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국적 ‘공항 난민’,
난민신청 접수 거부 법무부에 승소
“환승객에게도 난민신청권 있다”
첫 고등법원 판결

난민인권네트워크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난민신청 접수거부 위법확인소송 선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난민인권네트워크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난민신청 접수거부 위법확인소송 선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한국이 최종 도착지가 아닌 경유지라는 이유로 난민 신청을 거부당해 1년 2개월 동안 공항에 갇혀 있던 아프리카 국적의 A씨가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번 판결은 환승객에게도 난민신청권이 있음을 분명히 확인한 첫 고등법원 판결이 됐다. 난민신청 접수 자체를 거부당하는 일이 법정에서 다뤄진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고법 행정11부(재판장 배준현)는 21일 A씨가 난민 신청 접수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무부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과 동일하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입국심사 대상이 아닌 공항 환승객에 대해 난민법, 출입국관리법 등 관련 법령에서 난민인정 신청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으나, 공항 환승객에게 법률상 난민인정 신청권이 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며 “그렇지 않더라도 조리상 난민인정 신청권이 있음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된다”고 결론 내렸다. 

1심 인천지법 제1-2행정부(재판장 이종환)도 지난해 6월4일 “법무부가 난민 신청을 접수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2월15일 고국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A씨는 환승객이라는 이유로 난민 신청조차 거부당했다. 출입국 당국이 그간 환승객이더라도 간이심사를 실시했으나, A씨에게는 난민신청서를 접수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A씨는 난민제도를 운영하는 한국에서마저 쫓겨난다면 결국 본국으로 송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공항 43번 게이트 환승구역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고국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얻은 지병은 공항에서 지내면서 악화됐다. 탈장 증세로 쓰러지기도 했다. 

A씨의 대리인단은 난민신청 접수 거부 관련 소송과 별개로 A씨의 구금 해제를 위한 소송도 제기했다. 지난 13일 인천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고승일)가 “환승구역에서 사생활 보호·의식주·의료서비스 등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처우를 전혀 받지 못했다”며 “A씨의 수용을 임시 해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A씨는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됐다. A씨는 현재 민간단체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지내며 그간 악화된 건강을 회복하는 치료를 받고 있다. 

A씨를 대리하는 이한재 법무법인 두루 변호사는 “이번 사례를 통해 절차를 가로막고 공항에 방치하면 ‘구금’에 해당하며, 난민신청을 위해 입국 자격과 같은 특별한 ‘자격’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출입국 당국의 탈법적 난민제도 관행이 중단되고, 공항 난민신청자에 대한 인권침해의 현실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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