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후 산부인과 가보니 “남친 동행해야 해요”
낙태죄 폐지 후 산부인과 가보니 “남친 동행해야 해요”
  • 진혜민, 김규희 기자
  • 승인 2021.04.17 07:15
  • 수정 2021-04-19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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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 불합치 2년
안전한 임신중단 여전히 요원
‘낙태’ 가능 주수 다르고
비용 48만~85만원 제각각
ⓒ이은정 디자이너
ⓒ이은정 디자이너

“수술하려면 아기 아빠랑 동행하셔야 해요.”(E 산부인과)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지 2년(4.11), 낙태죄가 사라진지 넉 달이 지났다. 낙태죄가 폐지돼 이제 누구나 안전하게 ‘낙태(임신중단)’를 할 수 있을까. 아직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병원마다 비용이 제각각이고 아기 아빠의 동의를 요구하는 등 여성들의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과제는 산적하다.

올해는 2019년 낙태죄 처벌조항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온 지 2주년을 맞는 해다. 형법 제269조 및 270조 1항의 낙태죄 처벌조항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지난 1월1일부터 사라졌다. 기자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2주년을 맞아 서울 시내 산부인과 7곳에 임신중절 상담 문의를 해봤다. 문의는 카카오톡 채팅·전화·블로그를 통해 진행했다.

13일 서울에 위치한 A 산부인과는 ‘낙태 수술이 가능하냐’는 물음에 “임신중절은 임신 14주 이하인 여성에게만 권장한다”며 “그 이유는 12주에서 14주로 넘어가면 비용도 늘어나는 동시에 산모의 건강이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 산부인과는 “임신 10주 미만만 수술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C 산부인과는 “24주가 넘어가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D 산부인과는 임신 약 5주정도인 임신 초기에만 임신중절이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E 산부인과는 “임신 20주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A 산부인과는 12주에서 14주일 시 18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들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7주가 넘지 않으면 75만원”이라며 “7주가 넘으면 85만원, 8주가 넘으면 95만원, 9주가 넘으면 115만원으로 가격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C 산부인과는 “6주 미만이면 60만원, 6~7주에는 70만원, 7~8주는 80만원, 8~9주면 90만원, 9주~10주면 100만원으로 가격이 오른다”고 했다. D 산부인과는 “임신 초기(5주) 비용은 70만~85만원”라며 “정확한 비용은 환자의 주수와 자궁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F 산부인과는 임신 6주 이내라면 6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밝혔다. G 산부인과는 임신 10주 기준으로 78만원이라고 말했다.

아기 아빠의 동행 혹은 전화 요구

E 산부인과는 아기 아빠와 동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 병원은 “동행이 어렵다면 전화 동의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총 7곳의 산부인과를 취재한 결과 임신주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또한 임신초기인 5주 이내에만 임신중절이 가능한 점과 아기 아빠도 동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안전한 임신중절이 어려워 보였다.

 

ⓒ이은정 디자이너
ⓒ이은정 디자이너

가장 당면한 과제는 임신중절 보험급여화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 산부인과전문의는 현장의 상황에 대해 “형법이 없어졌으나 아직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의료현장에서는 현행 모자보건법 기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며 “공식적인 의료체계 및 건강보험시스템, 의학교육시스템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비용부담 및 질 관리의 문제가 아직 산적해 있다”고 밝혔다.

아기 아빠를 데려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현행 모자보건법의 ‘배우자 동의’ 조항을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전문의는 “이 법은 결혼한 여성만 성행위와 임신출산의 대상으로 보았던 과거의 악법에 여성을 결정과 행위의 주체로 보지 않았던 악습이 더해진 법”이라며 “의료법 24조의 2 조항 상 환자 본인의 의사만 있으면 시술과 수술이 가능한데, 임신중지의 경우 그동안 형법 처벌조항 때문에 남편이나 남자친구의 고소고발이 두려워 관행적으로 요구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이 바뀐 이후에도 그 관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혔다.

윤 전문의는 임신중절 보험급여화에 대해 현 상황에서 가장 당면한 과제라고 봤다. 그는 “비급여로 유지되는 한 그 금액을 병원이 자의적으로 책정할 수 있고, 건강보험료지원을 받지 못해 여성이 오롯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기록과 비용처리가 남지 않아 통계자료 구축과 세금징수에서도 사각지대로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기획운영위원인 최예훈 산부인과 전문의는 “법적인 문제는 이제 ‘낙태죄’의 잔재로 남아 있는 법률의 조항들인 모자보건법, 의료법, 약사법 등을 삭제하거나 바꾸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임신중지를 넘어서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법’과 같은 기본법을 입법하기가 남았다”고 말했다.

최 전문의도 병원에서 파트너 동의를 구하는 것에 대해 “파트너가 임신중지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경우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태에 대해 방어적으로 받아두는 경우나 새로 뭔가 입법이 마련될 때까지는 그냥 이전에 해왔던 방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건강보험 급여화는 사람들이 임신중지를 공공의료로 인식하게 하는 데에 있어서, 특히나 의료인들이 임신중지에 대한 낙인을 제거하고, 가치 및 태도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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