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판벌려](끝)

4·7서울시장 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5일 오후 서울 중량구 명목동 울타리에 서울시장 후보들의 선거 벽보가 붙어있다. ⓒ홍수형 기자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 날인 25일 오후 서울 중랑구 울타리에서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서울시장 후보자들의 선거 벽보를 붙이고 있다. ⓒ홍수형 기자

어떤 여성에게 ‘여성정치’는 낯설고 어떤 남성에게 ‘페미니즘’은 익숙하다. 어떤 여성에게 ‘시월드’는 익숙하고 어떤 남성에게 ‘대리효도’는 낯설다. 어떤 여성에게 ‘나이 든 남자 앵커와 젊은 여자 아나운서의 조합’은 익숙해서 그는 어려서부터 늘 비슷한 풍경의 뉴스를 보게 된다. 하지만 어떤 남성에게 ‘안경을 착용한 여성 앵커’는 익숙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방송국에 어떻게 감히 여자 앵커가 안경을 쓰고 지상파 뉴스에 출연하느냐는 항의 전화를 수차례나 성실히도 한다.

그 결과 어떤 남성들이 뻔뻔하고 오만하게 행동할 때조차 어떤 여성들은 쭈뼛대며 겸손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이 고질적 구도를 바꿔보고자 나는 한동안 여성들에게 새롭게 말을 걸었다. 한 번 사는 인생 대장부처럼 걸출하게 살아봐도 된다고, 용맹하게 야망과 권력을 좇아봐도 괜찮다고,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일상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시도를 해보라고, 그러니 서둘러서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말라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친애하는 여성이 안전하기를 바라며 포털사이트에서 ‘여성안심홈세트’를 검색했다. 서울시에는 자치구별로 ‘여성안심홈세트’ 지급 정책이 정착되어 1인 가구 여성들에게 현관문 보조키, 문열림 센서, 창문 잠금장치 등이 무상으로 제공된다. 그러나 당장 다른 수도권 지역으로만 가도 이런 여성 안전 사업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기에 안전장치들을 하나하나 온라인에서 구입해야 했다. 이렇게 여성들은 안전하기 위한 비용을 직접 지불한다. 심지어는 그렇게 해도 온전히 안전해지기 어렵다.

이 현실은 번번이 외면되었다. 그리고 ‘여성 문제’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로 국회에서 방치되기를 반복했다. 그러니 코로나19 감염위기의 확산과 함께 지난 1년간 20대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퇴직을 경험하고, 여성용 위생용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여성 구직자를 채용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여성 정규직과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이 남성 정규직의 임금 대비 각각 70%와 53%에 머무르는 것이 버젓이도 가능했다.

그런데도 어떤 정치 평론가들조차 페미니즘 그 자체를 우리 사회가 당면한 급진적 과제로 보지 않고 진보 운동의 부수적인 갈래로만 여긴다. 그러한 탓에 여성의 몫은 정치라는 커다란 협상 테이블 위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쯤으로 치부되었다. 병역은 남성의 몫이자 보편적인 문제이며 국가적 책임의 영역으로 고려되는 반면, 임신중단은 여성의 몫이자 특수한 문제이며 윤리적 처벌의 영역으로 환원되는 것도 이와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 유권자들은 이번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주요 변수가 되어야만 한다. 여성 유권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충하는 공직선거 후보자를 노골적으로 심판하고, 개별 시민으로서 자신의 몫을 뻔뻔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것을 과감하게 선거판의 유효값으로 만들 때, 여성들은 정치가 나와 무관하며 그래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오래된 허무를 넘어설 수 있다. 그리고 문명의 중요한 진보란 거의 예외 없이 그 진보가 일어난 사회를 파괴하는 과정이라는 엘프레드 화이트헤드의 서술을 따라, 여성들은 허무가 아닌 패권에 대한 감각을 집단적으로 또렷하게 체득할 기회를 맞이할 것이다.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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