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5화. 신부 없는 결혼잔치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경사스러워야 할 결혼은 ‘처자귀신’이 되지 않기 위해 택해야만 하는 서글픈 일이 돼버렸다 ⓒpixabay
경사스러워야 할 결혼은 ‘처자귀신’이 되지 않기 위해 택해야만 하는 서글픈 일이 돼버렸다 ⓒpixabay

그래서 봄에 파혼했어. 인자 얼매 안 있으면 우리 사는 동네에 머시가[처녀들을 데리러] 오는 거야. 십 리만치 떨어져놓은 데는 하머(벌써) 델고 갔어. 그래서 엄마가 그라더만.

“인자 니 머시[영장] 나와서 가더라도 내가 막을 수 없다.”

“알았다. 내 죽더라도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는다.”

내가 엄마한테 그랬거든. 그래 있었는데, 가을꺼정(까지) [처녀들을 데리러] 안 오더라꼬. 그양 있었는데 가을꺼정 안 나와서 느그 할배[남편]를 만났는 거야.

엄마 친구가 중신을 했어. 현곡[경북 경주시 현곡면] 재로[재 넘어] 오는 데 남사골[남사리]이라는 데 있다. 거기 신랑이 있었어. 느그 할아버지가 거 살고 현곡 학교 댕기고 그랬어.

엄마 친한 친구가 중신을 해서 [결혼] 날을 받아놓고 있으니까, 신부가 올봄에 중신애비 쫓았다는 소문이 [신랑 쪽으로] 오더래. 나는 또 느그 증조모님[시어머니]이 무섭다꼬 소문이 오더라꼬. 그때도 또 나 결혼 안 할 끼라꼬, 결혼 안 할 끼라꼬 그랬지.

“내 배운 것도 없이 나(나이)도 어린데 시어마시 그마이(그만큼) 무서운 데 가서 어떻게 사노?”

지금 일본 가라는 거 [서류] 쪼가리만 나오면 가야 되제, 앤 가면은 몬 사는 거야. 어른들은 내(계속) 면으로 어디로 불래댕기고……. 그랬디, 엄마가 그라더라꼬.

“야야, 우선에 머시나[끌려가는 건] 면해야 앤 되나. 우선에 급한 불으는 꺼야 될 거 아이가. 지 새끼 자묵는(잡아먹는) 부모가 있나? 사다가(살다가) 사다가 앤 되거든 [돌아]온느라.”

시어마시가 와 무섭다고 소문이 났노 하면, 일이 바쁘니까 자기 친정 질녀라 하던가, 재종질녀라 하던가 하나 데려다가 요새 식모처럼 썼나봐. 그랬는데 가자테(걔한테) 동네 사람 아도록(알도록) 마이 그했는가봐[엄하게 했나봐]. 그래놓이 그래 소문이 났는갑더라고.

그래서 [엄마가] “사다가 앤 되거든 온느라. 신랑으는 좋단다. 내 귀에 듣기더라.” 그래 달랬다. 그래서 느그 할아버지는 열일곱 살 묵고, 나는 열다섯 살 묵고 시월 달에 결혼했잖아.

결혼할 날 받아놓고 내가 아파. 독감 걸래가지고 아파가지고 결혼 모할따(못하겠다) 했어. 엄마가 “퇴정(기한을 뒤로 미뤄서 정함)을 하까? 니 이마이(이만큼) 아파서 결혼식을 모 올리이(올리니) 날짜를 물리자.” 그라더라고.

느그 할매[본인]가 쫌 이상하긴 하다. 가마(가만히) 생각하니까, 날짜 물리자꼬 해서 결혼 몬하고 죽으면은 내가 처자[처녀]귀신 될 거 아이가. 열다섯 살 뭇는데 그런 시건(철)이 우예(어떻게) 들었겠노? 혼자 속으로. 처자귀신은 면해야 될 거 아이가 싶어가지고, 엄마더러 그랬다.

“엄마, 내 붙들고라도 결혼식을 올려도가(올려줘). 내가 사지는(살지는) 모할 거 같다. 이양(이왕) 죽어도 처자귀신은 면해야 될 거 아이가.”

[작가 : 그 정도로 심하게 아팠어요?] 마이 아팠어. 내가 그라니까 할 수 없어놨디 식을 올맀다니까. [신부 집에서] 식을 올리고 느그 할아버지는 이자 [신랑 집으로] 머여(먼저) 갔다. 나는 한 달로 있다가 안 죽고 살아가지고, 그짜서[신랑 집에서] 다시 날을 받아가지고 시집으로 왔다니까.

본대(본디)는 결혼해서 삼 일 만에 시집을 가거든. 잔체[결혼잔치]는 삼 일 잔체 한다꼬, 다 청첩 둘러놓고 했으니까 잔체는 안 할 수 없어. 그래 색시가 안 와도 잔체는 그양 했어. 한 달 지난 뒤에 내가 시집을 갔다니까. 잔체는 벌써로 해뿌렀으이 또 할 수는 없고, 그양 갔다.

그래 시집을 갔는데, 느그 증조모[시어머니]가 조씨야. 함안 조씨야. 내가 시집오니까 느그 증조부님[시아버지]이 그라시더라꼬.

“니 시집살이 쫌 힘들 끼다. 하늘에는 불개고 땅에는 조개라 했다. 느그 시어무이 조씨데이.”

[결혼] 날 받아놓고 있을 때버텀 하머(벌써) 무섭다꼬 소문이 왔제? 그래 무섭더라꼬. 한 번 아인(아닌) 거는 아이고, 한 번 틀어지면 밥도 앤 자시고 그렇다. 뭐 잡술 거 갖다드리고 있으면 “오야, 여 놔두고 가서 느그도 어뜩(얼른) 먹어라.” 이런 소리 한 번도 안 하시더라. “밥 잡수소.” 하면 대답 안 하신다. 대답 안 하시고 그양 상마(상만) 땡겨 들루고(들이고). 본래 말이 쫌 없어. 쫌 성나면 이틀사흘도 말을 안 하시더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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