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A중, 색깔 있는 속옷 입으면 벌점 부여
충북 B고 “불편함 주는 색깔의 속옷 안돼”
서울·충북 중고교 10곳 중 2곳, 속옷·스타킹·양말 통제
청소년 인권단체 “여학생 속옷 규제는 인권침해·성차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하복을 입은 학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하복을 입은 학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강남구 A중학교 여학생들은 교복 착용 시 반드시 흰색이나 살구색 속옷을 입어야 한다. 다른 색의 속옷을 착용했다가 걸리면 벌점이다. 충북 B고등학교에서도 여학생들의 속옷 색깔을 단속한다. “흰 셔츠를 입었을 때 속옷이 비치면 남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학생 인성 지도 차원”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당사자인 청소년들과 청소년 인권단체들은 “속옷까지 규제하는 건 지나친 통제”, “특히 여학생 속옷만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은 명백한 성차별”이라고 반발했다.

서울 강남 A중, 색깔 있는 속옷은 벌점...스타킹·양말도 통제
충북 B고 “불편함 주는 색깔의 속옷 안돼”

서울 강남구 A중에서는 학생들의 속옷과 스타킹, 양말 색상과 무늬를 규제한다. 사진은 A중 학생생활규정. ⓒ학교알리미
A중 학생들이 색깔 있는 속옷을 입거나 속옷을 안 입는 경우, 양말 및 스타킹 규정을 위반할 때는 벌점을 받는다. 사진은 A중 학생생활규정. ⓒ학교알리미

서울 강남구 A중에서는 학생들의 속옷과 스타킹, 양말 색상과 무늬를 규제한다. A중 학생생활규정에 따르면, 여학생은 반드시 흰색이나 살구색 속옷을 입어야 한다. 양말은 흰색이고 발목까지 덮는 길이여야 한다. 춘추복에는 살구색 스타킹을, 동복에는 학생용 검은색 스타킹을 신어야 한다. 다른 색깔 속옷을 입거나 속옷을 안 입는 경우, 양말 및 스타킹 규정을 위반할 때는 벌점을 받는다.

A중 생활부장은 “학생들이 소속감을 느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복장 규정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규정을 철저히 지키고 통일되며 반듯하게 보이는 모습이 좋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의견도 있다”면서도 “규정이 필요 이상으로 구체적이고 성차별적인 부분도 있어 올해 안에 규정을 바꿀 예정이다. 속옷 색깔 등 일부 규정을 삭제할 계획이다. 학생인권조례도 참고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충북 B고 학생생활규정. ⓒ학교알리미

충북 B고에서도 학생들의 속옷 색상을 제한한다. B고 학생생활규정에는 ‘하복 착용 시 지나치게 불편함을 주는 색상은 착용하지 않는다’고 명시돼있다.

B고 생활부장은 “여름에 흰색 와이셔츠를 입으면, 속이 비치니까 색상이 있는 속옷을 입은 학생이 눈에 띌 경우 주의해서 입으라고 지도한다”고 말했다. 또 “인성 지도 차원이다.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며 “(속옷 색깔 규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다면 학교에서도 인권침해 사례가 없도록 학생, 학부모, 교사가 서로 논의해서 규칙 개정에 대해 논의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과 충북 중고교 10곳 중 2곳, 학생 속옷·스타킹·양말 통제

속옷과 스타킹, 양말 등 색상과 무늬를 제한하는 학교가 더 있다. 지난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주지부추진모임이 충북 지역 중고교 211곳을 대상으로 학생생활규정을 조사한 결과, 속옷·스타킹·양말의 색상과 모양을 제한하는 학교가 19.9%였다.

문장길 서울시의회 의원은 8일 서울시 관내 여자 중·고교 학생생활규정을 살펴본 결과를 밝혔다. ⓒ서울시의회<br>
문장길 서울시의회 의원이 8일 공개한 서울시 관내 여자 중·고교 학생생활규정 조사 결과, 속옷을 통제하는 학교들이 있었다. ⓒ서울시의회
서울시 여자 고등학교 85개교 중 22개교(25.9%)에서 아직도 속옷의 착용 여부와 색상, 무늬, 비침 정도를 규정하고 있다고 나타났다. ⓒ서울시의회<br>
장길 서울시의회 의원이 8일 공개한 서울시 관내 여자 중·고교 학생생활규정 조사 결과, 속옷을 통제하는 학교들이 있었다. ⓒ서울시의회
 

서울도 마찬가지다. 문장길 서울시의회 의원이 8일 공개한 서울시 관내 여자 중·고교 학생생활규정 조사 결과를 보면, 중학교 44개교 중 9개교(20.5%), 고등학교 85개교 중 22개교(25.9%)에서 아직도 속옷의 착용 여부와 색상, 무늬, 비침 정도를 규정하고 있었다.

문 의원은 “속옷 규정이 있는 학교 규칙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권이 그 무엇보다 중시되고 있는 시대에 존재한다고는 믿을 수 없는 학교 규칙들이 아직도 운영되고 있다”면서 “속옷, 양말, 스타킹의 색상이나 모양 등까지 학교 규칙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은 과도한 학생 인권침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이를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 5일 문 의원이 발의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존 학생인권조례에는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생의 의사에 반해 복장,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해서는 아니 된다. 다만, 복장에 대해서는 학교 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어 문제가 됐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며 이제 본 조항이 전면 삭제됐다. 문 의원은 “본 조례개정을 통해 모든 학생의 존엄과 가치가 완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하루빨리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청소년 인권단체 “여학생 속옷 규제는 인권침해·성차별”

10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주지부추진모임은 '충북지역 중고등학교 인권침해 학생생활규정 조사'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nbsp; ⓒ아수나로
2020년 12월 10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주지부추진모임은 '충북지역 중고등학교 인권침해 학생생활규정 조사'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아수나로 청주지부추진모임

청소년 인권단체들도 속옷 규제가 명백한 인권침해며 특히 여학생들에게 '여성다움'을 강요하는 성차별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송민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주지부추진모임 활동가는 “속옷을 포함한 복장 규정은 청소년이 원하는 옷을 입을 자유와 자신의 신체를 지킬 건강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특히 속옷 단속 과정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수치심과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다. 대체로 여학생이 단속의 집중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송 활동가는 “개별 학교에서 속옷 관련 규제와 관련된 모든 조항을 삭제하는 등 교칙을 개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 조례를 도입하고, 학생 인권을 법으로 보장하는 학생인권법을 제정해 부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면서 “학교가 학생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동등한 주체로 보는 시선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양지혜 청소년페미니스트네트워크 위티(WeTee) 사무처장은 “학교가 학생의 신체와 복장을 검열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인권침해다”며 “속옷이나 와이셔츠 등 복장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교사가 학생 몸을 만지거나 막대기로 찌르는 등 학내 성폭력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문제 제기했다.

양 사무처장은 “특히 여학생들에게 엄격한 학생생활규정은 학생들에게 '여성다움'을 강제하는 도구다. 학생인권조례를 도입하고 이 내용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인권법 등 법제화를 통해 학생의 인권침해를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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