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 공무원‧여성단체 사설 삭제 요구
해당 주필 “사과할 글 쓰지 않았다” 반박

지난달 30일자 경기일보 사설 "투기마다 등장하는 ‘공무원 부인’들 공무원 남편 망치고, 패가망신하다" 중 일부. 사진=경기일보 홈페이지 캡쳐
지난달 30일자 경기일보 사설 "투기마다 등장하는 ‘공무원 부인’들 공무원 남편 망치고, 패가망신하다" 중 일부. 사진=경기일보 홈페이지 캡쳐

경기일보의 지난달 30일자 <투기마다 등장하는 ‘공무원 부인’들 공무원 남편 망치고, 패가망신하다> 사설이 논란이다. 경기도청 공무원들과 여성단체는 해당 사설이 공직사회 부동산 투기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등 여성혐오적이라며 삭제를 요구했으나, 사설을 쓴 주필은 “사과할 글을 쓰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해당 사설은 최근 부동산 투기 혐의를 받고 있는 포천시 공무원과 경기도 공무원 사건을 언급하며 “부인의 이름이 나온다”고 짚은 뒤, 이들을 “남편 공무원의 정보를 이용해 투기한 부인들”, “남편과 공모해 개발지를 누비던 부인들”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공직자에게 배우자의 역할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설은 “공직자 퇴임식에 늘 배우자가 함께한다”면서 “공직자에게 배우자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어 “이들의 희생과 절제 없이는 올곧게 수행할 수 없는 길이다. 그렇지 못한 배우자들의 비극을 지금 보고 있다”고 썼다.

또한 신문은 수사 상황을 거론하며 “공직자 또는 의원들의 범죄 행위가 더 드러날 것”이며 “여러 건에서 부인 등 가족의 이름이 거명될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남편의 의도인지, 부인의 계획인지 사건마다 실체적 진실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다. 배우자의 역할”이라며 “30년 공직의 뒤에 배우자, 남편을 영예롭게 한 부인이다. 투기 공직의 뒤에도 배우자, 남편을 패가망신시킨 부인이다. 많은 부인들은 전자(前者)에 산다”고 끝을 맺는다.

사설 내용이 알려진 뒤 경기도청 공무원을 중심으로 논란이 일었다.

경기도청공무원노동조합‧경기도통합공무원노동조합‧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기본부 경기도청지부 등 3개 공무원노조는 8일 입장을 내고 “경기일보는 일부 공직자 불법 투기 문제를 공직사회에 만연한 것으로 오해하도록 사설 논조를 내고 불법 땅 투기를 한 공무원 당사자의 책임을 공무원 부인 탓으로 돌려 자칫 땅 투기는 여성이 하는 것처럼 일반화하는 여성혐오 의식을 만들어냈다”며 “이런 왜곡된 성평등 성인지 감수성 없는 여성혐오 사설에 대한 성찰과 경기도청 공직자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앞서 경기여성단체연합‧경기자주여성연대‧경기여성연대 등 여성단체들도 6일 논평을 통해 “신문은 개발예정지에 땅을 사고, 건물을 신축해 일명 알박기를 하는 등의 의혹에 거래당사자(명의)로 아들‧딸‧가족들이 등장한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온통 ‘부인’을 잘못 둔 ‘남편 사람 공무원’을 안타깝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로 대고 있다”면서 “논리의 비약이며, 명백히 여성 혐오의 한 양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경기일보는 게시된 사설의 논조에 대해 성찰을 요구하며 지역 내 영향력을 가진 언론사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사설 취소하고 게시물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당 사설을 쓴 김종구 경기일보 주필은 공무원노조와 여성단체의 요구에 대해 ‘부인들’이 ‘전체 공직자 부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며, 책임도 여성에게 돌리지도 않았다며 정면 반박했다.

김 주필은 경기일보 12일자 <사과할 글을 쓰지 않았다-경기도 공무원노조의 성명에 대해->라는 제목의 기명 칼럼을 통해 “사설 작성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책임을 여성에 돌렸는지 보자. 성명은 사설의 ‘논조’를 거듭 지칭하고 있다. 이번 공무원 투기에 대한 경기일보 논조는 분명하다. 범죄의 출발은 공무원에 있다. 남편에서 시작됐다. 다소 지겹도록 이 논조를 써왔다”고 썼다.

이어 김 주필은 “선량한 다수 공직자 부인들을 매도했는지도 보자”며 사설에서 언급한 평생 공직자 퇴임식은 늘 배우자와 함께한다는 내용을 그대로 옮긴 뒤 “많은 공무원 배우자를 소중히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시대착오가 아님도 그 문장 속에 있다”면서 “이 부분에선 ‘부인’이라 쓰지 않고 ‘배우자’라 썼다”고 강조했다. 이어 “범죄 가담자로 특정된 앞선 ‘부인들’과 구분하는 표현이다”라고 덧붙였다.

김 주필은 “여성 혐오 인식 소유자, 성인지 감수성 부족자 등은 참담한 표현이며, 회복 안 될 명예 훼손”이라며 “나의 뇌 어디에도 (여성혐오 인식 등은) 없었다. 그런 인식이 1천180자 어딘가에 있다는 거 아닌가. 그러면 증명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경기여성단체연합 측은 12일 김 주필에게 이메일을 보내 △최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LH 사태와 같이 일부 공직자들의 범법, 탈법 행위들이 그의 ‘부인’들에 의한 행태 때문이며 패가망신의 원인 제공자인지 △불법 투기로 취한 부동산 명의에 ‘남편 사람 공무원’ 당사자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면 그 남편은 청렴한 공직자인지 △아들, 딸, 부인 명의로 되어 있는 불법 투기는 모두 ‘부인’ 이 저지른 일이며 남편은 이용당한 안타까운 사람인지 등을 질의하고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알렸다.

이번 논란에 대해 한국기자협회 경기일보지회는 “내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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