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판벌려] 정치판 벌리려는 우리는 돈이 없다…그래도 계속 나아간다
[정치 판벌려] 정치판 벌리려는 우리는 돈이 없다…그래도 계속 나아간다
  • 안소정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사무국장
  • 승인 2021.02.26 08:00
  • 수정 2021-03-02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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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장보궐선거를 50일 앞둔 16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 앞에서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가로등 현수기를 게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특별시장보궐선거를 50일 앞둔 16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 앞에서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가로등 현수기를 게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화상회의를 마치고 나니 자정이 넘은 시각. 빠르게 짐을 챙겨 나왔다. 인적도 차도 거의 없는 텅 빈 거리. 코로나가 그려낸 한산한 자정 여 시각의 모습에 마스크를 벗고 자전거에 올랐다. 2차선, 4차선, 6차선 할 것 없이 텅 빈 도로 위를 가르며 생각했다. ‘아…, 동네에서 마스크를 벗고(뉴질랜드는 선제적 방역으로 마스크 없는 일상을 누리고 있으며, 쿠바는 지역화 된 일상이 정착된 곳이어서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전염 통제가 가능한 사례로 소개되었다), 도로를 자전거의 것으로 만드는 정치’를 우리가 할 수 있는데,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내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할 목소리를 우리도 가지고 있는데, 정치하기에 돈이 없다. 다가오는 선거일정을 앞두고 한창 돈 얘기를 하다 집에 돌아오는 참이었다.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비전을 경합하는 가장 큰 이벤트는 선거이다. 그러나 선거는 돈이 있어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정치 공간이다. 오는 재보선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며 대안적 정치 공간을 만들 기획을 상정하고 생각해보자. 소위 기탁금이라 불리는 서울시장 입후보 등록비만 5천만 원이다. 2019년 기준 서울시 가구 수 약 404만 호. 가구당 11원씩 1장짜리 공보물만 돌려도 4천 4백 여 만 원이다. 후보 등록하고 공보물 보내는 것만 1억이다. 선거 벽보를 붙이고 공보물을 만드려면 사진도 찍고, 디자인도 해야 한다. 거리마다 후보를 알릴 현수막도 붙여야 하고, 선거사무와 선거운동을 맡을 사람들도 필요하다. 사람들이 일할 선거사무소 임대료는 또 어쩌랴. 허리띠 졸라매고 선거 치러도 최소 비용 2억 이다. 돈 없이 후보와 정책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해보면 되지 않겠냐 얘기할 수도 있겠으나, 웬만한 아이디어는 현행 선거법 상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선거법은 ‘00 빼고 다 돼’ 식이 아니라 되는 거 안 되는 거를 하나하나 정하고 있는 매우 경직된 선거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재보선 서울시장 선거비용제한액은 34억 7천 5백만 원. 당선되거나 득표율 15%를 넘긴 후보는 선거운동에 사용한 비용을 상한액 34억 7천 5백만 원까지 세금으로 보전 받는다. 잘 알려진 만큼 표도 제일 많이 받는 여당과 제1야당이 가장 많은 세금 혜택을 받는다. 정치로 대안과 변화의 가능성을 어떻게든 넓혀보려 하는 이들은 한푼 두푼 긁어모아 선거를 치르고 선거비용을 보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대부분인 반면, 심판받아야 할 정치세력들은 최대치로 선거비용을 사용하고 세금으로 보전 받을 가능성이 대부분인 현실이다.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동영상도 제작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후보자 기탁금 제도는 왜 있는 걸까요? - 후보자의 무분별한 난립에 따른 폐해를 예방하고,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요.’

공공선을 위한 정치의 자리에 후보들이 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기준은 ‘돈’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성’이어야 한다. ‘사회적 책임성’을 기준으로 이번 재보선에 걸러내야 할 후보들을 살펴보자. 성폭력 가해로 벌어진 선거에 누가 그에 대한 통렬한 반성 또는 절박한 공감에 기반 하여 실질적 변화의 의지를 가지고 후보로 나설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와 기후위기를 누가 재난으로 인식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제도와 정치에 완전히 다른 렌즈가 필요하다. 그런데 렌즈를 바꾸기 위해서는 기존의 제도 하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자리에 올라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 돈이 필요하다.

조정환 씨는 그의 책 《증언혐오》에서 윤지오 씨의 증언투쟁 기록을 다루며 윤지오 씨는 “검경, 사법부 등 국가기관에 기댈 수 없는 불확실성을 고려해 ‘독자적 증언 투쟁 공간과 그 경로’를 확보해두려 했고, ‘그것은 직접적으로 조직된 다중의 경제적‧정치적 힘으로 진실 증언의 공통장을 구축하고 그것의 힘으로 제도 대의기관들을 통제하여 그 기관들이 조금이라도 더 진실에 접근하도록 압박하려는 실천사업이었다.”고 이야기 하며 ‘증언 투쟁, 반성폭력 성평등 투쟁’을 위해 윤지오씨가 채택한 방식을 설명한다.

비가시화 되었던 존재들이 정치권력과 경재권력의 동등한 주체로 나서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권력자들이 있다. 윤지오 씨를 공격한 변호사, 기자, 언론을 비롯하여 기존의 권력의 자리에 있거나 그에 기생하는 자들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공격을 받으며 계속 나아간다. 변화가 아니면 죽음이기에, 포기할 수 없기에 여전히 정치의 장에 오늘도 맨몸으로 나선다. 정치판을 벌일 돈이 없다. 그러나 정치판을 벌일 뜻을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판을 벌일 돈은 없지만 다중의 직접적인 정치적‧경제적 참여의 힘을 믿으며 계속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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