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김현영·권수현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장
여성연합 비판해온 ‘영페미’
조직 점검·쇄신 위해 나서
외부·내부위원 18인 구성
‘박원순 피소사실 유출 사건’
경위 파악·기록·평가부터
조직 역할·문화 진단까지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 혁신위원회가 닻을 올렸다. 김영순 전 여성연합 상임대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을 유출했다는 검찰 발표가 나온 지 69일 만이다. 여성연합 조직의 문제를 총제적으로 점검할 이번 혁신위는 총 18인을 혁신위원으로 구성하고 3월 10일 첫 회의를 진행한다.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와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가 혁신위 공동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권김현영 위원장은 그동안 여성연합을 비판하며 쇄신을 요구해온 대표적인 여성학자이고, 권수현 위원장은 여성연합 내부 회원단체로서는 유일하게 피소 사실 유출 사건에 대해 비판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른바 주류 여성운동의 권력화를 비판해온 40대 ‘영페미’가 여성연합의 ‘혁신 키’를 잡게 됐다. ‘영페미 대표 체제’의 혁신위가 곪은 문제를 도려내고 여성연합을 쇄신으로 이끌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다음은 권김현영·권수현 여성연합 공동 혁신위원장과의 일문일답.

권김현영·권수현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 혁신위원장 ⓒ홍수형 기자
권김현영·권수현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 혁신위원장 ⓒ홍수형 기자

혁신 키 잡은 40대 영페미니스트

-여성연합 혁신위원장을 맡은 이유는. 위원장직을 맡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텐데.

권수현: “혁신위원회가 출범하게 된 원인이 여성연합이라는 조직에 있기 때문에 당초 외부인사 중에 한 분을 단독 위원장으로 세우려고 했다. 그런데 조직으로서 여성연합이 혁신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혁신의 주체이기도 때문에 적극적으로 혁신에 임하겠다는 의미에서 내부에서도 위원장을 선출해 공동위원장 체계로 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나왔다. 저는 여성연합 지부들과 회원단체들 대표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추천을 받아 (내부)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저를 추천해주신 이유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이 여연 전 공동대표가 남인순 전 의원에게 박원순 전 시장 관련 내용을 전달한 사건에 대해 여성연합 소속 단위 중에서 유일하게 비판 성명서를 발표했고, 이 성명서 내용에 대해 여성연합 이사님들이 공감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세대적 측면에서 좀 더 젊은 세대가 혁신위원회를 이끌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저를 추천해주셨다고 생각한다. 여러 핑계를 대고 거절하고 싶었으나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거절의 핑계를 찾지 못했고, 사건과 조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권김현영: “(여성연합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그 안에 들어와 비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영페미니스트 운동(1990년대~2000년대 초반) 당시 여성연합을 강력히 비판했다. 의제의 위계를 나누고 자원을 독점하며 대표 중심으로 돌아가는 여성연합의 운동 방식이 민주적이지 않고 여성주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비판을 수용해서 쇄신된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은 소통의 문제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누적된 문제가 혁신되지 못한 결과가 지금의 문제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여성연합은 30년이 넘었지만 진보적 여성들의 연합체를 넘어 페미니즘을 행동강령으로 수용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였다. 2010년대 중반에 여성연합 조직과 운동 방향의 혁신 논의과정에서 국내외 여성운동의 역사를 강령 중심으로 분석한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 비판적 입장에서 여성연합의 역사를 지켜보고 이후 지속적으로 의견을 내온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서 제안을 하신 게 아닌가 싶다. 여성연합이 저희 40대를 공동위원장으로 정한 것은 여성운동의 세대교체를 염두 한 측면과 함께 그만큼 조직을 쇄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판단해 고민 끝에 위원장을 맡았다.”

권김현영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장 ⓒ홍수형 기자
권김현영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장 ⓒ홍수형 기자

여성단체 연대체는 아직 필요하다

-세대 차이, 계층별 격차가 커지면서 더 이상 여성연합 같은 여성단체 연대체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권김현영: “여성연합이 없어지고 새 연대체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연합 쇄신을 통해 연합체 운동으로 낼 수 있는 시너지가 무엇인지. 없어졌을 때의 공백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점검하고 판단하는 것이 책임지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 ‘그릇’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역사가 있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구조적 힘이 있다. 이 힘을 제대로 사용할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여기에 집중해보자고 판단했다. 전국 조직으로 위상을 가진다는 점에서도 여성연합의 존재는 중요하다. 수년 전 혁신 논의에서 해체를 반대한 게 지역 지부였다. 여성운동은 기존의 남성중심 질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운동인데,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원동원 차원에서 서울과 지역의 격차가 있고 이를 메울 수 있는게 연합체 운동의 역할이 될 수도 있다. 연대체 대신 사건, 의제 중심으로 임시조직을 꾸리는 운동방식도 효율적인 부분도 있다. 이런 식의 임시 연대체도 필요하지만, 상시적으로 운동의 방향성을 논의하고 입장을 정리할 수 있는 연대체도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혁신위를 진행하면서 목표와 역할, 위상에 대한 서로 다른 이견을 교환하면서 답을 함께 찾아볼 예정이다.

