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비밀정원] 성차별주의와 여성, 그리고 정치
[정치의 비밀정원] 성차별주의와 여성, 그리고 정치
  •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 승인 2021.03.27 08:00
  • 수정 2021-03-25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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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주의, 없다? 있다!

 

2020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한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상원의원은 준비된 대통령 후보로 평가받았으나 낮은 지지로 결국 중도 사퇴했다. 사퇴 이후 진행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워런은 성별(gender)은 모든 여성을 궁지로 몰아넣는 질문(trap question)”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만약 여성(후보)이 경선과정에 성차별주의(sexism)가 있다고 답하면, 모든 사람들이 징징댄다고 말한다. 그리고 만약 성차별주의가 없다면 말하면, 수억 명의 여성들이 도대체 당신(여성후보)은 어느 행성에서 살고 있냐?’라고 생각한다.”(Edelman 2020)

정치에서 여성과 남성은 결코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현재 조 바이든(Joe Biden) 행정부의 교통부 장관인 피터 부티지지(Pete Buttigieg)37세의 나이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 누구도 그의 정치적 야망(political ambition)을 문제 삼지 않았다. 70대였던 조 바이든,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트럼프(Donald Trump)의 대권 도전도 노욕이라며 비난받지 않았다.

반면, 워런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매사추세츠 유권자들로부터도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2018년에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매사추세츠 유권자 중 58%가 그녀의 대통령 출마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Victoria and Pindell. 2018). 어떤 유권자는 매사추세츠주에서 최초 여성 상원으로까지 뽑아줬는데 뭘 더 바라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팟캐스트 아메리카노2020, 2020).

남성에게는 긍정적으로 이야기되는 정치적 야망과 도전이 여성에게는 부정적으로 이야기되는 현상이 낯설지 않은 데는 우리의 무/의식 깊숙이 존재하고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성차별주의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별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성향으로서 성차별주의는 여성이 정치권력을 갖고, 지도자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지속적으로 가로막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양가적 성차별주의, 벌과 보상을 통해 여성의 종속 정당화

양가적 성차별주의(ambivalent sexism)를 제시한 글릭과 피스크(Peter Glick and Susan T. Fiske)는 성차별주의를 적대적 성차별주의(hostile sexism)와 온정적 성차별주의(benevolent sexism)로 구분했다.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을 남성의 권력을 빼앗는 존재로 보고 적대하는 관념이며,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전통적인 성역할 규범을 수용하는 여성에 대해서는 보호와 보살핌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관적이고 호의적이며 예의바른 관념이다.

상반되는 두 개의 성차별주의는 남성들에게 인지적 부조화 없이 수용되는데 이는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남성이 여성보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현상태에 도전하는 여성들에게는 벌(punishment)을 주는 방식으로,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전통적인 성별 역할과 권력관계를 수용한 여성들에게 보상(reward)을 주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양가적 성차별주의는 서로 구분되는 방식으로 작동하나 사실상은 상호 보완적으로 가부장주의와 전통적인 성별관계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Glick and Fiske 2001).

19개 국가의 15,000명을 대상으로 양가적 성차별주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의 적대적·온정적 성차별주의 평균 점수가 높은 국가들에서는 여성의 적대적·온정적 성차별주의 평균점수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Glick and Fiske 2001). 즉 한 국가의 남성들이 성차별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하게 수용하면 할수록 여성들도 이를 수용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별 적대적 성차별주의 ⓒ출처: Glick and Fiske(2001)
국가별 적대적 성차별주의 ⓒ출처: Glick and Fiske(2001)

 

국가별 온정적 성차별주의  ⓒ출처: Glick and Fiske(2001)
국가별 온정적 성차별주의 ⓒ출처: Glick and Fiske(2001)

 

그런데 남성의 성차별주의가 증가할수록 적대적 성차별주의에 대한 여성의 수용성은 약화되는 반면, 온정적 성차별주의에 대한 수용성은 커지는 경향이 발견된다. 즉 모든 국가들에서 적대적 성차별주의 점수는 남성이 여성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정도로 높게 나타나는데 온정적 성차별주의 점수는 남성과 여성 간에 비슷한 수준을 보이며, 일부 국가들(쿠바,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는 여성의 온정적 성차별주의 점수가 남성보다 높다.

온정적 성차별주의에서 여성과 남성 간 점수 차이가 크지 않거나 여성의 점수가 더 높은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와 관련해 남성들의 (적대적) 성차별주의에 대한 여성들의 자기보호(self-protection)라는 설명이 있다. 왜냐하면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도 일부 남성들은 성적폭력에 대한 보호를 제공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자신의 생존과 보호를 위해 온정적 성차별주의를 수용한다는 것이다(Glick and Fiske 2001).

