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튜디오 촬영회 성폭력 고발한 양예원씨
2018년 ‘미투’부터 승소까지
‘페미니스트’는 나의 훈장
피하지 않고 싸워서
디지털 성 산업 실체를 알렸고
누군가의 판례이자 용기가 됐다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을 고발한 지 3년, 양예원씨는 성폭력 생존자이자 연대자, 운동가가 됐다. “한국 여성들은 싸워서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웃으면서 싸울 거예요.” ⓒ여성신문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을 고발한 지 3년, 양예원씨는 성폭력 생존자이자 연대자, 운동가가 됐다. “한국 여성들은 싸워서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웃으면서 싸울 거예요.” ⓒ여성신문

양예원(27)씨는 꿈이 많다. 공부, 공예, 글쓰기... 해본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 고민인 20대. 그의 삶은 한동안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피해자’에서 멈춰 있었다. 2018년 5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면서부터다.

실명과 얼굴을 드러낸 젊은 여성, 그것도 SNS 스타의 ‘미투(#MeToo)’는 파장이 컸다. 여성을 착취해 돈을 버는 디지털 성폭력 산업을 폭로했지만, 순결하고 무결한 ‘피해자’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짜 피해자 맞냐’는 집요한 의심과 공격을 받았다.

그는 숨지 않았다. 증거를 모아 반격했다. ‘피해자다운 피해자’란 없다고, 성폭력 피해자가 숨지 않아도 된다고 외쳤다. 대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뒤이어 수많은 여성들이 디지털 성폭력 공론화에 나섰다.

미투 이후 3년, 양씨는 성폭력 생존자이자 연대자, 운동가로 거듭났다. 지금도 여러 생존자들이 그에게 용기를 얻었다며 고맙다고 하고, 상담을 청한다. 그는 “어차피 총대를 멘 김에 본보기가 되기로 했다”며 웃었다. “피하지 않고 싸워서 누군가의 판례가, 용기가 됐어요. ‘페미니스트’는 저의 훈장이에요. 한국 여성들은 싸워서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웃으면서 싸울 거예요.”

-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고발 후 3년, 대법원 승소 후 2년이 흘렀어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성공하면 공개할게요. 그래야 멋있잖아요(웃음).”

- 용감한 고발에 한국 사회는 응답했나요?

“정말 많은 게 바뀌었죠. 제 고발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디지털 성폭력을 공론화하는 데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불법촬영, 유포, 소지 등등 별 문제의식 없이 저지르던 일들이 범죄라는 걸 우리 사회가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디지털 성범죄 특별법’으로 처벌이 강화되는 등 법제도도 개선됐죠. 한국 여성들은 견디고 싸워서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어요.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요. 얼마 전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해외 제작진으로부터 취재 요청을 받았어요. 우리나라 여성들이 디지털 성범죄와 싸워 변화를 만들어가는 걸 주시하고 있대요.”

양예원 노출사진 최초 유포 혐의를 받고 있는 최모 씨가 지난해 7월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강제추행과 성폭력범죄특례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를 받은 '비공개 촬영회' 모집책 최모씨가 2018년 7월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최씨는 이듬해 징역 2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뉴시스·여성신문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사진계에 만연했으나, 2018년 양씨의 고발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온라인 유포된 사진을 찾아다니던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이 어리고 취약한 여성들을 협박해 착취하는 조직적 범죄라고 확신했다. 공통점이 있었다. 젊은 여성들에게 똑같은 의상을 입히고 일정한 표정과 포즈를 요구하는 식이었다. 정황 증거를 모아 경찰에 제출했다. 

사법부는 그의 손을 들어줬다. 2019년 8월, 대법원은 촬영자 모집책 최모(48)씨에게 강제추행과 성폭력범죄특례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그해 2월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양씨는 무고 혐의도 벗었다. 2019년 3·8 세계여성의날엔 김지은씨 등 ‘미투 운동’에 나선 여성들과 함께 한국여성단체연합 선정 ‘미투 특별상’을 받았다.

-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셨어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요.

“폭로 전 경찰서를 세 군데 찾아갔어요. 경찰들이 그랬어요. ‘성폭행도 아니고 성추행당했다며 뭐가 그렇게 힘드냐, 성적 취향의 문제 아니냐, 네가 돈을 받았으니 처벌은 힘들겠다, 무고죄로 역고소당할 수도 있다’...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폭로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큰 파장이 일 줄은 몰랐지만요. 사진 유포 피해가 더 심해질 거라는 건 각오했어요.”

