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10화. 해방은 됐지만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일왕의 항복문이 실린 매일신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최규화
일왕의 항복문이 실린 매일신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최규화

그래 살았으면 어떻게 살았겠노? 눈물 반 콧물 반 얼매나 고생 만신을 하고……. 팔월 대목[추석] 밑에(앞두고) 집으로 제와(겨우) 다 지아서 입택(새 집에 들어감)을 했다. 팔월 열사흘 날이 느그 큰아버지[첫째 아들] 생일이야. 열사흘 날 낳아놓고 대목 장 보러 갔는데 해방됐다 하더라고.

꼴짝(산골)에 여(여기) 있으이 테레비가 있나 뭐가 있노? 옛날에는 라지오(라디오)가 있나 테레비가 있나 아무것도 없었제. 편지를 쓰면은, 우체국 갖다 부치면은 우체부가 그 집끄지(까지) 갖다주고. 꼴째기(산골)니까 앤 그라면 소식을 모르지. 우리는 몰랐디만은 장에 가니까, 해방이 됐다 하데.

해방된 뒤에 뺄개이(빨갱이) 시대가 다 왔다. 느그 할아버지[남편]는 낮으로 일하고 밤으로는 만날 바같(바깥)에 숨어 있었지. 바아(방에) 있다가 그 사람들[공산주의자들] 오고가고 하는 데 다들래면(들키면) 안 되잖아. 저녁 묵고 나면 밖에 나가서 숨어 있고, 무슨 소리 나면 뒷산으로 올라가서 숨어 있고. 밤잠도 옳게(제대로) 못 자고, 그래 세월로 보냈다.

[작가 : 왜 숨었어요?] 데리고 가잖아. [작가 : 누가요?] 뺄개이들이 댕기면서 [남자들을] 데리고 가잖아. 요새 얘기하는 민주당, 공화당 그 패들이 매양(마찬가지로) 그거다. 저쪼(저쪽) 이북에는 민주당이고, 공산당이라 했다.[사실과 다르지만 그 시대의 왜곡의 정치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그대로 기록한다] 이북에는 공산당이고, 이쪽에는 공화당이고 그랬잖아. 그러니까 당파싸움이 났는 거야.

그래 내(늘) 숨고 이래서, 느그 작은할배[시동생]가 학교 공부도 육 학년 졸업 제와(겨우) 맡았다. 작은할배[여기서는 시삼촌] 집이 자식이 없잖아. 자식이 없어놓이 느그 증조모님[시어머니]이 작은할배[시동생]를 그 집으로 줬잖아. 양재(양자) 신고는 안 하고 데리고 있다가 장개(장가) 보내서 후손 보라고.

그래 거 사는데 하룻밤에 [공산주의자들이] 와서 델고 가뺐더란다(가버렸더란다). 느그 증조모님은 알(아래)로 우로 울며불며 이름을 부르고 찾아댕기고. 어디 가서 저녁으로 그 사람들(공산주의자들) 댕긴다 하니까 행여나 만낼랑가 싶어가지고 저녁으로 울며 온데로 돌아댕기고…….

반 미쳤다 해야 되지, 지끔 말로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제? 가마(가만히) 누벘다가(누웠다가) 벌떡 일나면 어디로 어디로 들판이라도 쫓아댕겨야 돼. 그래 와서 또 누워 계시고. 밥도 앤 잡숫고, 내가 흰죽을 쒀서 드리고.

평화[해방]가 돼뿌러도 당파가 두 당파가 돼 있으니까 기 펴고 살 수가 없는 거야. 일로도(이리로도) 절로도(저리로도) 붙잡히면 가야 되는 거고. 여(여기)는 영장만 나오면 [군대] 가야 되고, 저(저기)는 느그 작은할아버지 붙들려 가뿌고.

평화[해방] 된 뒤에,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 끝나고 느그 큰아버지[첫째 아들] 일곱 살[실제로는 여섯 살] 묵던 해가? 육이오사변이 났잖아. 육이오사변 안에(나기 전에) 그렇게 뺄개이들이 산으로 숨어서 마이 댕겼다니까.

그날 비가 왔다. 그날도 집에 안 있을 낀데 느그 할배[남편]가 이정[이질. 당시에는 설사 등을 동반한 배탈을 ‘이정’이라 흔히 통칭했다.]을 만내서 배가 아파가지고 집에 있었거든. 고때 뺄개이들이 내르와 갖고 그래 뿥들맀다.

그때 느그 할아버지가 동장질로(동장 일을) 맡아 했는 거야. 근데 동장이고 면장이고 법 쥐고 있는 사람들[관청과 관련 있는 사람들]은 즈그한테 마카(모두) 적인 거야. 자기한테 한패가 아니잖아. 구장[동장]이라 하면 안 되거든. 붙들래면 끄직고(끌고) 가기나 죽여뿌거나 했다니까. 그 먼저도 꼴짝(산골) 사람 하나 데려다가 죽였다니까.

한 집에 뺄개이들 내려와 가지고 밥 해묵고 갔다고 지서[경찰지서]에 고발로 했는 거야. 근데 다 여(여기) 주민들이 즈그꺼정(까지) 연락망이 다 있어. 지금도 야당 패 있고, 민주당 패 있고 애(안) 있나? 그때도 그랬는 거야. 그 사람이 고발했다 하는 것도 다 듣고 있어놨디, 다부(다시) 와서 사람 하나 죽였다니까. 사람 죽이는 거 일도 아이야, 그 사람들은. 즈그한테 좀 뭐 한 사람들 죽이는 거야.

그래 빨개이들이 내르와서, 가자 하데. 뒷산에 델고 올라가디, 떼거리가 많아. 밥을 해돌라 하더라고. 이 많은 사람을 지금 어떻게 밥을 하노. 밥을 해도 내 죽을 끼고, 안 해도 죽을 끼고……. 할 수 없이 양식 있는 대로 부어서 보리쌀캉(이랑) 쌀캉 해서 밥을 해줬다. 반찬이 있나. 된장 찌지고(된장찌개를 끓이고) 그래 밥을 해가 줬디, 이 사람들이 밥을 묵더라꼬.

느그 할배가 느그 작은할배[시동생] 말라(말을) 했어.

“내 동생도 당신네들이 델고 가놓고, [나까지 죽이면] 나(나이) 많은 부모하고 처자식하고 어떻게 하능교? 내 동생도 당신네들이 델고 갔으이, 날로(나를) 살려주이소.”

그때는 배운 사람이 적어. 가난한 나라에 [돈도] 없으니까 그때 신학문 배운 사람 별로 없었거든. 느그 작은할배[시동생]는 국민학교 육 학년 졸업은 맡았잖아. 그라니까 그치들이 델고 가가지고 좀 높은 책임을 맡챘나봐(맡겼나봐). 그래서 느그 할배가 느그 작은할배 말로 했디, 즈그가 누군지 아더란다. 그래가지고 느그 할배를 놔두고 갔데. 동생 그래 끄직게(끌려) 갔는 따문에 느그 할배는 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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