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여전히 남성 서사에 갇힌 여성 영웅, ‘승리호’ 장선장
[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여전히 남성 서사에 갇힌 여성 영웅, ‘승리호’ 장선장
  •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 승인 2021.02.16 19:14
  • 수정 2021-02-19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
SF 영화 ‘승리호’ 사진=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의 장 선장은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우주 쓰레기를 재빠르게 낚아채 이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승리호’의 가장이자 리더다. 사진=넷플릭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한창이다. 국내에서 쉽게 시도되지 못한 새로운 장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고, 시각적인 호쾌함이 중요한 SF 장르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스토리의 개연성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꿈보다 해몽’이라 할 수 있는 특정 영화에 쏟아지는 호평과 악평들은 해당 영화가 지닌 영향력의 반증이다. <승리호>의 리더인 장 선장(김태리)을 중심으로 영화 관련 이야기에 숟가락을 얹고자 한다.

<승리호>는 환경오염으로 병든 지구에 95%의 인류가 힘겹게 살아가고, 선택된 소수의 5%만이 우주 위성궤도에 마련된 UTS에 거주하는 2092년을 배경으로 하는 디스토피아 영화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우주 쓰레기 청소부인 장 선장, 태호(송중기), 타이거 박(진선규), 업동이(유해진)가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박예린)를 발견하고 거래에 나서지만 뜻하지 않은 일에 휘말리는 SF 판타지 액션 영화다.

SF 영화 ‘승리호’ 사진=넷플릭스
SF 영화 ‘승리호’ 사진=넷플릭스

<승리호>의 리더이자 가장, 장 선장

장 선장은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우주 쓰레기를 재빠르고 안전하게 낚아채어 이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승리호>의 가장이자, 우주선과 선원들의 생사의 기로에서 적확한 판단과 결정으로 위기를 넘겨야 하는 리더다. 그녀는 UTS 지니어스로 특별 입양돼 천재성을 드러내지만 17세에 UTS를 탈출해 해적단을 조직해 UTS의 설립자이자 실질적인 지배자인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을 죽이려다 실패해 줄곧 숨어 지낸 인물로 소개된다. 유일하게 설리반의 눈앞에서 그를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은 인물인 것이다. 장 선장은 설리반과 UTS로 상징되는 인류를 속박하는 ‘아버지의 법’에 직접 대항하고,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레이저 건을 들고 적기를 격추시키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주인공 집단을 이끄는 리더이자, 무기를 들고 직접 전투를 벌인다는 점에서 SF 액션 영화의 히로인들과 맥이 닿아있다. 

SF 영화 ‘승리호’ 사진=넷플릭스
장 선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거나, 여성 캐릭터끼리 대결을 벌인다거나, 여성성을 부각해 극의 위기를 전환하는데 소모되지도 않는다.  사진=넷플릭스

그녀는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는 전사다. 의상과 헤어스타일, 말투에서 특별히 섹슈얼리티가 부각되지 않는다. 그녀는 여느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처럼 쫙 달라붙는 옷을 입고 몸의 특정 부위를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성을 감추는 ‘남성의 옷입기’ 전략을 활용해 남성성과 여성성을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거나, 여성 캐릭터끼리 대결을 벌인다거나, 여성성을 부각해 극의 위기를 전환하는데 소모되지도 않는다. 그녀를 짝사랑하는 피에르에게는 연애를 하고픈 대상이지만, 장 선장의 여성성은 영화 전반에 걸쳐, 그리고 전투에서 활용되지 않는다. 

SF 영화 ‘승리호’ 사진=넷플릭스
리더이자 가장은 장 선장이지만 극을 주도하는 인물은 남성 주인공인 태호다. 사진=넷플릭스

태호에겐 있지만 장 선장에겐 없는 서사

장 선장이 리더이자 가장으로 등장하지만, 극을 주도하는 인물은 남성 주인공인 태호다. 그의 과거, 시련, 성장하는 과정이 영화 내에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것과 달리, 장 선장의 배경은 내레이션과 영상으로 잠시 등장할 뿐이다. 그녀가 왜 안락한 UTS의 삶을 버렸는지, 반란이 실패한 이후 훗날을 도모하는 대신 술과 돈에 집착하는 승리호의 선장으로 남게 됐는지와 같은 개인 서사는 제시되지 않는다. 더욱이 천재였던 그녀의 지적 능력은 꽃님이의 정체를 알아채는 순간과 그녀의 발명품인 레이저 건을 꺼내들었을 때 이외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여전히 상업 영화 속 여성 영웅은 주변화 된 캐릭터로 존재하며,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의 불균형적인 재현을 보여준다. 

SF 영화 ‘승리호’ 사진=넷플릭스
장 선장의 존재는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에서 여성 영웅의 존재라는 점에서 의미있다. 사진=넷플릭스

영화에서 부재했던 모성은 장 선장에 의해 되살려진다. 극에 등장하는 순이는 엄마가 죽은 것으로 나오지만, 꽃님이는 아예 언급되지도 않으면서 두 어린 소녀에게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의 성장은 오직 아버지인 태호와 강현우가 전적으로 맡으면서, 영화는 어머니를 지우고 애틋한 부녀 관계를 강조한다. 영화 속에서 실종된 어머니라는 존재는 영화 말미 꽃님이의 교육 문제에 대한 이야기 속에 부활을 맞는다. 교육에 무심한 장 선장의 태도에 태호가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하는지 봐봐”라고 말한다. 영화 내내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그리면서 여성성을 특별히 드러내지 않은 전사였던 장 선장에게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엄마의 역할을 자연스레 기대하는 것이다. 이처럼 화기애애한 결말에서 언급된 엄마라는 존재는 모성 이데올로기 혹은 모성 신화 강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장 선장의 존재는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에서 여성 영웅의 존재라는 점에서 의미있다. 하지만 여성 영웅은 주도권을 잡기 보다는 주도적인 남성 캐릭터 옆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영화는 지속적으로 여성 서사가 부족하고 영화 속 비중이 작거나 표현이 왜곡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 받아왔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욱 주체적인 여성 영웅이 활약하는 SF 액션 영화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