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6화. 빼앗긴 말 빼앗긴 이름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일제강점기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제국주의 교육을 강요하기 위해 각급 학교장에게 준 칼. 부천시립박물관 소장. ⓒ최규화
일제강점기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제국주의 교육을 강요하기 위해 각급 학교장에게 준 칼. 부천시립박물관 소장. ⓒ최규화

내가 글 배우고 할 때는, 신학문, 학교 댕기는 사람이 마실에 맻이 없었어. 우리가 사는 마실에 한 백 호가 됐는데, 학생은 둘이가 있었다. 그 집들은 좀 잘사는 사람이야. 잘사는 사람이니까 신학문 배우라꼬 학교 보내고, 일본 유학도 가고. 그 집들 말고는 마카(모두) 야학으로 가르치는 거야.

야학으로 국문을 가르친 게 아이고, 일본글로 가르쳤는 거야. 그때는 일본 시대[일제강점기]니까, 만약에 내가 대구로 간다꼬 포항역에 가가지고 열차를 탄다면은 일본말로 가지고, 열차표로 어디 꺼 주시오, 이래야 되지, 우리 조선말로 가지고는 차표를 안 주는 거야. 일본 시대니까 자기네 말로 사용하라고 그라는 거지.[일제는 1938년부터 우리말 사용을 금지했다]

[작가 : 표 주는 사람은 일본 사람이에요?] 일본 사람도 있고 조선 사람도 있어도, 일본말로 해야 표를 주는 거야. 일본말 열심히 배우라 이거지. 그중에도 젊은 사람들이 일본말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역에 가면, 내가 일본말을 몬하니까, ‘내 차표로 어디 가는 거 하나 사주소’ 부탁하는 거야. 그래 부탁하면 그 사람이 대신 끊어주는 거야.

그 사람들[일본 사람들]이 자기네 말 사용하라꼬 성도 다 바깠잖아(바꿨잖아), 야야.[일제는 1940년부터 창씨개명을 시행했다] 우리 김가, 이가 그거를 몬 쓰고, 마카 성도 진짜 일본말로 바깠다. [작가 : 할머니도 성 바꾸셨어요?] 바깠지. 우리는 큰집이 머여(먼저) 성을 바까서 우리잩으로(한테로) 편지를 써보냈더라.

큰집 사촌오빠가 구학[한학에 바탕을 둔 재래의 학문]을 마이 일러(읽어)가지고 지식이 훌륭했거든. 면서기도 하고 그때는 마실에 동장질로(동장 일을) 했거든. 우리가 속국이 돼서 사니까, 그 사람들 하라는 대로 하고 살아야 되니까, 성을 바깠으니까 느그도 그렇게 하라꼬 적어서 보냈데. 김[金]가니까 ‘가네시로[金城, かねしろ]’라꼬 했더라꼬. 가네시로.

느그 최가는 ‘요시야마(佳山)’. 느그 할아버지[남편] 일본 이름은 ‘요시야마 쇼카’야. 왜 그러냐 하면, 느그 할배가 그라더라. 최씨는 ‘높을 최(崔)’ 자 아이가. 일본말로 산(山)이 ‘야마’거든. 그거를 한자로 따서 ‘요시야마’라꼬 해서 불렀다.[‘崔’에서 ‘山’을 떼서 ‘佳山’라고 파자해 만든 성씨. ‘李’를 분해해 ‘木子’라 하는 식으로 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누는 것을 파자라고 한다.]

우리 성만 알지. 이씨나 정씨나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불렀는지 몰라. 성도 다 바까지고, 그래 앤 썼나.

창씨개명 호적부. 일제는 1940년 창씨개명을 실시해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학교 진학과 취업 등 생활에 불이익을 받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최규화
창씨개명 호적부. 일제는 1940년 창씨개명을 실시해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학교 진학과 취업 등 생활에 불이익을 받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최규화

그놈들이 동네 이름도 바깠어. 할아버지 산소 있는 동네 거가 답곡[경북 영천시 고경면 논실리]이야. 본대(본디) 논실인데 ‘논 답(畓)’ 자 그걸 해서 답곡이라고 왜놈들이 지었는 거야. 동네 이름을.

그래 자기네가 한번씩 일본말 얼매나 배았는공 저거를 하러 오거든? [작가 : 시험처럼요?] 시험 치러 오는 택(셈)이지. 일본 사람들캉 면서기들이 한번씩 와서, [사람들을] 모아서 서아(세워)놓고 얼매나 배았느냐꼬 묻는 거야. 담배로 들고 이게 뭐냐꼬 묻는 거야.

담배가 일본말로 ‘다바꼬(다바코, タバコ)’거든? 근데 다바꼬 말고 또 ‘마구초(궐련 : 얇은 종이로 가늘고 길게 말아 놓은 담배)’라는 게 있어. 다바꼬라는 거는 그냥 담배고, 마구초라는 게 따로 있어. 그거는 일본말로 머라 하는지 잊어뿌따, 내가. 마구초 그걸 들고, 이게 뭐냐, 물어도 아무도 모르지. 매양 다바꼬라 하는 거야. 이건 다바꼬가 애이고 머라꼬 가르쳐줘도 모르는 거야.

그거를 악착같이 배울라고 하면은 더 배울 낀데, 조선 사람이 그래 잘 앤 되지. 느그 할아버지[남편]도 성적표에 딴 거는 다 ‘갑’이야. 그때는 ‘수’, ‘우’로 안 하고 ‘갑’, ‘을’로 학교 점수로 매기는 거야. 딴 거는 다 ‘갑’인데, 가나, 일본글, 일본말, 그게 ‘을’이야. 제일 못하는 거지.

신경을 안 써서 그런 거야. 자기네들이 시킬 때는 귀담아 듣는 척해도, 돌아서면 그게 하기 싫은 거야. 그 말로 자꾸 사용하면은 쫌 늘 낀데, 말이 우리말 하는 기 숩지. 우리끼리 마카 우리말 하지 누가 그 사람들 말 쓰나?

저녁에 야학에 가가지고 한 시간인강 두 시간인강 배우고 오는 거야. 배아와도, 자고 나면 다 잊어뿌는 거야. 그라니까 옳게 모하는 거지. 이자 다 잊어뿌고, 눈으는 ‘메(め)’, 입으는 ‘구찌(くち)’, 코는 ‘하라(はな)’, 손은 ‘우데(て)’, 그런 거는 생각이 나.[발음을 잘못 기억하시는 것이 있으나 구술 그대로 기록함] 나이 어려서 했는 거는 생각이 나는데, 쫌 어려븐 거는 다 잊어뿌고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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