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11화. 신랑의 옥살이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같이 거 어든 창고 같은 데 가서 갇해 있었단다. 형 동생도 서로 아는 척도 안 하고, 할 수도 없고, 서로 눈마 끔쩍거리고…….” ⓒpixabay
“같이 거 어든 창고 같은 데 가서 갇해 있었단다. 형 동생도 서로 아는 척도 안 하고, 할 수도 없고, 서로 눈마 끔쩍거리고…….” ⓒpixabay

내들(내내) 숨어 숨어 지내고 했는데, 육이오사변 나기 전에 머시[사건]가 또 있었다. ‘배락부대[벼락부대, 서북청년단]’라 하면서 와가지고, 손 곱고 쫌 뺀드리한(번들번들한) 사람은 마카(모두) 덮어 팼다. 마카 뺄개이(빨갱이)라꼬 덮어 팼는 거야.

느그 할배[남편]가 그날 나무(남의) 소를 얻어서 논을 갈았는데, 점심 먹고 쉰다고 있으니까 그놈들이 왔더라꼬. 그 사람들은 뺄개이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이야. [작가 : 국군이에요?] 국군이 아이고, 무진(무슨) 배락부대라 하면서 왔더라꼬.

너희 할아버지는 일은 해도 진짜 일꾼이 아이잖아, 그래놔놓이 손도 곱고 말굼하잖아(말끔하잖아), 좀 말수무레했거든(말쑥했거든). 그랬디 마 “이 새끼 뺄개이구나!” 하면서 뚜드리 패는 거야. [작가 : 손 깨끗한 거랑 빨갱이랑은 무슨 상관이에요?] 농사짓고 일하는 사람은 손이 꺼끄럽고(거칠고) 일꾼 같고, 뺄개이들은 그냥 돌아댕기고 묵고 노니까 손이 곱다 이거야.

그래 맞고 또 일을 했다. 하루 나무(남의) 소를 얻어놨으니까 일을 안 하고 우야노(어떡하나). 소죽 끼래(끓여) 먹여서, [땅을] 가다가(갈다가) 가다가, 아파서 몬 전디니까(견디니까) 소를 주인 집에 몰아다주고 왔더라꼬. 와서 그래 아팠다. 돌아와서 맻 날로 실컨(실컷) 앓았다.

육이오사변 나기 전에 무슨 일이 또 있었지 싶으다. 우리 집에서 밥 해줬는 거 먹고 갔는 그놈들[공산주의자들]이 저 안동 가가지고 철도경찰에 붙들랬나, 자수를 했나 그라더라꼬. 근데 우리 집 와가지고 밥 해주는 거 묵고 갔다꼬, 거서를(거기서) 마카 말을 했나 보더라고.

한날(어느 날) 파계[경북 영천시 고경면 파계리] 동장이 와서 느그 할배한테, 면에서 온느라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머여(먼저) 가더라꼬. 느그 할배도 동장을 했으니까. 오새 말로 이장이야. 그때는 마카 동이라꼬 동장이라 했거든.

느그 할배를 보내고 내가 생각하이 좀 이상하더라꼬. 느그 할배가 가고 난 뒤에, 자꾸 섭섭한 기(게) 좀 이상한 거야. 면에 가니까 거 지서[경찰지서] 순경들하고 와 있더란다. 그래가지고 사실대로 이야기했단다. 그래 안동 철도경찰에서 느그 할배를 보내라 해서 안동 철도경찰로 넘어갔는 거야.

[작가 : 안동까지 가셨다고요?] 그래. 안동 철도경찰에서 그 사람들[공산주의자들]이 붙들랬으이, 즈그 관할이 아이라꼬 여(여기)서는 안 되는 거야. 여서 되는 것 같으면 그래도 좀 좋게 할 수가 있었는데……. 그때 사람이 일곱인강 불래(불려)갔다. [작가 : 다 공산당 밥 해줬다고 잡힌 사람들이에요?] 그래. 뭐 좀 줬는 거, 그런 거.

그때 느그 작은할배[시동생]가 거[공산주의자 무리] 갔는 줄 알았으면 느그 할배도 죽었어. 거[안동 철도경찰] 가서, 바른말 하라꼬 마 줄금줄금(계속해서) 내들(계속) 추달[매로 때림]로 받더란다. 뺄개이 밥 해줬다꼬, 마 뺄개이 축에 보는 거지. 나중에 면회를 갔는데, 맻 줄금(차례)을 맞고 옷에 생똥(산똥)을 다 쌌더라꼬.

느그 할배는 밥 해준 거는 해줬다 그랬지. “밥 와 해줬노?” 해서, 그랬단다.

“밥 애(안) 해주면 죽인다 하는데, 우선 목숨 살기 위해서 내가 해줬니더. 날 동장이라꼬 죽일라 하는데, 우선에 목숨은 살고 보자 싶어서 밥은 해줬니더.”

“그랬으면 와 이양(먼저) 보고를 안 했노?”

본대(본디) 즈그[공산주의자들]도 밥 묵고 가메, ‘우리가 간 뒤에 어디꺼정(까지) 갔다 싶으글랑 지서에 가가지고 보고하라’ 그라더란다. 느그 할배도 이양 보고를 했으면 그렇게 욕은 안 봤을 낀데, 왜 보고를 안 했나 하면은 동생 따문에. 고경면에서는 다 느그 작은할배[시동생]가 어디로 갔다는 거를 알잖아. 아니까 여서는 용서를 못 받을 거 같아 가지고 보고를 안 했대. 그래도 보고를 했으면 숩게 풀래났을 건데.

나제(나중에)는 결국에 느그 작은할배는 어디 가서……. 느그 할배하고 같이 있었단다. 같이 거 어든(어떤) 창고 같은 데 가서 갇해(갇혀) 있었단다. 형 동생도 서로 아는 척[알은척]도 안 하고, 할 수도 없고, 서로 눈마 끔쩍거리고…….

느그 작은할배가 한 사날[사흘이나 나흘] 앞에[먼저] 나갔다 하더라. 그래 가는데, 느그 할배는 그기 죽으러 가는 줄 알았다 하더라고. 죽을 줄 알았단다. 형이라 소리도 몬하고 동생이라 소리도 몬하고 속눈물마 흘리고 그랬다면서……. 그렇게 가서, 어디 가 죽여뿌고. 그나부라게(그 때문에) 느그 할배도 반 죽었지.

할매[본인]가 안동꺼정(까지) 맻 번이나 갔다. 그래 나제 안동서 대구까지 앤 넘어왔나. 안동서도 형무소는 대구로 넘어와야 되는갑데. 그래 대구 형무소로 넘어와 가지고, 나중에 법도 쪼끔쪼끔 물러지고 그 사람들[공산주의자들]이 없어지고 하니까 결국에는 무죄로 풀래났다니까. 그칠(그토록) 실큰(실컷) 맞고…….

[작가 : 감옥에는 얼마나 계셨던 거예요?] 한 서너 달 됐을 거야. 그거는 형을 살았는 게 아이야. [재판을 받고] 형을 받아서 살아야 그게 형이지, 미결로 붙어 있었는 그거는 형을 받은 게 아이야. 대구까지 서너 달 됐을 거야. 그래서 풀래(풀려)났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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