입니다. 화자에게 소중했던 한 인물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심경을 담은 단편입니다.

소설은 허구입니다. 자전소설이라고 해도 허구라는 근본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화가 박수근과 1년여 함께 일했던 경험을 녹여 ‘나목’을 내놓았던 소설가 박완서는, 박수근이라는 한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더라도 소설이 허구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소설 속 화백과의 러브스토리도 실재하지 않았던 일이라고 밝혔습니다(‘나목’후기, 박완서의 말).

3. 소설 속 등장인물인 ‘인희’, ‘H’, ‘별’은 A로 특정될 수 없습니다.

‘인희’는 장편소설의 중심인물로서 여러 장면에 등장합니다. 각 장면에서 기술되는 ‘인희’에 대한 묘사와 설명은 확연히 A와 다릅니다. 그럼에도 A는 ‘칼머리’라는 외양을 근거로 ‘인희’가 자기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칼머리’는 ‘팬픽이반’으로 설정된 등장인물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외모입니다. “부치(남자역할)인 아이들이 주로 하는 머리 모양”으로 “앞머리는 길게 길러 옆으로 내리고 뒷머리는 짧게 잘라 옆에서 보면 마치 칼처럼 뾰족하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입니다. 10대 여성 이반문화에 대한 여성학 연구 논문에 소개되는 내용입니다. 2000년대 팬픽이반의 겉모습을 상징하는 묘사일 뿐입니다. 당시 유행했던 ‘칼머리’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칼머리’는 누군가를 특정하는 개성이 되는 징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구의 사랑’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이것은 내 이야기”,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시절 있었을 법한 소설 속 인물을 마주하면서, 동시대를 보냈던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을 추억했습니다.

A가 자신을 아웃팅했다고 주장한 인물은 ‘인희’가 아니라 후반부 한 챕터에 등장하는 ‘H’입니다. ‘H’는 소설 속 화자가 성인이 되어 알게 된 퀴어입니다. ‘H’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 인천에서 10대를 보내고 소설 속 ‘나’와 업무상 만나게 되는 에피소드 등 - 는 A와 완전히 다릅니다. ‘H’에 대한 정보로 A를 연상할 수는 없습니다.

‘인희’와 ‘H’는 같은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인데도 A가 ‘인희’이면서 동시에 ‘H’로 특정되면서 결국 A의 사생활과 비밀을 드러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대답을 듣고 싶어’ - ‘항구의 사랑’의 후일담 성격으로 쓴 단편 - 에 나오는 ‘별’은 더욱 더 A의 비밀을 알리는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별’은 ‘인희’나 ‘H’와 무관합니다. 화자의 고등학교 친구로 ‘별’의 어머니 직업만 언급됩니다. 인상착의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A의 사생활이나 비밀이 침해되는 사연이 없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 친구 ‘별’의 어머니 빈소에서 작품 속 화자인 ‘나’는 ‘민선 선배’의 죽음을 떠올립니다. 소설 속 ‘나’는 ‘민선 선배’를 애도하고, 친구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려왔다고 할 뿐입니다.

소설 속 인물과 에피소드는 작가가 삶에서 겪은 다양한 사람들과 경험을 모티프로 삼고, 여러 문헌과 창작물을 참고하면서 상상을 덧붙여 만들어낸 허구의 서사입니다. 현실에 기반했더라도 실존인물이 아닙니다. 픽션입니다. 한 캐릭터를 쌓아올리는 수많은 외양과 성격의 특성, 일화와 대사 중 한두 개를 발췌하여, 더구나 특별한 개성이 아닌 보편적인 정형성을 드러내는 요소를 골라, 특정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4. A는 작가의 오랜 친구였습니다. 작가로서는 A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작가이기 이전에 친구로서, A가 고통받았다고 말하는 사실만으로도 수차례 사과했습니다.

작가가 친구로서 거듭 사과하고 위로할수록 오히려 A는 더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애초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 사이라서 자신의 이야기가 작품에 스며들 수 있다고 말하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집요하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작품을 회수하고 수정하라고도 강요했습니다. 출판사에 일방적인 주장과 비방을 담은 내용증명을 발송해 공식 사과와 후속 조치를 재차 요구했습니다.

감내할 수 없는 요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작가는 친구인 A와 대화로 오해를 풀 수 있다고 기대하며 애를 썼습니다. ‘항구의 사랑’ 출간 직후 친구에게 책을 선물했고, 이후 친구는 반년간 누구보다 많은 격려와 지지를 보냈던 바 있습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희망하며 노력했지만, 끝내 화해하지 못했습니다. A는 그간 친구로서 나눈 대화까지 녹취했다고 알리며 퀴어친구를 착취한 잘못을 공개적으로 사죄하라고 강박했습니다. 그것이 작가로서 성장하는 길이라며 괴롭히는 데 이르자 작가도 더는 인내할 수 없었고 상처받고 고통받았습니다. 작가로서 쓰는 모든 글이 누군가에 대한 가해처럼 느껴져 창작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5. 소설가 김세희로서도 친구관계만을 생각해 물러설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분신과 같은 작품에 대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결과물이라는 공격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만큼 명예를 걸고 진실을 밝히며 대처하고자 합니다.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를 법의 잣대로 축소하고 싶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법적 판단을 받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이 아닌 허위에 기댄 위법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부득이 법적 조치도 취하고자 합니다. 작품을 둘러싼 억측이 허위사실과 뒤섞여 퍼져 나가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믿고 응원해주신 독자분들께 불편한 소식을 전해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작가로서 책임을 다해 소명하며 바른 이해를 구하고 온당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 4. 26.

법무법인(유) 지평

담당변호사 박성철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