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여학생에 치마교복 강제는 성차별”
교육부 바지 선택권 보장 권고에도
여전히 여학생은 치마만 입으라는 학교들
바지 입으려면 교장 허가 받아야…어기면 벌점
학생들 “인권침해 그만하고 선택권 보장하라”

‘여학생은 치마든 바지든 원하는 교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20여 년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전통, 관습 등을 이유로 불합리한 규정을 고집하는 학교들이 있다.  ⓒ여성신문/iStock
‘여학생은 치마든 바지든 원하는 교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20여 년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전통, 관습 등을 이유로 불합리한 규정을 고집하는 학교들이 있다. ⓒ여성신문/iStock

부산 A여고는 원칙적으로 학생들의 바지 교복 착용을 금지한다. 교장의 허가를 받아야만 바지 교복을 입을 수 있다. 단 “치마를 입지 못할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울산 B고에서도 '여학생은 치마를 기본으로 하되, 신체적인 문제가 있을 때에는 학교장의 허가를 얻어 바지를 착용할 수 있다'고 학칙에 명시하고 있다. 

‘여학생은 치마든 바지든 원하는 교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20여 년이 됐다. 그동안 여성부, 교육부,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 정부 부처와 국가기관도 '여학생에게 치마교복만 강제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판단하고 치마·바지 선택권을 제공하라고 일선 학교에 권고했다. 

학교 현장은 그새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여학생은 치마'라는 일선 학교의 경직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진 않았다. 전통, 관습 등을 이유로 불합리한 규정을 고집하는 학교들도 있다. 당사자인 학생들, 청소년인권 전문가들은 “인권침해”라고 비판했다.

"특별 사유" 있어야 교장 승인 거쳐 바지 허용하는 학교들
학생들 "춥고 불편...치마·바지 선택권 달라"

부산 A여고 학생생활규정 ⓒ학교알리미

부산 A여고는 학교장의 허가를 받은 학생만 바지교복을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 “학생에게 신체·심리적 문제가 있거나, 학생과 학부모 요청이 있는 등 특별한 경우”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학생생활규정에도 명시된 내용이다. 어기면 벌점이다.

학생들은 불편함을 호소했다. A여고 재학생 양모(19)씨는 "친구가 다리에 화상 흔적이 있는데, 바지교복을 입기 위해 5줄 이상 사유서를 작성해 학교에 냈다"고 말했다. 그는 "바지나 치마 선택권이 있으면 좋겠다. 춥기도 하고, 치마를 불편해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A고 졸업생 고민경(20)씨도 "바지교복을 입고 싶어도 허가를 받으려니 번거로워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치마만 입고 다녔다. 앉아 있으면 치마가 배를 눌러서 아팠고 불편했다. 하지만 허락을 받지 않고 바지를 입고 다니면 벌점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치마나 바지 선택권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학생자치회의 등 회의시간에 학생들 의견 반영해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실천했으면 한다"고 했다.

A고 생활부장은 "허리가 불편하다든지 추울 경우 치마 안에 타이즈나 체육복 바지를 입으면 된다"며 "건강상 어려움이 있을 경우 의사 진단서라든지 그런 자료가 있으면 바지교복 착용이 허용된다"고 말했다.

여학생 바지교복 착용 제한은 인권침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면서도 "아직 학생회장 등이 여학생 바지 허용을 공약으로 내세운 적이 없다. 앞으로 학생들이 치마와 바지를 병행할 수 있게 복장 규정을 바꾸자고 요구한다면 학생과 학부모, 학교 측이 의논해서 개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울산 B고 학생생활규정 ⓒ학교알리미

울산 B고에서도 원칙적으로 여학생들의 바지교복 착용을 금지한다. B고 학생생활규정에는 '여학생은 치마를 기본으로 하되 신체적인 문제가 있을 때에는 학교장의 허가를 얻어 바지를 착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B고 생활부장은 "여학생들의 바지교복 착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하지만 신체적 문제가 없는 여학생이 바지를 입는다고 해서 벌점을 주는 등 페널티가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학칙 개정 여부에 대해서 그는 "여학생들에게 물어보면 현재 대다수가 치마 착용을 선호한다"며 "대다수가 바지 착용을 원하거나 자유롭게 선택권을 주자는 의견을 낼 경우 학칙을 바꿀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학생들이 치마를 입고 하교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여학생들이 치마를 입고 하교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20여 년째 반복되는 ‘여학생의 치마·바지 선택권’ 논의

