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청년이 사는 곳 - 끝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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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청을 지나 성북천을 건너 주거용 빌라 밀집지역, 성신여대를 지척에 둔 4층짜리 빌라 건물 3층. 대략 가로 6m 세로 4,m쯤 되는 큰 방 한쪽에는 간이 부엌과 냉장고 드럼 세탁기. 나름 '풀옵션'을 갖춘 이 원룸이 7년 차 소방관 오영선(33, 가명) 씨가 사는 공간이다.

"지난해 한국에 돌아와서 12월부터 살기 시작했어요. 보증금 1000만원, 월세는 50만원이고 관리비는 3만원이에요. 방도 크고 남자 혼자 살기는 나쁘지 않아요. 화장실이 냄새가 조금 올라오고, 옆집 소음이 다소 있지만요. 집을 많이 보러 다녔는데, 이보다 싼 방도 있었지만 짐이 많아서 무리였어요. 여성안심 귀갓길이 있고 치안도 나쁘지 않은 조용한 동네지만 월세는 부담스럽죠. 월 기본급의 1/4 가까이 되니까요."

그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일종의 슬럼프가 찾아오자 지난해 '유학 휴직'을 하고 독일 베를린에 다녀왔다. 독일에서는 대학원 부설 어학원을 등록해 9개월간 다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수업 절반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덕분에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제가 할만한 다른 적성도 발견했죠."

오 씨는 독일에서 중산층들이 사는 조용한 동네의 한 아파트를 공유해서 살았다. "거실이 없고 복도 양쪽에 2개의 방과, 화장실 1개, 그리고 주방이 있는 작은 곳이었죠. 가격은 500유로 정도. 보증금은 2달 치 월세였어요. 그러니까 처음 들어갈 때 3달 치 월세 1500유로를 내고, 매달 월세를 내고 나갈때 1000유로를 돌려받았죠."

베를린은 세계의 모든 예술이 모이는 곳으로 특히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 친구들 대부분이 셰어하우스에서 살아요. 독일에서는 이런 형태의 주거가 매우 보편적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저와 같이 살던 분은 20대 시절에 독일로 이민 온 나이가 많은 분이었어요. 다 자란 자녀도 있는. 독일에서 공유 주거가 보편화 된 것은 독일인들의 검소한 성향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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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민…세계 유랑하는 자유인 되고파"

그는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2주간 자가 격리를 하고, 살 곳을 구하기 전까지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 "혜화동에 있는 아주 작은 원룸이었는데 하루 5만원 정도로 조금 비쌌죠. 2주를 거기서 지내면서 방을 구하러 다녔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후회가 돼요. 요즘 호텔 숙박비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한 달 살기' 패키지 같은 것도 많이 나와 있더라고요."

오 씨는 독일로 떠나기 전엔 공무원 아파트에 2년 정도 살았다. "들어가려는 사람이 많아 대기자 등록으로 하고 기다렸다가 순번이 와야 들어가서 살 수 있어요. 22평 정도 되는 공간에 방 2개, 혼자 살기에는 꽤 크죠. 그곳에 살 때는 결혼을 하려는 계획도 있어서 TV나 냉장고 같은 살림살이도 모두 구입을 했었어요. 하지만 당시 만나던 연인과 헤어지게 됐고,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헐값에 모두 넘겨버리고 잠깐 떠나기로 했죠."

독일 유학 과정에서 그는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 "독일에서 만난 한 친구가 영화를 만들고 있었어요. 내가 대학 시절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그가 스토리보드 작가라는 일을 알려주고 자신의 영화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을 했어요. 일하는 틈틈이 그 작업을 하고 있죠. 원래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일하는 방식이 제 성격과도 잘 맞는 것 같아요."

결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최근에는 데이팅앱을 이용해 낯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 대부분이 비혼주의자였어요. 전에는 그것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 사람들과 연결되고 대화를 나누면서 저도 조금 생각이 그쪽으로 기울어졌어요. 궁극적으로는 세계를 유랑하는 자유인이 되고 싶거든요. 결혼하면 아무래도 그건 무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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