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각
『4·3과 여성2, 그 세월도 이기고 살았어』 ⓒ도서출판 각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아버지 ‘빨간 줄’ 때문에 이미 우리 가족은 ‘폭도’ 가족이 돼버린 거야. 나는 폭도 가족이라는 소리도 듣기 싫고. ‘내가 군인으로 가서 빨갱이 누명을 벗어야지!’ 그 생각뿐이었어.” (1934년생 정봉영 씨의 구술사 중에서)

제주 4·3 제73주년 희생자 추념식을 앞두고 4·3 시기를 살아낸 여성 6인의 구술집이 나왔다. 제주4·3연구소는 『4·3과 여성2, 그 세월도 이기고 살았어』(도서출판 각)를 29일 펴냈다. 

지난해 4·3여성 생활사를 처음 기획, 주목받았던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에 이은 두 번째 구술집이다. 집필에는 허영선, 양성자, 허호준, 조정희가 참여했다. 10대 시절 4·3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거나 겪었던 여성들이 어떻게 그 삶을 통과해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직접 겪었던 4·3과 당시의 삶, 이후의 생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은 가장의 부재, 가족의 부재 속에서 자신들이 삶의 주체로 나서 그 공간을 감당했다. 살아내는 것이 최우선이었기에 작은 배움의 기회마저 멀었다. 시국 탓이었다고 하면서도 70여 년 동안 묻어둔 내면을 드러낸다. 

“빨갱이”, “폭도”라는 누명을 벗기 위해 군에 입대한 여성의 삶도 소개됐다. 정봉영 씨는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해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귀향했다. 마을 이장이던 아버지를 1950년 예비검속으로 잃었다. 어머니는 고문 후유증을 앓았고, 막냇동생은 굶어 죽었다. 6남매의 맏이였던 그는 소녀가장의 삶을 살아야 했다. 가난보다 힘들었던 폭도 가족’이라는 누명. 아버지의 ‘빨간 줄’을 벗기 위해 19살에 여군에 지원했다.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죽을 것 같은 세월을 버티고 견뎌낸 제주4·3의 여성들은 삶이란 이런 것임을 말없이 보여준 존재들이었다"며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혹한을 이겨내고 살아낸 당당하고 위대한 한 인간의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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