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W초대석] 조나단 유 DRFA365예술극장 대표

개관 후 8년간 매일 문 열어...강화도 갈대밭 소극장을 영화 성지로
홈페이지 통해 리뷰 공유 등 관객과 실시간 소통, 1000편 본 사람도

조나단 유 DRFA365예술극장 대표 ⓒ여성신문
조나단 유 DRFA365예술극장 대표 ⓒ여성신문

지극한, 아니 지독한 사랑이다. 영화와 어머니에 대한. 섬 속의 섬이었다는 강화도 동검길, 망망한 갯벌 앞 갈대만 무성하던 황량한 땅에 집을 지었다. 다들 미친 짓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1층엔 35석짜리 작은 극장, 2층엔 지평선과 수평선이 번갈아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를 만들었다.

목표는 딱 두 가지였어요. 바다를 보며 영화평을 얘기할 수 있는 곳, 어느 날 문득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여기는 5070 여성들이 잠시나마 편히 쉬면서 행복해 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죠. 어머니를 모시면서 나이 든 여성의 삶이 얼마나 쓸쓸하고 안타까운지 절감했거든요.”

DRFA365예술극장은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조나단 유(유상욱, 57) 대표의 이런 간절함에서 생겨났다. 극장은 이름 그대로 1365일 문을 연다. DRFA는 디지털 리마스터링 필름 아카이브의 약자. 시중 영화관이나 TV는 물론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한 콘텐츠 서비스)에서도 볼 수 없는 예술영화를 상영한다.

고생한 사람에게 행복을 주자" 피아노 연주도

예술영화지만 난해하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5만여편의 수집작 중 고르고 고른 것들이거든요. 주로 운명에 맞서는 이들의 고단하되 진실한 삶을 담은 작품입니다.” 상영 전 이뤄지는 유 대표의 피아노 연주는 덤. 그렇게 8. DRFA365예술극장은 연인원 30여만명이 다녀간 명소이자 5070여성 영화팬들의 성지같은 곳이 됐다.

남들은 기적이라지만, 실은 단 2명을 위해서도 상영하고, 직접 만든 홈페이지를 통해 하루 18시간 이상 관객과 소통하는 등 필사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애써 찾아오는 관객을 위해 2013년 개관 이래 하루도 쉬지 않았다는 유 대표를 3월 중순 광활한 갯벌이 한눈에 들어오는 극장 2층 카페에서 만났다.

“‘고생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자가 모토에요. 이게 아니었으면 못 버텼을 거에요. 죽자고 매달리니 관객이 알더군요. 오는 사람마다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 내 안에 이토록 뜨거운 감동공간이 있는 줄 몰랐다. 삶의 기쁨을 일깨워줘 고맙다며 사방팔방 소문 내고 지인들과 다시 찾습니다. ‘15세 미만 입장 불가를 고수하는 것도 5070여성들의 부담감을 덜어 드리기 위한 장치죠.”

DRFA365예술극장 ⓒ여성신문
DRFA365예술극장 ⓒ여성신문

여성의 인생· 클래식 주제로 삶의 온기 전달

상영작의 주제는 여성은 무엇으로 사는가’(80%)클래식음악 내지 음악가의 삶’(20%) 등 두 가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영화 중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영화를 고른다. 미개봉작이 많지만 개봉작 중 평단과 관객이 놓치고 지나간 것도 챙긴다.

국내 영화계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평론이에요. 지면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평론가 스스로 대중의 의식을 선도할 미지의 영화를 찾아 품을 파는 노고를 포기한 탓이 크죠, 그 역할을 대신하려 합니다. ‘좋은 영화는 마음으로 먹는 알약이니까요.”

그동안 수집한 필름은 5만여편. 번역과 디지털작업을 거쳐 상영한 건 2000편 정도. ‘1937년작(오케스트라의 소녀)’부터 2014년작(보이콰이어)까지 다양하지만 1950년대 작이 많다. 흥행에 성공한 건 100여편. 최고는 천국에 있는 것처럼’(2004, 스웨덴)이다. 최근엔 여성 3대의 삶을 그린 사랑은시리즈로 호응을 얻었다.

