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논평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준석 국민의힘 최고위원,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 정한도 용인시의원(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뉴시스, 용인시의회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 정한도 용인시의원(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뉴시스, 용인시의회

4·7 재보궐 선거에서 20대 남성의 72.5%가 국민의힘을 지지했다는 출구조사 결과를 두고 ‘페미니즘’ 때문이라는 주장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확산되고 있다. 시민단체는 일부 남성 정치인들이 선거 결과를 '젠더 갈등' 탓인양 부추긴다며 “시대착오적이며 퇴행적”이라고 비판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16일 ‘정치권은 시대착오적인 안티페미니즘을 중단하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20대 남성의 70%가 안티 페미니스트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음에도 정치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를 ‘젠더 갈등’이라고 이름 붙이며 혐오의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보선 결과에 대해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썼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3일 “정부가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을 편 것에 대해 남성들은 역차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는 15일 대표단 회의에서 “정부가 여성들을 배려하며 내놓은 각종 정책과 발언들은 보편적 의제로 다가가지 못하고 청년 남성들을 수혜자처럼 취급하고 배제했다”고 말했다.

정한도 민주당 용인시의원은 14일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며 “젠더와 관련해 여성 우대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남성도 약자이고 피해자”라고 했다. 

여세연은 “민주당은 여성주의 운동에 단 한 번도 ‘올인’한 적이 없다. 차별과 폭력을 끝내자는 소수자와 약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180석을 차지했음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하지 않은 정당이 민주당이라는 것은 김남국과 이준석도 알고 있을 터”라고 지적했다.

이어 “‘젠더갈등’을 거론하며 청년세대를 ‘성별로 갈라치기’ 하는 것은 누구인가. 민주당의 갖은 실책에도 박영선 후보에 투표한 여성들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대신 페미니즘을 탓하는 그 옹졸함과 비겁함에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현재의 ‘젠더갈등’과 ‘역차별’로 불리는 현상을 만든 것은 정치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당신들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논평 전문.

정치권은 시대착오적인 안티페미니즘을 중단하라

4.7 재보궐선거가 끝난 지 열흘이 채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여당과 야당 가릴 것 없이 남성정치인들의 시대착오적인 안티 페미니즘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20대 여성의 15%가 제3 후보에 투표했다는 출구조사 결과는 성평등 정치 실현에 대한 여성 청년들의 열망을 드러냄에도. 정치인들은 국민의힘을 지지한 20대 남성의 70%에만 집중하고 있다. 20대 남성의 70%가 안티페미니스트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음에도, 정치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를 ‘젠더갈등’이라고 이름 붙이며 혐오의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2030 청년세대의 표심을 잡겠다면서 등장한 남성 청년 정치인들은 남성 청년의 삶을 개선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안 하면서 여성에 대한 적대감을 이용해 자신의 자리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성폭력 문제에 침묵하고, 성차별 구조를 직시하지 못하며, 청년여성을 특혜를 누리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청년남성 정치인의 정치는 혐오와 적대를 내세우는 정치라는 점에서 이들의 정치는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퇴행적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4.7 재보궐선거 오세훈 후보 캠프에서 ‘시대착오적인 페미니즘’이라는 이유로 성평등 질의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그는 최근 "민주당이 2030세대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해 참패했다"고 평가했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정한도 더불어민주당 용인시의원은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 때문에 20대 남성들의 지지를 잃었다고 말한다. 지지층 이탈의 원인이 페미니즘에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으나 이들은 마치 그러길 바라는 듯 ‘젠더갈등’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 또한 마찬가지이다. “성평등이란 성별 관계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정 성별을 우대하는 조치를 성평등한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라며 정부가 여성을 배려하고 남성 청년을 배제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여성주의 운동에 단 한 번도 ‘올인’한 적이 없다. 연이은 지자체장의 성폭력 사건과 부적절한 대처, ‘낙태죄’ 법안과 여성 안전 법안에 대한 미흡한 태도, 소속 의원들의 결여된 성감수성 등을 보면서 우리는 더불어민주당이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를 타파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음을 지겹도록 확인했다. 차별과 폭력을 끝내자는 소수자와 약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180석을 차지했음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하지 않은 정당이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것은 김남국과 이준석도 알고 있을 터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건 진보정당의 부대표인 박창진은 말할 것도 없다.
 
페미니스트 운동은 가부장적·남성중심적인 정치에 균열을 내고 성차별과 성폭력을 만드는 구조를 바꾸자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정치권에는 이 열망이 닿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성평등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이 사회 전반을 갉아먹는 오래된 적폐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남성 정치인들은 개혁, 혁신, 변화를 외치면서도 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고 오래된 적폐에 올라타는 것을 택하는가.
 
정치권이 쇄신하고 개혁하는 길은 성평등을 제대로 실현하는 시스템과 입법을 마련하는 것이지, ‘젠더갈등’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성평등의 가치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젠더갈등’을 거론하며 청년세대를 ‘성별로 갈라치기’ 하는 것은 누구인가. 더불어민주당의 갖은 실책에도 박영선 후보에 투표한 여성들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대신 페미니즘을 탓하는 그 옹졸함과 비겁함에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대들이 진정으로 청년 세대를 위하고 대표하고 싶다면 ‘젠더 갈등’을 내세워 갈등을 부추기지 마라. 현재의 ‘젠더갈등’과 ‘역차별’로 불리는 현상을 만든 것은 정치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당신들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거의 결과를 ‘젠더갈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청년의 삶을 어렵게 하는 구조의 문제를 덮으려는 시도다. 청년들은 지금, 불안정한 노동 구조와 착취와 폭력으로 얼룩진 성/차별의 구조에 신음하고 있다. 구조는 청년의 몫을 앗아가고, 소수자와 약자에게 원인을 돌리도록 하고, 결국 구조에서 배제된 사람들끼리 서로 칼을 겨누도록 한다. 그럼에도 조건과 구조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성찰 없이, ‘공정’이란 단어 뒤에 숨어 문제를 은폐하려 드는 이는 누구인가. 그 ‘공정’은 누구의 공정인가.
 
정치권의 586세대 정치인들은 성평등 의제와 청년 세대의 고질적 구조의 문제를 외면하고, 선거 시기에만 ‘청년’을 호명하고 있다. 그들의 부름 속에서 정치의 주체로서 ‘청년’과 ‘여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와 실천 대신, 보상의 형식으로 문제를 봉합해온 방식으로서는 더 이상 ‘진보’도 ‘변화’도 이뤄낼 수 없을 것이다.
 
페미니스트 운동은 사회의 소수자들과 연대하며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추동력을 보여줬다. 반면 남성 정치인들은 연대보다는 분리를, 포용보다는 배제를 택하며 과거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21년, 시대착오적인 안티페미니즘을 중단하라.
2021년 4월 16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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