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디지털 성범죄, 신고 어렵고
1회 유포로도 무차별적 피해 발생...
단순 반성·초범이라 감형은 부당해
가해자가 직접 삭제 돕는 등 피해 회복 힘쓰고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가중 처벌해야”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가 'n번방 운영자 갓갓의 무기징역 선고를 요구한다' 기자회견을 열고 현수막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가 'n번방 운영자 갓갓의 무기징역 선고를 요구한다' 기자회견을 열고 현수막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텔레그램 성착취 실태가 드러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경찰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꾸렸고, ‘n번방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대법원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권고 형량을 높인 새로운 양형 기준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도 법원 판결이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는 비난이 이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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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반성’, ‘전과 없음’ 등을 이유로 형을 깎아주는 관행도 문제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고인의 의도, 반성과 무관하게 추가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20일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가 연 ‘디지털 성폭력, 양형부당을 말하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지적한 문제다. 유승희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성범죄 피고인들이 피해자에 대한 반성 없이 오로지 형량을 낮출 목적으로 반성문을 대필하거나, 성교육 감상문을 제출하거나, 사회봉사 혹은 기부 등을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는 자료로 제출해 감경받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또 “유포 전 삭제, 유포피해의 실질적 회복을 위한 자백, 모니터링, 삭제지원 등 피해확산방지를 위한 노력이나 피해자의 용서 없는 반성을 별개의 감경요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피고인이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는 경우 가중요소로 삼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백소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성범죄가 잘 드러나지 않는 ‘암수범죄’임을 지적하며 “피고인들이 형사처벌 전력이 없었던 것은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발되거나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다반사다. 디지털 성범죄 신고의 어려움,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 특정의 곤란, 1회 유포로 겪는 무차별적인 피해 등을 감안한다면 ‘형사처벌 전력 없음, 동종 전과 없음, 초범임’ 등의 사유는 감경요소에서 배제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단순해 보이는 행위가 끔찍한 결과를 낳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징을 잘 이해해야만 재판부가 정당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백 변호사는 “성착취물 소비자를 단순 소지죄로, 대규모 성착취물 유통 플랫폼 제공자를 단순 배포로 판단하는 것은 (피해자가 아닌) 피고인의 관점에서 피해의 성격과 심각성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성착취물 제작과 유통이 손쉬워진 만큼 제작과 유통을 활성화하는 플랫폼 운영자에 대한 적극적 규제가 성착취물 유통 산업을 막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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