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이면 사라지는 '데이트 강간 약물'… 여성단체 “약물 검출 증거 없다고 불기소 하면 안돼”
3일이면 사라지는 '데이트 강간 약물'… 여성단체 “약물 검출 증거 없다고 불기소 하면 안돼”
  • 진혜민 기자
  • 승인 2021.04.15 15:58
  • 수정 2021-04-15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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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동반 준강간 사건 엄정 수사 촉구 기자회견
한국성폭력상담소·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이하 준강간공대위) 등으로 모인 여성단체는 15일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앞에서 ‘불법촬영 동반 준강간 사건 엄정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 등 여성단체는 15일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앞에서 ‘불법촬영 동반 준강간 사건 엄정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혜민 기자

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이하 준강간공대위) 등 여성단체들이 15일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은 확보된 증거들과 약물 이용 의심 정황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유포 수사를 진행해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앞서 피해자 A씨는 지난해 7월 남자친구인 B씨에게 약물 의심 성폭력 피해와 불법촬영 피해를 당했다. B씨와 데이트를 하던 A씨는 평소 주량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양의 술을 마시고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A씨는 우연히 B씨의 휴대전화에서 자신의 의식이 완전히 없는 상태에서 찍힌 나체 사진들을 보게 됐다. 고소장 제출 이후 추가로 확보된 피해촬영물을 통해 불법촬영 피해와 함께 심실상실 상태를 이용한 강간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데이트 강간 약물' 24~72시간 내에 몸 밖으로 배출돼

2019년 일명 ‘버닝썬 클럽 사건’이 공론화되며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불리는 약물이 성폭력 가해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졸피뎀, GHB 등 향정신성의약품들은 술에 타서 먹으면 단 몇 분 만에 의식을 잃는다. 다만 24~72시간 내에 몸 밖으로 배출돼 범죄에 악용되기 쉽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A씨는 유학생활 중 종종 마약을 하고 A씨에게 약물을 권했던 B씨로부터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했다. 그러나 A씨로부터 약물 검출은 되지 않았다. 다만 A씨는 포렌식 결과로 나온 영상을 통해 약물이 사용됐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수사기관은 약물이 검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상 감정만으로는 약물 이용에 관한 판정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

이들은 “성범죄 약물인 물뽕이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것은 1998년”이라며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국내에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부실하고 관련 수사기법은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약물 의심 성폭력이 불기소가 되고 성범죄자가 처벌받지 않는 현실이 더 이상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이하 준강간공대위) 등으로 모인 여성단체는 15일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앞에서 ‘불법촬영 동반 준강간 사건 엄정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이하 준강간공대위) 등으로 모인 여성단체는 15일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앞에서 ‘불법촬영 동반 준강간 사건 엄정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해자 "수사기관, 피해자다움 요구하며 2차 가해"

이날 피해자는 수사기관의 2차가해 정황도 있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글을 통해 “수사관이 저에게 2차 가해를 하며 했던 말들과 표정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마치 비디오플레이어가 자동재생 되듯이 매일 저에게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피해를 겪고도 그것을 입증할 명백한 증거물이 존재함에도 피해사실을 사회가 정한 사법제도 시스템 안에서 인정받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줄 꿈에도 몰랐다”며 “수사과정에서 제가 믿어왔던 사회정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규탄했다.

이같은 이유로 피해자들은 수사·재판과정에서 신고를 망설였다. 2019년 준강간공대위에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를 통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준강간 사건 피해자의 769명 중 67%인 512명만이 수사기관에 신고를 했다. 신고를 못 한 가장 큰 이유로는 42%가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성폭력 피해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거나, 가해자 처별을 위해 지나치게 반복된 진술이 요구되는 반면 실제 가해자가 처벌은 받게 되지 않을까봐’를 꼽았다.

김태옥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운 피해자인가’라는 왜곡된 통념 기준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물론 피해상황에서의 심신상실 여부, 가해자의 고의성 등도 함께 의심의 잣대로 판단되는 것이 현 수사재판과정의 현실”이라며 “수사 및 재판기관의 지극히 낮은 성인지 감수성으로 처벌은커녕 신고조차 어렵고 신고를 하더라도 2차 가해의 상황에 놓이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본 사건 또한 ‘피해자가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였는가’, ‘만취하여 혹은 약물에 취하여 정상적인 판단이나 대응이 가능한 상태였는가’라는 성인지적 관점으로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포 정황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도 촉구했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장은 “가해자의 모든 전자기기와 온라인 계정 및 온라인 저장공간에 대한 수사를 강력히 촉구한다”며 “가해자 핸드폰 포렌식 결과 피해경험자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강간 및 불법촬영 피해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갤러리 폴더와 페이스북, 카카오톡 폴더에서 파일을 업로드 하거나 보관한 또 재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값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촬영물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노출될 수 있었다”며 “폭력은 피해경험자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경험자가 스스로 닿을 수 없는 폭력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며 “피해경험자가 닿을 수 없는 곳을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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