하지만 온정적 성차별주의 또한 여성이 남성보다 능력이 부족하며, 아래에 있다는 가부장적 인식과 태도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여성의 수행()을 약화시킨다는 점(Dardenne et al. 2007)에서 문제이며, 더 위험하다. 무엇보다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가시적으로 성차별로 인식되고 사회적으로도 비난받기 때문에 여성이 저항할 수 있는 반면,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남성이 여성의 짐을 들어주거나 식사비용을 내거나 여성의 능력을 칭찬하는 것 등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이 온정적 성차별주의에 저항하는 것은 쉽지 않다. 메리 잭맨(Mary R. Jackman)성별 불평등은 갈등과 적대보다는 가부장주의의 달콤한 설득(sweet persuasion)을 통해 가장 잘 유지된다며, 이를 겉으로만 부드러운 벨벳장갑전략(velvet-glove strategy)이라고 불렀다(Jackman 1994).

 

양가적 성차별주의 ⓒ출처: Emma(2020)
양가적 성차별주의 ⓒ출처: Emma(2020)

 

정치에 만연한 양가적 성차별주의를 깨부술 청년여성 후보와 유권자

이러한 양가적 성차별주의가 일상적이라는 점도 문제지만 시민을 대표한다는/대표하겠다는 정치인들이 성차별주의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고 있다는 점이 더욱 문제적이다. 안철수 후보의 도쿄에 아파트 가진 아줌마발언은 상대 후보인 여성 정치인을 정치인이 아닌 여성으로 규정하고, 그 여성을 깎아내리고자 했다는 점에서 적대적 성차별주의에 기초한 발언이다.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이 박영선 후보를 가리켜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를 보살피고 기를 그런 마음가짐, 딸의 심정으로 어르신을 돕는 그런 자세를 갖춘 후보라고 말한 것 또한 여성 정치인에게 엄마와 딸로서의 전통적인 여성 역할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온정적 성차별주의라고 할 수 있다. 보육을 논하면서 엄마 리더십을 강조하는 박영선 후보 또한 온정적 성차별주의 인식에 갇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성별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양가적 성차별주의는 정치에서의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 in politics)을 가능하게 하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정치질서를 유지시키는 기반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정치하는 여성들, 특히 20-30대 청년여성 정치인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 모두에서 심리적·정신적·신체적 괴롭힘과 위협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을 겪고 있다. 양가적 성차별주의가 지속적으로 용인될 경우, 청년여성의 정치참여는 더욱 더 어려워지며, 성평등한 정치와 민주주의도 불가능할 것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20대 여성들은 세대와 성별을 교차할 때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온정적 성차별주의 점수가 가장 낮은 집단이라는 것이다(이진옥 외 출간예정). 즉 남성이 만들어놓고 허락하는 마녀와 공주 유형 모두를 거부하고 있다. 또한 다수의 언론을 통해 거의 보도되지 않지만 거대정당들과 남성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요청하기보다는 스스로 성평등한 정치를 만들고자 하는 청년여성 후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으로 치르게 된 이번 4·7 재보궐 선거가 유의미성을 갖는다면, 그것은 성차별주의를 거부하는 청년여성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참고자료>

이진옥·권수현·서복경·장명선. 출간예정. 성평등한 정치 대표성 확보 방안 연구.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Dardenne, Benoit, Muriel Dumont, and Thierry Bollier. 2007. “Insidious Dangers of Benevolent Sexism: Consequences for Women’s Performa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3(5), 764-779.

Emma. 2020. “Benevolent sexism: a feminist comic explains how it holds women back.” The Guardian. August 13, 2020.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20/aug/13/benevolent-sexism-a-feminist-comic-explains-how-it-holds-women-back

Fraser, Gloria, Danny Osborne, and Chris G. Sibley. 2015. ““We want you in the Workplace, but only in a Skirt” Social Dominance Orientation, Gender-Based Affirmative Action and the Moderating Role of Benevolent Sexism.” Sex Roles. 73, 231-244.

Glick, Peter and Fiske, Susan T. 2001. “An Ambivalent Alliance: Hostile and Benevolent Sexism as Complementary Justifications for Gender Inequality.” American Psychologist. 56(2), 109-118.

Jack, Mary R. 1994. The Velvet Glove: Paternalism and Conflict in Gender, Class, and Race Relations. Oakland,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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