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1일 ‘국회로 진출한 트랜스의 목소리’ 콘퍼런스 개최
다양성과 트랜스젠더의 정치 세력화 강조
장혜영 의원 “우리 국회, 다양성과 포용 필요”

조지나 베이어 전 뉴질랜드 국회의원은 1999년 세계 최초로 트랜스젠더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조지나 베이어 전 뉴질랜드 국회의원. ⓒGeorgina Beyer

세계 최초 트랜스젠더 국회의원인 조지나 베이어 뉴질랜드 전 국회의원이 “트랜스젠더가 겪는 문제는 사실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평등을 원한다면 더 담대하게 이 문제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31일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이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트랜스해방전선이 ‘국회로 진출한 트랜스의 목소리’ 온라인 콘퍼런스를 열었다. 베이어 전 의원과 엘리자베스 케리케리 뉴질랜드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임푸른 전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대표가 발표자로 참석했다. 진행은 김겨울 트랜스해방전선 대표가 맡았다. 

1999년 세계 최초 트랜스젠더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베이어 전 의원은 기조 발제에서 지난 8년간의 의정 활동 전후로 얻은 경험을 나눴다. 그는 “지역구 의원으로서 정치적 부담은 있었지만 1999년 당선 이후로 트랜스젠더와 성소수자를 처벌하고 차별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들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라고 말했다. 

또 트랜스젠더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우리의 존재를 불법화하는 사회와 시대 때문에 많은 이들이 스러져갔다”라며 “이들의 죽음은 너무나 비통하지만, 이들을 추모하고, 기릴 수 있는 날을 요구하고, 더 이상 누구도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엘리자베스 케리케이 의원은 이오테아로아 뉴질랜드 원주민(마오리) 성소수자 활동가이자 학자, 뉴질랜드 녹색당 비례대표 의원이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엘리자베스 케리케리 의원. ⓒElizabeth Kerekere

엘리자베스 케리케리 뉴질랜드 녹색당 비례대표 의원 겸 뉴질랜드 국회 양당 성소수자 네트워크(Parliamentary Rainbow Network) 공동 대표는 뉴질랜드 내 트랜스젠더 인권 옹호 활동을 소개했다. 뉴질랜드 국회는 국회의원의 약 10%가 성소수자로,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국회로 꼽힌다. 

케리케리 의원은 “국회에서 트랜스젠더가 더 많이 발언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트랜스 후보자를 발굴하고, 이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당사자들이 자신의 커뮤니티를 대표해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트랜스 인권을 옹호하는 일은 그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는 구조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누구도 폭력을 겪지 않는 사회, 이를 달성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장혜영 의원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한국 국회 내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비롯해 이를 전시하거나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혐오정치를 비판했다.  ⓒ장혜영 의원실

한국 트랜스젠더의 상황과 현실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한국 국회 내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비롯해 이를 전시하거나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혐오정치를 비판했다. 

장 의원은 “일부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왜 혐오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등 반성과 성찰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난 14년 동안 여러 차례 차별금지법 제정을 시도하며 많은 의원이 성소수자가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학습된 두려움으로 인해 토론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최근의 비통한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는 물론 국회 안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박한희 대표 ⓒ박한희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대표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박한희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대표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참여하며 한국 트랜스젠더를 향한 차별을 확인했다며 관련 내용을 발표했다. 박 대표는 “트랜스젠더가 사회에 인식된 지 수십 년이 되도록 국가기관의 실태조사가 2020년에야 이뤄졌다는 것은 트랜스젠더가 얼마나 정책적, 통계적으로 가시화되지 못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마스크 구매부터 화장실 이용까지 재화와 용역, 그리고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차별을 막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시급하다”라며 “현재 이에 부응하지 않고 있는 기성정치가 더 집중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임푸른 전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는 지난 21대 총선에 트랜스젠더 후보로 출마했다. ⓒ정의당
임푸른 전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는 지난 21대 총선에 트랜스젠더 후보로 출마했다. ⓒ정의당

임푸른 전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는 지난 21대 총선에 트랜스젠더 후보로 출마한 경험을 공유하며 “성소수자의 정치세력화가 퀴어운동 대중화의 핵심 과제라고 판단했기에 후보로서 많이 부족했지만 출사표를 던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많은 성소수자 후보들이 정당에서 후보가 되는 당내 경쟁 과정을 통해 대중을 설득하는 ‘성공 경험’을 하게 되면 퀴어운동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며 LGBTI 정치 활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날 행사에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를 비롯한 앨라이 약 160명 이상이 참여해 질의응답과 논의를 이어갔다.

행사를 공동주최한 김겨울 트랜스해방전선 대표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인 오늘 이렇게 뜻깊은 행사를 진행하게 돼 기쁘다”며 “오늘 콘퍼런스를 통해 트랜스젠더가 같은 시민으로 존중받게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윤지현 사무처장은 “트랜스젠더 인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해외 정치인의 활동을 듣는 것만으로도 오늘 참석한 모두에게 큰 용기와 힘이 됐다”라며 “앞으로 다채로운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한 더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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