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의 모습. ⓒ여성신문·뉴시스
병원 신생아실의 모습. ⓒ여성신문·뉴시스

2020년 말, 일본인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 소식은 ‘정상’가족에 얽매이지 않고도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낭보로 다가왔다. 하지만 한국의 보조생식술 대상은 난임부부에 국한되어서 자원적 비혼모가 될 수 없다는 실망도 전해줬다. 해외에 나가 출산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과 사회적 능력이 없다면 한국에서의 행복한 비혼모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보편적 임신중단시술과 달리 보조생식술(체외수정)대상에서 비혼 여성들은 이처럼 차별 받고 있다. 명시된 법적 차별은 없다고 하지만 법규처럼 따르고 있는 대한산부인과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이 보조생식술 대상은 원칙적으로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구절벽’ 시대에 역행하면서까지 비혼여성들의 자원적 출산을 막아야만 하는 ‘윤리적’ 지침의 근거란 무엇인가? 더욱이 일본에선 되고 한국에선 안 된다?

사유리씨 출산은 지나간 일도 떠올리게 했다. 1996년 미국 한 대학의 인류학 수업에서 친족체계를 설명하고 보조출산 기술발달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친족관계의 변화에 대해서 학생들 의견을 물었다. 한 여학생이 자신이 시험관 아기(체외수정)였다며 엄마는 딸을 낳을 수 있었던 기쁨에 황홀했고 자기도 엄마와 행복하다고 했다. 당시에 극히 드물었을 ‘시험관 아기’가 벌써 대학생이 되어 그 수업에 있었다는 우연이 놀라웠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느꼈는지 논의주제를 자신들의 삶과 직접 연결시켜서 활기찬 토론을 열어갔다. 학생들은 아버지의 존재가 가족구성의 기본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 성소수자 학생은 레즈비언 커플이 한 명의 난자와 제공받은 정자로 수정된 배아를 다른 레즈비언 짝꿍의 자궁에 착상시켜 출산하면 이성애 부부같이 아기출산에 둘 다 참여할 수 있다면서 훗날 자신의 출산계획을 비추기도 했다. 친족체계를 연구한 레비스트로스의 논의를 재구성해야 할 듯이 학생들은 보관이 가능한 냉동난자와 냉동정자를 선후대 친족끼리 수정한다면 몇 세대 간 근친출산도 가능해질 수 있다면서 추정해 볼 수 있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었다.

1978년 ‘시험관 아기’가 처음 탄생한 이후 보조출산 기술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이 사회문화적, 윤리적 법적영역에서 부각되었다. 정자제공은 익명인지, 태어난 아기의 (아버지를) 알 권리에 따라 정체를 명시해야 하는지, 난자와 정자는 판매될 수 있는지, 선물로 기증돼야만 하는지 등 대리모 불법여부는 물론이고 사회마다 논의가 분분하다. 최근 중국 여배우가 대리모 주문아기를 퇴짜 놓은 (‘반품된 아기’) 스캔들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들의 심신을 착취하는 대리모출산은 중국에선 상업적으로 확대되면서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보조생식술의 발달은 2011년에 이르러 자궁이식 출산을 성공시켰고 기술상 남성도 원하면 수차 시술을 통해서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됐다. 급기야 2018년 유전자편집 쌍둥이까지 태어나자 세계는 아기들의 생명을 도구화하는 과학자의 광기에 경악했다. 생명윤리와 법의 예방이 없었다.

생화학자인 다우드나와 미생물학자인 샤르팡티에 두 여성은 2012년 크리스퍼 체계를 이용한 유전자 편집가위 기술을 발명한 논문을 썼고 그 업적으로 2020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수상했다.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는 그들의 발명이 유전자 결함 환자들을 치유하고 장기적으로는 암 치료에도 큰 기여가 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그들이 논문을 발표한 후에 그 발명이 유전자편집 출산에 오용될까봐 갖게된 두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중국의 과학자 허젠쿠이가 두 여성 과학자들의 두려움을 무시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2018년 11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되지 않게 유전자를 편집한 세계 최초의 쌍둥이를 출산시켰다. 태어난 아기들의 면역체계에 어떤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생명이 시험되었다. 허젠쿠이는 불법 유전자편집 출산시술로 징역3년과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가볍게 처벌된 허젠쿠이를 보면 ‘맞춤아기’의 상업화로 드러날 미래의 디스토피아가 다가오는 듯하다.

덴마크 감독인 아네르스 토마스 옌센이 만든 영화 ‘사람들과 닭’(2015)을 보자. 임종의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자신은 친부가 아니라면서 어느 섬에 살고 있다는 친부를 알려준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죽었고 떨어진 섬의 아버지집에서 살고 있는 세 명의 이복형제들만 만나게 된다. 거기서 각기 기괴하게 살면서 형제모두의 출생비밀을 알게 된다. 유전자학 과학자였던 아버지는 불임이었는데 그의 줄기세포에 부엉이, 숫소, 쥐, 개와 닭 각각의 정자를 붙여서 여성들의 난자와 수정시켜서 그들 다섯 형제를 낳았고 어머니인 여성들은 비정상적 임신으로 출산 후 모두 죽음을 맞게 됐던 것이다. 다섯 아들들은 각기 기이한 특성을 보이고 모두 불임이다.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오형제는 기괴한 삶에 내던져진 채 떨어진 섬에서 혼란된 삶을 이어간다.

사유리씨처럼 한국의 비혼 여성은 원하면 출산할 수 있었야만 한다. 역대 최저 합계출산율 0.84명(2020년 기준)을 기록 중인 대한민국은 여성들의 출산 의지를 북돋으려는 각성이 없다. 허젠쿠이와 ‘사람들과 닭’의 불임 아버지와 같은 위험천만한 과학자들의 ‘생체실험적’ 출산과 ‘맟춤아기’의 상업화가 도래시킬 디스토피아는 막아내고 자원적 비혼모가 행복한 엄마가 될 길을 터주어야 한다. 여러 보조 출산기술의 장단과 쟁점에 대해서 성찰적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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