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계·학계·법조계 전문가들
관계 부처 협업 중요
‘출생등록제’부터 해결해야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아동인권단체 외 38 단체가 '아동의 죽음, 보건복지부장관과 경찰청장에게 묻는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021년 1월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아동인권단체 외 38 단체가 '아동의 죽음, 보건복지부장관과 경찰청장에게 묻는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법무부가 아동인권기구를 신설했다. 시민계·학계·법조계 전문가들은 아동인권기구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법무부 내부 ‘아동인권민감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에서 16개월 입양아 정인양을 학대로 숨지게 한 사건을 비롯해 계속해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일 용인시 처인구에서는 이모 부부로부터 물고문 학대 등을 받다 10세 아동이 숨졌다. 하루 뒤인 9일에는 전북 익산시에서는 생후 2주가량 된 신생아가 친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아 얼굴에 멍이 든 채 세상을 떠났다.

법무부 '아동인권기구' 신설…공무원 8명으로 특별추진단 구성

계속되는 아동학대는 당정을 움직였다. 법무부는 22일 ‘아동인권보호 특별추진단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발표했다. 아동인권기구는 아동학대 및 아동보호와 관련해 실태파악 및 제도개선·통계 수집·재발방지를 위한 관계부처 업무 협의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특별추진단의 단장과 단원은 법무부 소속 8명의 공무원이다. 아동학대 등 아동인권보호 전문가를 전문위원으로 위촉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도 이날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우리아이 지킨 5대 약속’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는 국회 내 초당적 범대책위원회 구성을 골자로 하는 아동학대 근절 5대 대책을 냈다.

여야 국회의원 139명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 꾸려야"

지난 5일 여야 국회의원 139명은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을 발의했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대통령 직속으로 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한시적으로 설치된다. 위원회는 2018년 1월1일부터 법 시행일 전날까지 발생한 아동학대사망사건 가운데 사안이 중대해 진상조사의 필요성이 큰 사건을 선정해 조사를 진행할 전망이다. 조사위는 출석요구, 진술 청취부터 현장 조사, 동행명령, 압수수색 영장 청구 등 다양한 권한을 부여 받아 진상조사를 벌인다. 특별법은 지난 19일 복지위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다. 향후 소위 심사를 거쳐 전체회의에 상정된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등 89개의 시민단체들은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이브더칠드런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등 89개의 시민단체들은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이브더칠드런

국가가 나서서 반복되는 아동학대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크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등 89개의 시민단체들은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동학대 근절대책을 세우는 출발은 단기간에 제출된 미봉책이 아닌 아동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세밀하고 샅샅이 살피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며 “이번에야말로 정부 주도의 진상조사를 벌여 현행법과 제도의 문제를 제대로 따져보고 대책을 마련해 관철시킴으로써 기존 아동보호체계를 개선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현행법은 아동학대사망사건에 대한 공적 조사체계를 두고 있지 않다. 과거 민간주도로 ‘이서현보고서(2014)’, ‘은비보고서(2017)’를 작성한 사례뿐이다.

2021년 2월15일 열린 '제16기 법무부 정책위원회' 3차 화상회의에서 박범계 장관의 인사말씀 장면. ⓒ법무부
2021년 2월15일 열린 '제16기 법무부 정책위원회' 3차 화상회의에서 박범계 장관의 인사말씀 장면. ⓒ법무부

전문가들 “부처 내부 ‘아동인권민감성’ 강화부터 높여야”

아동학대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법무부의 아동인권기구 신설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아무래도 법무부이기 때문에 법적 중심으로만 문제를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아동학대 문제는 법뿐만 아니라 아동보호 체계가 넓어 포괄적으로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도 “부처에서 추진한다고 (아동학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사항 아니다”라며 “아동학대는 보건복지부, 법무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범부처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며 “이런 시도는 반갑지만 한 부처가 아닌 여러 부처와 협업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정선욱 한국아동복지학회 회장은 법무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에 주력해서 활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아동학대와 관련해 법무부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은 관련 직원의 아동인권민감성을 키우는 것”이라며 “아동학대 사건 조사 시 아동의 의견을 안전하게 청취하고 반영하는 일, 빠른 사건 조사와 조사 결과 공유 등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6개월간 운영이라면 법무부 차원에서 해야 하는데 잘 하지 못했던 일에 주력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2020년 12월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2020년 12월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법무부, 아동학대 문제 기본 중 기본 ‘출생등록제’부터 해결하라”

김영주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도 “법무부가 현재 내부에서 진행되는 일들에 대해 아동인권감수성을 겸비해 진행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예를 들면 아동학대 문제의 기본 중 기본인 출생통보제 등이다. 이 문제라도 빨리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출생통보제는 분만을 담당한 의료진이 공공기관에 출생사실을 알리는 제도를 말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미등록 아동 학대를 막기 위해 해당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혀 왔다.

김 변호사는 또한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에서 주되게 조사할 부분은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지자체인데 법무부가 내부 힘으로 그러한 기관을 조사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며 “내부 인사들이 아동인권, 학대 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의구심이 든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법무부 내부부터 제대로 점검하고 문제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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