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생 김두리] “신랑만 있으면 보낸다 했어… 죽는 거카마 낫다꼬”
[29년생 김두리] “신랑만 있으면 보낸다 했어… 죽는 거카마 낫다꼬”
  • 최규화 작가
  • 승인 2021.06.04 12:43
  • 수정 2021-06-04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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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4화. 열다섯 파혼소동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당시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결혼을 서둘렀다는 이야기는 1920~1930년대 생 여성들에게서 비교적 보편적으로 들을 수 있다. 사진은 경기 부천시 안중근공원 내 평화의소녀상. ⓒ최규화
당시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결혼을 서둘렀다는 이야기는 1920~1930년대 생 여성들에게서 비교적 보편적으로 들을 수 있다. 사진은 경기 부천시 안중근공원 내 평화의소녀상. ⓒ최규화

내가 열다섯 살 묵던(먹던) 해[1943년], 요새 그거 ‘위안부’ 영장이 오는 거야. [다른 지역에는] 열네 살 때부터 왔지. 부산서 머여(먼저) 시작됐을 거야. 도시부터 머여 시작이 됐어. 내 사는 동네하고 십 리 떨어진 데서 영장맨치로(처럼) 나오는 거야. 군인 가는 거나 한가지야. 영장 받아서 갔어.

그때는 ‘위안부’라꼬도 안 하고 방직회사 일 시킨다고, 자기네는 첩때(처음에) 말하기를 그렇게 했어. 결국 가보면은……. 나는 첩때는 그것도 몰랐어. 오새(요새)같이 이래 세상일에 밝지를 않고, 그때는 전화가 있나 머가 있노? 테레비가 있나, 천지 어디 소문 들을 데가 없잖아. 결혼시켰는 사람은 임자가 있으니까 앤 델꼬 가고, 결혼 안 하고 있는 처자들은 다 델꼬 갔는 거야.

엄마는 머를 알았는지 우옜는지, 전쟁터로 간다 하는 거는 알았는 것 같아.

“자석(자식)을 낳아가지고 사지로 보낼 수가 있나. 머시마는 남자라서 군대로 간다 하지만, 여자로 우예(어떻게) 목숨이 죽을지 살지 모르는 데로 보내노.”

그래 엄마가, 어디라도 결혼시켜야 된다 하데. 그래서 어디 머시마 있다 하면 다 중신애비를 보냈는 거야. 엄마가 그때는 살림도 안 보고, 신랑만 있으면 빨리 시집보낸다 했어. 죽는 거카마(보다) 낫다꼬, 거 보내는 거카마 낫다꼬.

한 십 리 길 되는 데, 중신애비가 중신을 해왔는데, 신랑이 내보다 열 살 더 무앗다(먹었다) 하더라고. 내인데(나한테) 말도 안 했는데, 중신애비가 엄마자테(한테) 말하는 걸 내가 들었거든. 듣고는, 안 간다고, 차라리 거[방직공장] 갔으면 갔지, 열 살이나 더 무앗는데 내가 만데(뭐하러) 시집을 가냐꼬 했지.

“내가 열다섯 살 뭇는 기, 내 밥도 몬 해묵고 내 옷도 몬 꿰매 입는데, 거 열 살이나 더 무은 신랑인데(한테) 시집가서 내가 어떻게 사노?”

시어마시는 또 혼자라 하더라꼬. 그래 내가 엄마한테 시집 안 갔다 그랬거든. 그래놓이 엄마가 중신애비자테(한테) 얘기한다고 갔어. 가니까 중신애비가 어디 가고 없고, 신랑 엄마라 하든강, 외숙모라 하든강 있는 데 몬한다꼬 퇴혼(파혼)을 하고 왔어.

그때가 삼월 달인데, 우리가 보리밭 매러 가고 집에 없었더니, 엄마 친한 노인네가 델러 왔더라꼬.

“하이고, 오늘 사성(혼인이 정해진 뒤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신랑의 사주를 적어서 보내는 종이) 오는 딸로 데리고 보리밭 매러왔나?”

“내가 결혼 몬한다고 했는데 우예 왔는공?”

그라면서 엄마가 혼자 간다고, 동생하고 내한테 “느그는 밭 매라. 내가 가서 [돌려]보내고 오께.” 이라데. 근데 가마(가만히) 밭 맨다고 있어 보이 앤 되겠더라고. 그래가꼬 엄마 간 뒤에 따라왔다니까. 집에 오니까 막 싸움을 하더라고.

“[결혼을] 앤 하면 본대(본디)부터 앤 한다 하지, 왜 한다 해놓골라(해놓고는) 그라노!”

“당신네 친척집에 가서 내가 파혼한다 하고 왔는데 왜 그라노!”

저 사람들이 사성을 써왔더라꼬. 사성을 써서, 떡이라꼬 보따리 요만침(요만큼) 싸고 그래 짊어지고 왔더라꼬. 자기네들은 [퇴혼한다는 말을] 몬 들었다 이 말이야. 그라면 그 사람한테 그랬는가 안 그랬는가 물어보러 가자꼬, 이래 싱강(승강)이 났는 거야. 그래 내가 들와가지고 그랬다.

“아무리 우리가 고향에 안 살고 여 와서 외톨이로 산다 해도, 사람을 이렇게 업산여길(업신여길) 수가 있능교? 나도 친척이 다 있고, 제종반(사촌과 육촌)이 다 있니더. 이렇게 업산여기지 마소. 인간대사를 어떻게 그렇게 하능교? 가소. 두말할 거 없이, 나는 열 살이나 더 문 사람하고는 결혼 안 하니까 가소. 당사자가 마다 하면 가는 거지.”

“사성 받고 퇴혼(파혼)하는 게 어딨노?”

“우리가 사성 받았나? 오라 했나? 오지 마라 했는데 가져왔으이 당신네가 잘못이지.”

그래 엄마도 막 싸웠다. 중신애비는 여잔데, 보따리 지고 왔는 사람은 남자 노인네가 하나 왔더라꼬.

“이거 가지고 당장 가소. 사람 업산여기지 말고. 없는 사람 밑에도 똑똑은(똑똑한) 사람 있으니까. 우리 [사촌] 오빠들도 다 배운 사람들이고, 당신네들 안 통한다.”

내가 그랬디 늙은이가 보따리를 내삐고(내버리고) 가는 거야. 가는 거를 내가, 떡보따리 들고 마 내떤져뿟지(내던져버렸지). 영감재이가 등드리(등) 슬쩍 맞았어. 그래서 돌아서더라꼬.

“안 그라면 내 죽는 꼴 볼랑교? 내 이 자리에 느그 보는 데 죽을 끼다!”

내가 마 부엌에 칼 가지러 간다고 쫓아가니까, 엄마 친한 노인네하고 엄마하고 [나를] 붙잡고……. 그래놨디만 겁을 내서 쎄(혀)가 빠지게 즈그 가왔는 거 가주가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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