극장이든 카페든 성공의 관건은 운영이다. DRFA365예술극장이 코로나19대유행에도 건재한 건 좋은 콘텐츠와 독특한 공간에 더한 남다른 홈페이지 덕분이다. 유 대표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DRFA 홈페이지는 늘상 살아 움직인다. 객석 예약부터 질문, 관람후기, 유 대표의 솔직한 답변까지 실시간 소통이 이뤄진다.

개설만 하고 방치할 거면 왜 만드나 싶었지요. 접근성 확장과 자유로운 쌍방향 소통을 위해 PHP(웹페이지용 프로그램)를 배워서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짰어요.” 실제로 DRFA365 홈페이지엔 환불규정부터 기존 상영작 소개, 추천영화, 회원등급제 안내 등 유 대표의 열정과 부지런함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빼곡하다.

DRFA365예술극장 ⓒ여성신문
DRFA365예술극장 내부 모습 ⓒ여성신문
DRFA365예술극장 ⓒ여성신문
DRFA365예술극장 외부 전경 ⓒ여성신문

관객 90% 여성, 허전함 달래고 자존감 회복

어머니 사랑에서 비롯된 외롭고 허전한 여성들의 힐링공간 창출이란 그의 기획과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관객의 90%가 여성이에요. 대부분 5070이죠. 못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해요. 그동안 1000편을 본 분도 있어요. 영화 관람을 위해 경기도 하남에서 김포로 이사하셨대요. 정기 후원자도 10명 넘구요.”

그는 DRFA를 통해 예술영화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영화 수입업자나 멀티플렉스 관계자들이 관객 수준을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는 것같아요. 진지하고 철학적인 영화는 통하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거지요. 우리 관객들은 ‘DRFA 영화는 믿고 본다고들 합니다. 시나리오 완성도, 감독의 연출, 배우의 연기, 관람 후 감동에 대한 암묵적 신뢰가 형성된 셈이지요.”

유 대표의 이력은 화려하다. 20대 초반인 1987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 친구여’ ‘켄터키 옛집이 당선된 데 이어 다음해 두 여자 이야기가 연속 당선됐고, 96년엔 종려나무숲이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갓서른에 감독으로 데뷔한 뒤 절대사랑’(1993), ‘피아노맨’(1996),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1999), ‘종려나무숲’(2005) 등을 잇따라 연출해 국내외에서 주목 받았다. 각본과 감독을 겸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99년 유바리 판타스틱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고, ‘종려나무숲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조나단 유 DRFA365예술극장 대표 ⓒ여성신문
조나단 유 DRFA365예술극장 대표 ⓒ여성신문

번역자 양성 시급, 차기작 버뮤다’ 7월 크랭크인

유 대표는 요즘 부쩍 바빠졌다. 제작각본연출을 맡은 차기작 '버뮤다'가 오는 7월 촬영에 들어가기 때문. "실종된 변호사를 15년째 추적하는 형사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극장 운영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일. 앞으로 4000편 정도 더 상영할 계획이에요. 고정관객이 많으니 작품을 자주 바꿔야 해요. 필름 디지털화도 힘들지만 번역과 저작권 해결이 더 큰 문제에요. 번역이 잘못되면 완전히 엉뚱한 내용이 되거든요. 좋은 번역가들은 마블이나 블록버스터에 집중하고. 그래도 꾸준히 동참해주는 번역가들이 모여들고 있어 고무적이에요.”

이밖에도 할 일은 태산같다. 극장을 운영할 후계자를 양성하고, 보다 나은 시나리오를 위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영화 제작을 위한 조나단유필름의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DRFA365와 시나리오스쿨을 영화제작 메카로 만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싱글이라 뭐든 과감하게 시도하고 올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나단(성서 속 사울왕의 아들로 다윗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떠난 요나단)이란 이름처럼 영화와 5070여성들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 남은 인생도 모두 바치겠다는 유 대표의 얼굴엔 외길을 걷는 이 특유의 천진하고 맑은 기운이 넘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