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 충분히 고려치 않고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할 수 없어"

대법원 ⓒ뉴시스
대법원 전경. ⓒ뉴시스·여성신문

성범죄 피해자가 범행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일부 진술을 바꿔도, 핵심적인 내용이 일관된다면 진술 신빙성을 의심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피해자 진술에서 부수적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빙성을 의심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A씨는 2019년 전철에서 피해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피해자가 대략적인 외모 조건을 말하며 A씨를 행위자로 특정했다"며 "일면식도 없는 A씨를 상대로 법정에서 허위의 진술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벌금 800만원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반면 2심은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는 이유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피해자의 진술이 가방을 든 왼손으로 추행당했다는 것에서 들지 않은 오른손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바뀐 점을 판단 근거로 들었다. 또 피해자가 수사 과정과 달리 법정에서 추행 인지 장소와 시점, 이후 행위 등에 관해 새롭게 진술했으며 CCTV에 범행 장면이 담기지 않았다는 등 이유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했다"고 지적했다.

"범행을 저지른 손에 관해 피해자의 진술이 바뀐 것은 피해자가 범행 당시 경황이 없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범행 당시 A씨가 메고 있던 가방에는 어깨끈과 손잡이가 모두 달려 있었고, A씨가 가방을 왼쪽 어깨에 메고 있던 점이 판단 근거로 거론됐다. 범행이 시작됐다고 인지한 전철역을 바꿔 말한 점 등은 재판에서 새롭게 추가된 진술이긴 하나 대부분 공소사실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부족하다는 게 대법원 설명이다.

CCTV에 관해서는 "해당 영상은 전동차 안의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전동차를 타기 전 계단 및 승강장에서의 영상과 전동차에서 내린 이후에 상봉역에서 이동하는 뒷모습 영상 등에 불과하다"면서 "진술과 객관적으로 배치되는 영상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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