권수현: “여성연합이 진보적 여성의제를 정당, 정부와 협상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여성연합이 가진 자원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여성연합의 자원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구분하지 못한 문제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거버넌스 원칙에 대한 재논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잘못이나 과오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은 여성운동, 여성단체로서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단체 연합체를 이대로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본다. 지금은 지역에서 여성운동이 자리 잡고 그들이 독자적으로 세력화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여성연합이 이들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 

권수현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장 ⓒ홍수형 기자
권수현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장 ⓒ홍수형 기자

피소 유출 사건 점검하고 정치권과의 관계 모색 

-혁신위가 논의할 첫 번째 의제는.

권김현영: “피소 유출 사건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먼저다.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조사하고, 이 과정에서 문제는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 개인의 잘못된 행동으로 유출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누적돼왔던 공사 영역의 분리 문제와 연대 과정에서 경계하지 못한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 초반 회의에선 그것이 문제였다는 것을 합의하는 과정이 이뤄질 것이다. 의사결정의 비민주성, 불투명성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권수현: “여성연합과 정치권과의 관계도 향후 운동의 방향성을 논의할 때 중요한 부분이다. 여성단체 뿐 아니라 시민사회 단체가 자신의 의제를 현실화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정치권에서 법제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권과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이어갈 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저는 활동가가 정치권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기존에는 단체 대표가 중심이었고 개인의 판단에 의해 정치권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사실상 지금까지 정치권에 들어간 여성들은 ‘386 네트워크’로 들어간 것이다. 여성들이 여성운동의 경력을 사실상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는 수단 이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여성운동 경력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벗어던지고, 후배들이 자신의 길을 따라 올 수 있으록 문을 열어놓는 역할은 거의 하지 않았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의제를 확대할 수 있는 좋은 조건 속에서도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여성정치인은 한 명도 없다. 자신의 직을 걸고 여성의제를 내세우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정치권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위의 발언을 하는 것에서 활동이 그친다. 지금 30~40대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86세대처럼 인적 네트워트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활동가들이 정치권에 들어가기 위해선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정계진출의 원칙, 경로를 짚어 볼 때가 됐다.” 

오는 8월 혁신안 발표 예정

-혁신위가 도출할 혁신안이 여성연합에 제대로 반영되는 것도 숙제다.

권김현영: “이번 일은 ‘박원순 사건’을 둘러싸고 반성폭력 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싶다. 반성폭력운동의 원칙을 다시 한번 공유하고 갱신하여 미투운동 이후의 운동방향과 공동의 목표를 세우는 혁신안을 모두가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혁신위원들에게 사전 설문을 한 결과 혁신위가 권고하는 혁신안을 자신의 조직을 혁신하는데 반영하고 싶다는 혁신위원이 있었다. 이번 기회에 단체 내 의사결정구조와 조직문화 혁신을 해내야 새롭게 활동가로 결합한 이들에게도 여성운동가로서의 보람과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권수현: “회원단체 대표인 저를 공동위원장으로 정한 것도 혁신안을 조직 안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본다. 혁신안을 어떻게, 얼마나 실행할 수 있는지는 단위마다 다를 수는 있다. 여성연합이 각 단체가 혁신안을 수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회

한국여성단체는 전국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로 구성된 진보적 여성단체 연대체다. 지난해 12월 30일 김영순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을 유출했다는 검찰 발표가 나온 지 69일 만이다. 여성연합은 검찰 발표 이튿날인 12월 31일 “여성단체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피해자와 공동행동단체에 사과했다. 1월14일 정기총회를 열어 김 대표 해임을 의결하고 ‘여성연합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조직을 쇄신하겠다고 선언했다. 18인으로 구성된 혁신위원회는 세대·지역별을 고려해 다양성을 확보했다. 외부위원은 권김현영 공동위원장을 비롯해 김현미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힉과 교수, 임윤옥 전 힌국여성노동자회 대표, 장임다혜 형시정책연구원, 문단내 성폭력 문제해결에 참여한 오빛나리 작가. 대학 내 여성인권운동을 해온 설정은 등이다. 내부위원은 전국 각 지역의 여성연합 지부 및 회원단체 활동가들이 대표가 아니라 활동가 증심으로 결합했다는 점이 특기할 점이다. 이들은 약 6개월간 활동하며 피소 유출 사건에 대한 원인과 배경을 진단하고, 여성연합 운동에 대한 점검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위원회 혁신안은 오는 8월 발표될 예정이다. 여성연합은 혁신안을 토대로 전국활동가대회, 임시총회 등을 통해 실천 플랜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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