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줄 걸린 치마 아래로 지나가는 남성은
힘·명예 잃는다는 성차별적 통념 활용해
전통 통치마 ‘타메인’·생리대를 방어선 삼아
미얀마 군부에 맨몸으로 맞서다시피 하는 미얀마 국민들에게 최근 새로운 저항 수단으로 뜻밖의 물건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여성의 치마와 속옷, 생리대 등 여성용품이다.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미얀마 반군부 비폭력 시위에서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방식은 ‘론지(longyi)’라고도 불리는 여성 전통 통치마 ‘타메인(Htamain)’과 생리대, 속옷 등을 빨랫줄에 널어 높이 걸어놓는 것이다.
예로부터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는 ‘타메인을 걸어놓은 빨랫줄 밑을 지나가는 남성은 힘과 명예를 잃고 불운을 맞는다’는 미신이 있다. 여성의 신체를 가리는 데 사용되는 물건 아래를 걸어가는 게 금기시된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혐오적인 미신이 역으로 시위의 방어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마을 입구나 길거리에 걸린 빨랫줄은 일종의 바리케이드 역할을 하며 군경의 진격 속도를 늦추고 있다. SNS상에는 타메인을 제거하고 줄을 내린 뒤에 통과하는 군부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미국 로이터통신의 6일(현지시간) 기사에 따르면 익명의 20세 시위 참여자는 “요즘 젊은 세대는 더 이상 미신을 믿지 않지만, 군인들은 여전히 믿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약점”이라며 “긴급 상황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접근하면 우리는 좀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타메인 혁명’
지난 8일 세계여성의 날에는 ‘타메인 혁명’이라는 별칭과 함께 타메인의 무늬를 담은 깃발을 들고 여성운동과 반군부 운동이 함께 진행되기도 했다. 타메인을 숨겨야 한다는 보수적인 관념과 여성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타메인 깃발을 흔들자, 독재를 끝내자”라는 구호와 이미지가 SNS상에 확산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얀마 시민들의 반군부 시위 과정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여성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의미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날 시위는 여성들이 선두에 서서 진행했다. 시위대의 남성들도 타메인을 몸에 두르고 시위에 나섰다.
지난 2일 트위터에는 미얀마 카야주(州) 로이코의 한 여성 시위대가 생리대·브래지어 등을 들고 "군부는 생리대나 브래지어만큼도 우리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팻말을 내건 모습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번 시위에 미얀마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은 그간 지속된 성차별과 여성혐오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있다고 평가된다. 세계경제포럼이 2018년 149개국을 대상으로 성 격차 지수를 조사한 결과 미얀마는 88위에 그쳤다. 특히 여성의 정치참여는 133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한편 미얀마의 상황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유엔 인권사무소에 따르면, 지난 2월 1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60명 이상의 시위대가 군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자택 구금당했고 수백 명의 지도자가 체포됐다.
군부는 수지 고문이 압도적 승리로 당선된 지난해 11월 선거가 조작됐다며 권력을 장악했다. 선거위원회는 증거가 없다며 해당 혐의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