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1화. 오남매를 혼자 키운 엄마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

김두리 할머니의 유년 시절 이야기는 일제의 무자비한 공출과 그로 인한 가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pixabay
김두리 할머니의 유년 시절 이야기는 일제의 무자비한 공출과 그로 인한 가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pixabay

내가 기사년[1929년] 생인데, 기사생 뱀띠다. 예전에는 여기가 포항시가 안 되고 영일군이 돼 있었어. 영일군 기계면 봉계동에서 태어났어.

다섯 살 먹던 해[1933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 거야. 오남매 낳아놓고 돌아가셨어. 농사짓고 그냥 살다가. 엄마가 혼자 애 다섯을 데리고 살라 그래봐라.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젤로 큰 언니가 열다섯 살이야. 둘째 언니는 열두 살이고, 고다음에 오빠는 여덟 살이고, 그다음에 내가 다섯 살이고. 지금 덕암[경북 영천시 고경면 덕암리]에 있는 느그 할배[할머니에겐 남동생]가 돌 지냈는 거야, 두 살인 거야.

그래 놔둬놓고 돌아가셨뿌렸으니까, 엄마 혼자서 아(아이) 다섯이 데리고 살라 하니까 고상(고생)이 많지 뭐. 고상이 극심하지. 옛날에는 마카(모두) 남자들이 농사지어서 묵고 살았잖아.

그래서 큰언니는 열다섯 살 먹어서 결혼시키고, 둘째 언니는 열네 살 먹어서 결혼시켰어. 입이라도 덜라꼬. 고다음에 서이(셋)가 남았는 거야. 내하고 덕암 할배[남동생]하고는 엄마가 델고 살고, 오빠는 큰집에 소풀이라도 비라고(베라고) 맽겼어. 할아버지가 학자였어. 할아버지 있는 데 공부도 하고 있으라꼬 큰집에 거 맽기놓고, 엄마는 내하고 동생하고 둘이 데꼬 살았어.

그래 살았는데, 시대가 일제시대니까 먹을 것도 없지, 입을 것도 없지, 농토는 있어도 요새같이 생산을 마이 낼 수가 없잖아. 할 줄로 모르니까. [작가 : 농사는 누가 짓는데요?] 엄마가 지었지. [작가 : 혼자요?] 그래. 그 전에는 여자들은 들에 일도 할 줄도 몰래(몰라). 이붓(이웃) 사람들 품앗이도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농사짓고, 그래 근근이 살았지.

그때는 일제시대니까 아저씨들은 복대[보급대, 강제징용] 가지러, 또 청년들은 일본 병정[강제징병] 가지러, 농사짓는 사람은 늙은 사람하고 여자들밖에 없는 거야. 두 집, 세 집 건너 장골이(장정)가 하나 있거나 없거나 그랬다꼬. 그렇게 살았다니까. 그라니까 여자들끼리 품앗이를 해가지고 농사를 짓고 사는 거야.

그래 사니까 고상이 많고, 흔하게 물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그케. 그래도 우리가 농사지어서 다 묵으면은 묵고살 수가 있는데, 쪼끔 먹을 게 있으면은 공출로 대야 되는 거야. 일본 사람들이 논 맻 마지기에 맻 가마이(가마니)씩 대라고 표 쪼가리를 마카 매겨서 주는 거야.

거 수량대로 다 몬 대면은, 우리가 쫌 물라꼬 남가놓으면, 내들(내내) 면서기들이 디배러(뒤지러)오는 거야. 숨가놔도(숨겨놔도) 디배서 나오면 또 자기네가 가져가뿌는 거야. 자기네가 내놨는[정해둔] 수량대로 앤 댔다꼬. 자기가 농사지도 자기가 다 몬 묵고 공출로 대야 되니까 물 게 없지. 공출로 받아가고 돈으는 얼매씩 줬는지 안 줬는지 그거는 잘 몰라. 나이도 어리고 그라니까.

가마이도 쳐야[짜야] 돼. 가마이도 식구 수대로 아(아이)는 작게[적게], 어른은 마이. 만약에 어른이 열 장을 한다면은 아(아이)들은 한 다섯 장, 요렇게 배당을 시켜주는 거야. 그 수량대로 다 짜서 갖다주고 나야, 우리가 팔어서 돈을 해서 쓸 수가 있는 거야.

그라이 고상이 뭐 말도 몬하지. 밭에 나가 풀도 매야지, 논에 가 농사도 지야지. 지아놔도 보리는 전쟁하는 데 말 보리 한다꼬 수량 대라 해서, 말 미긴다꼬(먹인다고) 보리 공출됐지, 나락은 군량미 한다꼬, 군인들 양식 한다꼬, 군인들 미이야(먹여야) 되니까 가져가고. 일본캉 식민지가 돼 있으니까, 우리가 마카 일본 백성, 일본 나라 그양 따라가는 거지.

이노무(이놈의) 미영(면화)을 갈아[재배해] 놓으면, 화약 심지 그거 한다꼬 또 공출을 대라고 해. 그 화약 심지, 남포(다이너마이트) 같은 거, 포탄 나가는 데 터주는(터트리는) 거 있제? 미영 갈아서 베로 해서 우리가 옷을 해입어야 되는데, 그거도 또 공출로 대야 되는 거야. 자기네들이, 얼매 갈면 얼매만큼 대라 하는 거야. 자기네들 대라는 대로 다 대뿌면, 우리가 옷 해입을 게 없는 거야.

좀 숨개놓고 댈 만치 대고 그라면, 내(계속) 디배러 오는 거야. 그런데 고거도 언제까지 디배러 오고, 언제부터는 애(아니) 오는 기한이 있어. 그래 숨개놨다가 기한 지낸 뒤에 베로 해서 제와(겨우) 옷을 해입고 살았지. 삼 갈어서 여름옷 해입는 거, 그것도 또 공출 대라 해서 가져가는 거야.

그러이 우리는 입을 것도 없지 물 것도 없지, 도탄에 빠져서 사느라고 고생이 만신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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