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타이 한 봉지로 시작, 연매출 1조6000억원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하이타이 한 봉지로 시작, 연매출 1조6000억원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 박성희 전문위원 / W경제연구소 대표
  • 승인 2021.04.30 09:21
  • 수정 2021-05-04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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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의 W초대석] 구자관 (주)삼구아이앤씨 회장

도산아카데미 이사장 맡아, '정직과 애기애타' 도산정신 살려야
46세까지 집 없어 1년 6번 이사, 청소용제 만들다 불나 죽을 뻔
온가족 미국 이민, 혼자 돌아와 사업 몰두, 국내외 계열사 27개
“내 역할은 현장근로자 등 직원 모두의 자부심과 긍지 높이는 것”

여전히 청년이다. 열정과 패기 가득한. 온갖 고생을 다했다는데도 표정은 해맑고 웃음은 환하다. 구자관(77) ()삼구아이앤씨 회장은 기업의 근본은 직원이라고 강조하는 독특한 오너 경영인이다. 서울 중구 청계천로 시그니처타워 동관 사무실에서 만난 구 회장은 내 꿈은 직원들 모두가 행복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ㆍ

구 회장은 솔직했다. 회사는 물론 자신의 삶을 얘기할 때도 머뭇거리거나 비껴가지 않았다. “예순살에 용인대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했어요. 삼십몇 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지요. 졸업하고 서강대 경제대학원도 마쳤어요. 예순여덟, 국내 최고령 석사였죠. 논문 주제는 고령인력의 활용방안이었어요.” 당당하고 담백했다.

삼구아이앤씨는 글로벌 아웃소싱 전문기업이다. 지난해 매출 16000억원, 고객사 550, 6개 해외법인(미국, 중국 2, 베트남, 폴란드, 항가리) 등 계열사 27개에 직원만 38400명이다. 건물 등시설관리, 환경,보안, 배송, 물류,  생산, 판촉 등 업무 영역도 방대하다. 6만여 국내 아웃소싱업체 중 독보적 1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구자관 삼구 대표 ⓒ홍수형 기자
구자관 (주)삼구아이앤씨 회장 ⓒ홍수형 기자

 

새벽 4시반에 일어나 다음날 1시에 귀가

구 회장의 인생은 대하서사극이다. 운명의 폭풍과 파도에 쓸려가지 않고 꿋꿋하게 맞선. 그는 19447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외갓집에서 자랐다. 월사금을 못내 국민(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중학교 입학은 언감생심. 구두를 닦고 메밀묵을 팔면서 천막학교에서 영어와 수학을 배웠다.

중학 과정을 이수한 뒤 용문고등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새벽 4시반에 일어나 미아리 집부터 동대문 공장까지 걸어갔어요. 온종일 일하고 학교에 갔다 오면 새벽 1. 공장 주임이 걸핏하면 학교는 무슨이라며 구박했지만 꾹 참고 다녀서 졸업장을 받았죠. 주임한테 욕 먹기 싫어 그만뒀으면 오늘의 구자관은 없었겠지요.“

청소대행업체를 차린 건 1968. 제대 직후 도우미 아주머니 2명과 식당 청소를 시작했다. 삼구개발에서 삼구아이앤씨로 이름을 바꾼 건 2010. 이후에도 고생의 연속이었다. 81년 청소용제로 개발한 국산 왁스를 솔벤트에 녹이다 발생한 화재로 온몸 3분의 1에 화상을 입고 빚까지 잔뜩 졌다. 극단적 선택도 생각했다.

보다 못한 형이 미국으로 초청했어요. 1982년 이민 신청을 했는데 89년에야 비자가 나왔지요. 그 사이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덕에 형편이 폈지만 아이들 교육이 문제였죠. 부부가 함께 일하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했거든요. 유학을 보내자니 학비 송금이 만만치 않았어요. 결국 90년에 온가족이 미국에 갔다 저만 곧바로 돌아왔지요.”

결혼 전 한국은행에 다니던 아내는 미국에서 작은 실내 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평화시장에서 가져간 옷을 판매하는 등 사업능력을 발휘해 아들(본훈)과 딸(본아)을 잘 키웠다. 덕분에 그는 학비 보낼 걱정 없이 사업에 몰두했다. “언젠가 아들이 숙제라며 가훈이 뭐냐고 해서 스스로 해결하자라고 했어요. 지금도 각자도생합니다.”

1996년 서울 신대방동에 작은 사옥을 마련했는데 1년 후 외환위기(IMF)가 터졌다. 일감이 끊겼다. “직원들이 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직접 현장에 나갔어요. 2002년 회사가 정상화된 뒤 아내와 동생, 친구의 지분을 모아 고생한 사람들에게 나눠 줬어요.”  삼구아이앤씨 주식 47%가 임직원 몫인 이유다. 