‘여학생의 치마·바지 선택권’ 논의는 20여 년째 현재진행형이다. "여학생들도 활동하기 편한 복장을 선택하게 해달라"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요구가 빗발치자, 2000년 3월 교육부는 학교에 여학생들이 바지와 치마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권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와 외부 기관은 ‘권고’만 할 뿐, 교복 규정은 각 학교가 알아서 정하는 게 원칙이다. 변화가 더딘 이유다. 2003년에도 여학생이 다니는 전국 4000여 중고교의 54%가 여학생에게 치마교복만 허용했다. 그해 정부는 ‘여학생 치마 교복 의무 조항은 남녀차별 소지가 있다’고 발표했다. 여성부는 “여학생 교복이 치마여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부족하고, 치마만 입을 경우 여학생의 행동과 태도를 규제하게 되어 성별에 따른 차별적 감정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개선을 권고했다. “전통을 무시하는 처사” “남성 차별”이라는 반발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여성부의 권고를 환영했다. 

‘여학생의 치마·바지 선택권’ 문제는 2013년 다시 이슈가 됐다. 한 여학생이 '여학생은 치마만 입게 한 교칙은 인권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여학생에게 치마교복만 강제하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청소년인권단체인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는 성명을 통해 '여학생이 바지 교복을 선택한다고 무슨 문제가 일어나냐'며 비판했다. 

2015년에도 서울 시내 중학교의 73%(281교), 고등학교의 59%(189교)만이 여학생에게 바지 교복을 허용했다(2015년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규정 점검 결과). 여중생 10명 중 3명, 여고생 10명 중 4명에겐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2020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여학생이 바지교복을 선택할 수 있게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그해 10월 교육부는 여학생 바지교복 선택권을 부여하도록 학교 교복구매 요령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1년 봄에도 여학생의 치마·바지 선택권은 100% 보장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교육청 "치마·바지 선택권 보장해야...학교 규정 점검·개선 권고하겠다"

교육청은 여학생들의 치마·바지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일선 학교 규정을 점검하고 개선을 권고해왔다며,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기원 부산시 교육청 학생생활교육과 장학관은 "2016년~2018년 부산 학교 생활규정을 전수조사해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학교에 대해서는 교칙 개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학생, 학부모, 학교 의견을 모두 수렴해 운영위원회를 여는 등 개정 과정이 복잡하다. 일부 학교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교칙이 남아있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또 "현행법상 학교 교칙은 자체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부당한 교칙이 있다면 개선하도록 교육청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며 "부산시 교육청 매뉴얼에도 여학생의 경우 치마와 바지 중 자율 선택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한다. A여고에도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개선을 권고하겠다"고 전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인권침해 학칙에 대해 논의하고 개정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배포하고 있다. '여학생 교복의 치마와 바지 선택권을 보장한 조항이 있다. 또는 여학생 교복의 치마 강제 착용 규정이 없다'는 문항도 포함됐다. 전흥수 서울시교육청 생활교육팀 장학사는 "학교 교칙에 인권침해 규정이 있으면 개정 절차를 거칠 수 있게 학기마다 학교에 체크리스트를 전달하고 안내한다"고 설명했다. 

전 장학사는 "해당 학교에서 학칙 개정에 대해 의견수렴을 거쳤는지 확인한 후 체크리스트를 통해 다시 한 번 구성원들이 인권침해 학칙에 대해 논의하고 개정할 수 있도록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교육청 생활교육팀은 학교 차원에서 매 학기 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인권침해 학칙에 대해 논의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배포한다. ⓒ서울시 교육청

청소년 인권단체 "여학생 바지교복 착용 금지는 기본권 침해"

청소년 인권 활동가들은 여학생 바지교복 착용 금지는 명백한 인권침해이며,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난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는 "여학생들에게 치마교복만을 강요하는 것은 복장의 자유 침해이자 여성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어떤 옷이 좋고 편한지는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에서 복장의 자유를 비롯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교육청 차원에서 지침을 내리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치이즈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도 "여학생 교복 바지 금지는 단순히 바지를 못 입게 하는 일이 아니라 청소년 인권침해고, 성별 이분법적 조치"라며 "여전히 학생인권에 대한 법이나 규칙이 없고 학교 생활부장 등 일부 교사의 생각대로 규정이 운영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반복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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