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용린 푸른나무재단 이사장
학폭 예방·치유 전담 비영리단체 수장
“지금 벌어지는 ‘학교폭력의 재연’ 주목해야
피해자의 아픔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학폭은 끝난 것 같아도 끝난 게 아냐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시작”

문용린 푸른나무재단 이사장 ⓒ홍수형 기자
문용린 푸른나무재단 이사장이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홍수형 기자

연초부터 ‘학교폭력’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TV조선 ‘미스트롯2’ 참가 가수 진달래, 프로배구 선수 이재영·다영 자매와 송명근·심경섭씨, 박상하씨 등 유명인들이 과거 학교폭력 가해자로 밝혀져 퇴출당했다. 피해자들이 직접 공개 고발에 나서면서, ‘미투(#MeToo) 운동’에 빗대어 ‘학폭 미투’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학교폭력의 재연’, 즉 학교를 떠나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 가해자를 피해자가 우연히 마주치며 부정적 심리 반응을 일으켜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학폭은 학교와 부모들 간 합의, 경찰과 법원의 처분으로 일단락되는 게 아닙니다. 피해자의 아픔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학폭은 끝난 것 같아도 끝난 게 아닙니다.”

문용린 푸른나무재단(구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은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학교폭력 치유의 시작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성인이 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치유를 돕는 다양한 활동도 펼쳐나가겠다고 했다.

1995년 설립된 푸른나무재단은 학교 현장에서 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화해시키고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학폭으로 자식을 잃은 김종기 재단 명예이사장이 학폭 예방과 치료를 위한 활동을 목적으로 설립한 비영리민간단체다. 올해 설립 26년을 맞았다. 대표 사업으로는 학폭 관련 심리 상담·분쟁 조정 등을 제공하는 ‘화해클리닉’, 10대들이 말 못한 인간관계 고민 등을 털어놓을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치유를 돕는 ‘아주 사소한 고백’ 등이 있다. 재단은 지난달부터 화해클리닉 참여 대상을 학교 재학생에서 성인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문 이사장은 재단 설립 20주년이던 2015년 제7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을 지내고 제19대 서울특별시교육감을 역임했다. 디지털 문명을 활용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사고하고 학습하는 ‘미래학교’를 제시했고, 전인교육 중요성을 강조해온 교육철학자다. 다중지능 이론 등 70여권에 이르는 저서를 쓴 교육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학폭이 발생한 그 시점에 충분한 사과와 화해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기는 예민한 시기인 만큼, 작은 갈등에도 관계 개선을 위해 조기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실제로는 피해자가 고립되고, 속앓이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측은 아무래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이고요. 피해자 부모가 ‘왜 가만히 맞고 있어, 같이 때려’라며 핀잔을 주기도 하죠. 가해자 부모들의 비협조적 태도도 학폭 해결을 어렵게 하는 한 요인입니다. 하지만 재학 중 학폭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향후 다시 재발해, 더 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걸 꼭 알아야 합니다.”

요즘 재단엔 과거 학폭을 고백하는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초·중학교 때 겪은 폭력을 고발하고 싶은데 온라인에 글을 올렸다가 고소당하진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피해자들의 용감한 말하기가 늘어난 것은 주목할 만하나, 대개 오래 전 일이라 조사도 증거 확보도 어렵다. 용기를 낸 피해자가 법적 해결은커녕 법적 다툼을 각오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진위를 떠나 한번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사회활동에 타격을 받거나 인권을 침해당하기도 한다. 과거 학폭을 저지른 사람이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는 없는지, 가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이유다.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로 접근하면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유야무야 넘어가 버리면 피해자는 긴 세월 고통받는다는 겁니다. 가해자라고 마음 편하기만 할까요. 죄의식과 불안증세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알고 보면 가해자도 다른 이에게 폭력을 겪은 피해자인 경우도 있습니다. 고통을 없앨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 그리고 이에 따른 피해자의 용서와 화해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시도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저희가 돕고 싶습니다.”

문 이사장은 “학교폭력이 아이를 불행하게 하는 가장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강도 피해자에게는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죠. 반 친구에게 맞으면 일단 피해자 본인이 말하기를 꺼립니다. 맞은 애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시선 때문이죠. 피해자의 비참한 심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애들이 전체 인구의 15%나 됩니다. 요즘은 폭력이 더 쉬워졌고요. 아이들은 한 대 맞는 것보다 카톡방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게 더 가슴 아프다고 해요.”

문용린 푸른나무재단 이사장 ⓒ홍수형 기자
문용린 푸른나무재단 이사장 ⓒ홍수형 기자

실제로 요즘 학교에선 은밀하고 교묘하게 따돌리고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조용한 폭력’이 더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재단에서도 이러한 학폭 양상 변화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2020년 2월 청소년 사이버폭력 대응을 위한 ‘푸른코끼리’ 사업을 시작했다. 5대 전략(예방교육, 문화확산, 연구, 상담과 치유, 플랫폼)을 바탕으로 학교로 찾아가는 예방교육, 교사·부모 대상 교육, 대국민 비폭력 캠페인, 국내외 포럼 등을 추진해왔다. 2015년부터는 카카오와 청소년 디지털 시민 교육 프로젝트 ‘사이좋은 디지털세상’을 진행 중이다.

2009년 유엔(UN) 경제사회이사회에서 특별협의지위를 받아 매년 경사리 사회개발위원회 회의에 참여해왔다. 2015년부터는 UN 본회의에도 매년 참석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한국의 청소년 폭력 유형의 변화와 사례를 국제사회에 공유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민-관-기업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문 이사장은 “학폭은 학교, 정부, 개인, 전문기관 등 각각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사회문제”라며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다자간 협력, 그리고 사회 전 구성원이 학교폭력 예방 주체가 돼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문용린 이사장 약력

푸른나무재단 이사장 (2015~현재)
제19대 서울특별시교육감
제40대 교육부 장관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미국 미네소타대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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