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트랜스젠더의 삶 이야기 그린
만화책 펴낸 말랑·샤이앤 작가
“트랜스젠더는 변태도 정신병자도 아닌
평범하고 존중받아야 할 시민...
숨어 사는 트랜스젠더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 전하고파”

트랜스여성이자 프리랜서 만화가인 샤이앤 작가, 트랜스남성인 말랑 작가를 8일 서울 서대문구 여성신문사에서 만났다.  ⓒ여성신문
트랜스여성이자 프리랜서 만화가인 샤이앤 작가, 트랜스남성인 말랑 작가를 8일 서울 서대문구 여성신문사에서 만났다. ⓒ여성신문
샤이앤 작가와 말랑 작가의 캐릭터 ⓒ꿈꾼문고 제공
샤이앤 작가와 말랑 작가의 캐릭터 ⓒ꿈꾼문고 제공

샤이앤 작가의 캐릭터는 긴 머리에 보라색 조가비를 꽂았다. 인간이 되고 싶었던 인어를 다룬 동화 ‘인어공주’가 트랜스젠더 이야기 같다고 생각해서다. 말랑 작가는 자신을 물고기 캐릭터로 그린다. 편견과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을 물고기로 표현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첫 책을 펴낸 만화가다. 만화 말고 무슨 일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노동자고, 연애와 인간관계 고민이 많은 청춘이며,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친 트랜스젠더다.

이들은 청소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트랜스젠더 이야기를 그린 만화책을 펴냈다. “공격을 받아도 좋으니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말랑 작가) 출판사의 제의를 수락했다. 병원 상담부터 수술, 관리까지 트랜지션 전 과정, 법원에 성별 정정 허가 신청하는 법 등 작가들이 직접 부딪히며 터득한 정보와 팁을 담았다. 많은 트랜스젠더가 겪는 ‘젠더 디스포리아’(타고난 성별과 자신의 성별이 불일치해 느끼는 불쾌함), 트랜스젠더의 연애와 인간관계 고민, 일상에서 겪은 폭력은 물론, 가족의 사랑과 지지에서 힘을 얻은 순간도 생생하게 그렸다. 

반응이 좋았다. 덕분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는 독자, 커밍아웃과 트랜지션 조언을 구하는 독자도 늘었다. 트랜스젠더 군인 고(故) 변희수 전 육군 하사도 “용기 있는 두 작가의 펜이 혐오자들의 낡고 녹슨 칼날을 부러뜨리길 기원하며, 이 책을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는 추천사를 남겼다.

200쪽도 안 되는 가볍고 얇은 만화책이지만 간결하고 힘 있는 메시지를 준다. 트랜스젠더는 당신 곁에 존재한다. 트랜스젠더는 ‘변태’, ‘정신병자’가 아닌 존중받아야 할 시민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라. 내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내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자책하지 말라. 도움을 청하라. 살아있으라. 행복하라.

말랑·샤이앤 작가가 펴낸 만화책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내 이름은 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꿈꾼문고, 2020) ⓒ꿈꾼문고
말랑·샤이앤 작가가 펴낸 만화책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내 이름은 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꿈꾼문고, 2020) ⓒ꿈꾼문고

“유튜브를 보니 외국 퀴어들은 당당히 자기표현을 하더라고요. 나도 그래야지 싶어서 만화를 그리게 됐어요.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싶었고, 우리끼리 연대하자는 의미도 있어요. 트랜스젠더들끼리도 사회의 시선을 이유로 교류나 정보공유를 꺼리다 보니 고립되기 쉽거든요.” 트랜스여성인 샤이앤 작가가 2019년부터 온라인에 트랜스젠더의 삶과 감정을 다룬 만화를 연재하는 이유다.

말랑 작가는 트랜스남성이다. 원래 만화를 그렸는데, 샤이앤 작가의 만화를 보고 반가워서 응원 댓글을 달다가 지난해부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낮에는 다른 본업에 바빠 매일같이 밤새가며 작업한 결과물이다. “우리가 변태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저도 그랬는데, 숨어서 사는 트랜스젠더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하고 싶었어요.”

트랜스젠더가 여성혐오를 강화한다?
“우리는 전통적인 ‘여성성’, ‘남성성’을
시스젠더보다 더 강요받는 피해자”

일각에서는 트랜스여성이 여성에게 요구되는 꾸밈노동, 수동적인 성 역할 등을 강화한다고 비판하지만, 트랜스젠더 작가들은 “우리는 전통적인 ‘여성성’, ‘남성성’을 시스젠더보다 더 강요받는 피해자”라고 항변한다.

“판사 입장에서 확실한 트랜스젠더라는 확신이 안 들면 성별 정정 허가를 해주지 않는다. 수십만원을 들여 정신과에서 진단서를 받을 때, 법원 심사를 받을 때에도 전형적인 대답과 행동으로 연기하라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현실”이다. 말랑 작가는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어릴 때부터 인형, 치마가 싫고, 로봇과 운동이 좋았다”라고 의사와 판사 앞에서 말하고서야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바꿀 수 있었다.

트랜스여성도 ‘예쁘고 여성스러워야’ 트랜스젠더로 인정받기 쉽다. 어느 판사는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트랜스젠더에게 “여자가 되고 싶다면서 왜 꽃을 안 좋아하냐”며 성별정정 신청을 기각했다. 두 작가가 성별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페미니즘 운동을 응원하는 이유다. 타고난 성 정체성으로 사람을 구분 짓지 않는 세상에서 트랜스젠더도 더 당당하고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트랜스젠더들에게 “커밍아웃을 하다니 용감하다”, “진짜 여자(남자)인 줄 알았다” 같은 말은 응원이라기보다는 씁쓸한 마음이 들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가짜가 아니고, 이렇게 태어났을 뿐이며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사는 방법이 이것뿐인 거예요.”  

트랜스남성인 말랑 작가를 8일 서울 서대문구 여성신문사에서 만났다. ⓒ여성신문
트랜스남성인 말랑 작가를 8일 서울 서대문구 여성신문사에서 만났다. ⓒ여성신문
트랜스여성인 샤이앤 작가를 8일 서울 서대문구 여성신문사에서 만났다.  ⓒ여성신문
트랜스여성인 샤이앤 작가를 8일 서울 서대문구 여성신문사에서 만났다. ⓒ여성신문

그동안 한국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 숙명여대 첫 트랜스젠더 합격생 A씨 등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늘면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 담론도 활발해졌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위해 싸웠던 고(故) 변희수 전 육군 하사, 교사·정치인이자 인권활동가였던 고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 등은 최근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변 전 하사님과는 생전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제가 본 군인 중 가장 군인다운 사람이었어요.” (말랑)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뉴스에서 볼 때마다 용감한 분들이다, 저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분들이 얼마나 남들 모르게 괴로워했을지 상상하면 마음이 무너져요. ‘우리는 그래도 살아남자’고들 하는데,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자신이 없어지긴 해요. 그래도 꼭 살아남는 게 중요해요.” (샤이앤)

공공연히 “나는 성소수자 차별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종교나 운동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이들은 아직 많다. 두 작가는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고 믿는다. 트랜스젠더에 대해 덜 무지하고, 더 이해하고, 더 응원하는 미래를 소망한다.

“외롭고 힘든 시간이 길었지만, 안 좋은 선택을 하면 제 정체성을 알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잖아요. 그게 더 슬퍼서 버텼어요. 우리에게 지금보다 더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저도 그런 세상이 올 수 있게 제 자리에서 도울 거예요.”(샤이앤 작가) “저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혐오발언을 부정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살아있는 게 최우선이에요. 다시는 친구들을 잃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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