‘미투’ 직후 그의 이름이 포르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에 떴다. 사람들은 IP 우회에 비밀 대화방까지 만들어 사진을 공유했다. 지우는 속도보다 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 사회가 그에게 덧씌운 ‘꽃뱀’ 프레임도 아직 강고하다. 양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피해자임을 반복해서 소명하고 설득해야 했다. 당시 그와 스튜디오 실장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 ‘스스로 원해서 촬영한 것 아니냐’고 의심할 만한 내용이 있었다. 상대 측은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양씨는 자신이 촬영을 거부하자 스튜디오 측이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연예인 데뷔를 막겠다고 협박했던 일부터, 가해자들이 어떻게 자신을 ‘가스라이팅’했는지 낱낱이 설명해야 했다. 조서가 두꺼워질수록 자존감과 자신감은 희미해졌다.

그가 고소한 스튜디오 촬영회 관계자 중 하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2차 가해는 더 집요해졌다. 언론이 주범이었다. 피해자의 학창 시절 평판, SNS에 올린 사진과 댓글 하나하나까지 캐내어 ‘착하고 연약한 피해자’상에 맞지 않는다며 보도했다. 그는 한동안 언론을 멀리했다. “면접 보듯” 기자에게 취재 의도와 방향을 낱낱이 확인하고야 인터뷰에 응한 적도 있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이 지난해 12월 펴낸 『2020년 반성폭력 이슈리포트 14호』에 그는 이러한 세태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이 모든 것은 피해를 본 그녀들의 탓이 아니다. 이 세대에 태어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녀들의 탓도 아니다. ‘창녀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여성들에게 자발적이지 않은 자발성을 쥐여주고 각자의 약점을 흔들며 세상에 고발하면 매장시켜 버리는 구조를 만들어 성을 착취하는 더러운 인간들의 탓이다. (...)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 누구한테 화를 내야 하는지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유튜버 양예원 씨가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비공개 촬영회' 모집책 최모(45·구속)씨의 강제추행 및 성폭력 범죄 등에 관한 특례법상 동의촬영물 유포 혐의에 대한 선고공판이 끝난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 뉴시스·여성신문 ⓒ뉴시스·여성신문
양예원 씨가 2019년 1월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비공개 촬영회' 모집책 최모씨의 강제추행 및 성폭력 범죄 등에 관한 특례법상 동의촬영물 유포 혐의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승소한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 숱한 2차 가해를 겪으셨잖아요. 무시하기보다 강경하게 대응하셨고요.

“터무니없는 공격이 많았죠. 이젠 신경도 안 써요. 누군가가 저를 알아봐도 어쩌라고? 맞아, 나야. 실물이 더 예쁘지? 이렇게 웃어버려요. 하하. 어차피 총대를 멘 김에 본보기가 되자는 마음이에요. 피하지 않고 싸웠어요. 디지털 성 산업의 존재를 알렸어요. 누군가의 판례가 됐고요. 저 하나 불살라서 여성들을 살렸다, 그러면 됐다고 생각해요. ‘잔다르크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이런 저를 보고 용기를 얻고 마음을 치유해요. 그래서 공격을 받으면 더 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이었나요.

​“‘쟤 멍청해서 당했어’, ‘멍청해서 자기 입으로 유튜브에서 떠들지’.... ‘멍청해서 성폭력을 겪는다’는 프레임이요. 성폭력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요. 현직 검사도, 정치인도, 의사도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피해자에게 그렇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막상 당사자 앞에선 한마디도 못 할 걸 잘 알아요. 그런 사람들이 저처럼 고질적인 성폭력 문제를 터뜨리고 싸울 준비가 된 용기 있는 여자들을 입막음하려는 게 가장 화나요.”

- ‘미투’ 이후 인터뷰, 토론회, SNS 등을 통해 꾸준히 여성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셨죠. 포털 사이트에서 ‘양예원’을 검색하면 ‘페미니스트’가 함께 떠요. 그런 평가가 부담스러운 적은 없었나요.

“제게는 그게 훈장이에요. 페미니즘은 우리가 받아들이고 당연시할 문화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를 부담스러워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그게 뭔지 모르니까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누가 저더러 ‘메갈’, ‘꼴페미’라고 하면 제가 잘살았구나 싶은데요. 애인에게도 그래요. 야, 나 메갈이잖아. 그러면 애인은 ‘알아. 내가 잘할게’ 해요(웃음). 남자지만 그게 불편하지 않은 거예요.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중요한 건 여성들의 변화죠. 여성들이 바뀌면 남성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바뀔 거예요. 열심히 노력하는 많은 활동가들, 페미니스트들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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