구자관 삼구 대표 ⓒ홍수형 기자
구자관 (주)삼구아이앤씨 회장 ⓒ홍수형 기자

 

외환위기 후 직원들에 주식 47% 배분

삼구아이앤씨는 2015년 미국, 2016년 중국, 2019년 베트남에 진출했다. 2018년엔 연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2010년 1000억원을 넘긴 지 8년만이었다. 국내 영리법인 400만여 곳 중 매출 1조원 이상은 130여 곳. 하이타이 한 봉지로 출발한 회사가 대한민국 130대 기업이 된 셈이다. 구 회장은 이 모든 걸 직원들 덕으로 돌린다.  

회사가 여기까지 온 건 내 능력이 아니에요. 내가 봉급을 주는 게 아니라 현장 근로자가 관리자, 관리자가 임원, 임원이 사장, 사장이 내 봉급을 주는 거지요. 제 역할은 현장 근로자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일하기 편하도록 바람을 막아주는 거죠. 과거 학교에서 문과 담을 고치던 소사처럼요.”

경영철학 또한 사람을 중시하자는 것이다. ‘물이귀기 이천인(勿以貴己 而賤人, 내가 귀하다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라), 이자대이멸소(勿以自大以蔑小, 내가 크게 됐다고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 물이시용이경적(勿以恃勇以輕敵, 자신의 용맹을 믿고 적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명심보감 정기(正己)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삼구아이앤씨에선 현장근로자들에게 명함을 만들어주고 여성 근로자는 여사님으로 부른다. 구 회장은 또 산재를 막을 수 있는 조치라면 얼마가 들든 무조건 시행하라고 강조한다. 업계 1등이 됐지만 일류 회사가 되려면 사건 사고가 없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회사가 커진 만큼 경영 실무와 자금 집행은 총괄사장 등 계열사 대표들에게 맡기지만 인사와 신사업 두 가지는 직접 챙긴다. “직원 채용 때 4차 면접까지 해요. 보통 501이에요. 그렇게 뽑은 인재를 안 키우면 어떻게 해요. 총괄사장(동일범)이 공채 1기고 다른 계열사 대표도 모두 공채 출신이에요. 올해 공채 35기를 선발해요. 사업은 성공하기 어려워요. 그러니 내가 결정하고 책임도 져야지요.”

구 회장의 직함이 책임대표사원인 것도 이런 이유다. 그는 제 식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게 가장 싫다고 얘기한다. 삼구아이앤씨의 순익이 매출에 비해 적은 것도 직원 봉급과 복지 비율이 높아서다. 삼구아이앤씨의 대졸 초임은 4500만원. 상여금 지급 때면 총괄사장과 다투기도 해요. 사장은 가용자금을 축적해야 한다는데 나는 식구가 우선이거든요. 직원이 38400명이니 1인당 1만원만 덜 주면 연간 순이익이 46억원 이상 증가하지만 그러지 않는 거지요.”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구자관 (주)삼구아이앤씨 회장 ⓒ여성신문

순익보다 직원 봉급·복지 중시

구 회장에겐 또 두 가지 좌우명이 있다. ‘정직애기애타(愛己愛他, 나를 사랑하고 남을 보살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이다. 개인생활과 사업 모두에서 두 가지를 가장 중시한다. 지난해 11월 도산아카데미 이사장을 맡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산 선생도 도산 정신도 잘 모르는 듯해요. 기왕 맡았으니 도산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볼 작정이에요.”

그는 또 시간 엄수와 약속, 공부에 방점을 둔다. 회의시간에 1분만 늦어도 참석을 못하게 한다. “1분을 봐주면 2, 5분도 봐줘야 한다는 것. 매일 아침 하는 제자리뛰기 600, 팔굽혀펴기 50번의 횟수를 어기지 않는 것도 자신과의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덕분에 30년동안 체중이 같다.

독서는 야간고 시절부터 몸에 뱄다. “차비를 아껴 잡지 사상계와 거기서 추천하는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같은 고전을 읽었어요. 경영하다 보면 벽에 부딪힐 때가 많은데 그 벽을 뚫어주는 게 문학이나 철학이라고 봐요. 조찬만 한달에 18번 참석해요. 들은 강의도 또 듣지요.”

그는 또 40년 넘게 일기를 쓴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약속을 점검할 수 있어요. 새싹이나 얼음조각 등 계절이나 사물에 대한 느낌도 적어요. 간혹 단톡방에 올리면 시를 쓴다고들 해요. 감성은 좀 있는 듯해요. 제가 쓴 글에 곡을 붙인 그리움은 바리톤 고성현씨가 불러 음반도 냈어요.“

구 회장은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삼구아이앤씨의 상장을 준비 중이다. 인내와 뚝심, 끈기의 대명사인 그의 열정과 도전엔 끝이 없다. “연매출 2조원이 안되는데 성공이라고 하긴 그렇지요. 삼구는 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신용· 신뢰· 사람 세 가지를 갖춘다는 뜻인데 39란 숫자에 나름 의미를 둬요.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이 없도록 어린이집과 놀이터를 갖춘 39층짜리 사옥을 지으려 해요. 5년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모두가 다니고 싶어하고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그룹으로 키우고 싶어요.”

68세에 석사 따고, 70세 넘어 수상스키와 비행기 조종을 배우는 그다. 5년 뒤 삼구아이앤씨 사옥 준공식에 참석할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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