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세대 서양화가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아꼈던 화가
아대가자야(我待賈者也), 관객이 원하는 진짜 예술 추구

영국의 역사학자 콜링우드(R.G. Collingwood)는 “현재의 눈을 통하지 않고는 과거를 바라볼 수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역사란 과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함이다”라고 했다. 한국미술을 세계화하는 것은 한국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일이기도 하다. 세계미술사 흐름속에 한국미술이 언급되고 논의될 수 있어야만 진정한 대외적인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미술사를 정리하여 한국 근현대미술을 재정립할 때, 역사는 미래를 비춰주는 빛이 되어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바를 밝혀줄 것이다.

박항섭 Park Hang Sub, 무제 Untitled, 1964,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41x31cm, 개인 소장. © Image Copyright Park Hang Sub Estate, Collector
박항섭 Park Hang Sub, 무제 Untitled, 1964,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41x31cm, 개인 소장. © Image Copyright Park Hang Sub Estate, Collector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은 격변과 변화에 맞서 고뇌와 저항에 몸부림치며 시대적 불운을 딛고, 한국의 미와 전통성을 잇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중에서도 박항섭은 새로운 구상회화 전개에 남다른 열정과 예술정신으로 끊임없는 노력과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박항섭의 독창성과 조형적 완성도는 높은 미학적 평가받아 우리나라 현대미술에 전승되어야 할 본보기로서 다시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대의 회화적 증언: 박항섭

① 1940-1949: 암흑기

② 1950-1959: 변모기

③ 1960-1969: 분석 및 종합기

④ 1970-1979: 신화의 시대

박항섭(朴恒燮, Park Hang Sub, 1923-1979)은 일찍이 그림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 18세 나이에 조선일보 주최 ‘중미전’에 입선하고, 선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미술에 대한 의욕이 남달랐다. 박항섭은 해주 고등보통학교(황해도)를 졸업하고, 도쿄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유화수업을 공부하던 중에 8.15 광복을 맞이했다. 이때에 작가의 작품은 갑작스러운 해방과 분단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극적 상황이 전개되면서 겪어야 했던 궁핍과 가난, 각박한 현실의 고통에 쫓기던 시대적 환경의 영향으로 건조한 마티에르가 두드러진다.

 

박항섭 Park Hang Sub, 금강산 팔선녀, 1974,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91×320cm© Image Copyright Park Hang Sub Estate (제공=케이옥션)
박항섭 Park Hang Sub, 금강산 팔선녀, 1974,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91×320cm© Image Copyright Park Hang Sub Estate 
한국인에게 금강산은 평생 한번 다녀오고 싶은 염원의 공간이자 아름다운 자연으로 대변되는 이상향이기에 단순한 장소를 넘어 많은 화가들에게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박항섭의 작품은 설화의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현실 공간으로 금강산을 바라보았다. 상상의 공간이 아닌 관람자의 눈에 보이는 현실 풍경이며, 여인들 역시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현실적 인물들이다. (제공=케이옥션)

박항섭은 회화에 현실을 재해석하여 재현할 때, 정신의 세계가 묻어나와 이상적인 비현실적 세계가 존재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을 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형태로서 구상되어있지만, 거기에는 작가가 생각하는 민족적, 자기조명적인 성격이 녹아져있다. 박항섭은 아카데믹한 경향을 취하되 생명, 설화, 원시, 문학성 등을 진하게 나타내며, 새로운 경향을 추구했다. 그래서 인지 작가의 작품에는 초현실적인 설화 속의 상징과 같은 원초적인 표현이 엿보인다.

박항섭의 작품은 수많은 기억들로 채워진다. 한국 역사의 그리움과 아픔들이 작가의 기억∙의식 속에서 다시 살아나 형태와 선으로 조화롭게 평면으로 형상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화폭 안에서 고유의 형태를 잃지 않으면서 활력과 생명성이 공존하는 구상회화를 구현했다. 박항섭은 한 평생을 자기내면의 의식을 객관적으로 사실화함으로서 예술속에서 자신만의 역사성을 구축하며, 작가로서 작업을 할 때만큼 늘 진실되고 진정한 자유를 잃지 않았다. 시대속에서 작가의 정신은 예술이 되어 미술작품으로 탄생되고, 그 가치는 사회적 의미로서 환원되어진다. 우리나라 역사 속의 한 증인이자 화가로서 한국적인 의식을 표출한 박항섭은 일차적인 조형미와 민족의 의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라는 점에서 한국 미술의 구상회화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박항섭 Park Hang Sub, 과일 Fruit, 1976,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33x45cm, 개인 소장© Image Copyright Park Hang Sub Estate, Collector
박항섭 Park Hang Sub, 과일 Fruit, 1976,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33x45cm, 개인 소장© Image Copyright Park Hang Sub Estate, Collector

전통은 과거로부터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재호출되면서 새롭게 해석되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 한국미술사를 재점검하면서 세계 미술과의 문화적 차이는 새로운 기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가까운 일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칼럼, 일본의 앤디 워홀이라 불리는 ‘무라카미 다카시’ 참고)

IT 강국이라는 수식어와 대중문화 K 팝(K-Pop)으로서의 위상 등 급성장한 한국의 모습에서 새로운 전통으로 만들어질 만한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현대미술이 우리 고유의 전통으로서 세계 미술과 접점이 마련될 때, 세계화라는 자리를 자연스럽게 확보한 셈일 것이다.

<참고 문헌>

1. 이승현, 「한국 근현대미술의 새 역사, 어떻게 쓸 것인가?」, 『미술사학보』, 제40집, 2013년 6월

2. 송윤영, 「박항섭의 구상회화에 관한 연구」, 경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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