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당 대신 줌·유튜브에 모인 신입생들
대학생활 안내서 등 ‘굿즈’ 택배로 받아보기도
새내기들 “동기·선배 만날 기회 줄어 아쉽지만
비대면 시대에 적응 중...안전하고 재미있어”

16일 경북대에서 신입생 비대면 OT를 줌으로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경북대 총학생회

'비대면 OT(오리엔테이션) 세대'. 코로나 시대에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21학번 신입생들의 공통점이다. 올해는 모든 행사가 취소됐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OT조차 참석하지 못한 20학번 선배들이 후배들은 달라야 한다는 마음으로 발 벗고 나섰다. 1년 새 대학들도 비대면 적응력을 키웠다. 달라진 대학가 OT 풍경을 들여다봤다.

대학생활 안내서 등 ‘굿즈’ 택배로 받아보기도
모임 없이 각자 RPG 게임하며 정보 얻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에서 만든 새내기 OT용 RPG게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에서 만든 새내기 OT용 RPG게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가 마련한 굿즈 키트. 신입생들의 집으로 발송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가 마련한 굿즈 키트. 신입생들의 집으로 발송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가 준비한 OT는 RPG(롤플레잉) 게임이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총학생회가 구상한 아이디어다. 게임을 하면서 캠퍼스 정보, 학과 및 동아리 소개, 학교 '꿀팁'이나 행정기관 등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총학생회는 이 게임이 담긴 USB, 안내서, 스티커 등 굿즈를 넣은 택배를 새내기들에게 발송한다. 

신입생들이 별도로 만나는 시간은 마련하지 않았다. 정수인 한예종 총학생회장은 “보통 신입생 OT는 생중계로 진행되는데 우리는 쌍방향 온라인 플랫폼은 지양했다”며 “불법 촬영이나 외모 평가 같은 인권 문제와 관련해 우려 사항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모든 게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보니 거리의 제약 없이 만날 수 있다”고 비대면 시대의 장점을 강조했다. 

강당 대신 줌·유튜브에 모여
캠퍼스 랜선 투어...다양한 게임 하며 친해져

16일 경북대 총학생회가 신입생 비대면 OT를 진행하며 퀴즈를 내고 있다. ⓒ경북대 총학생회

“탕수육, ‘부먹’(고기에 소스를 부어서 먹는 것)? ‘찍먹’(소스에 고기를 찍어 먹는 것)?”
“부먹이요!”, “저는 찍먹입니다.”

16일 경북대 OT 현장.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에 모인 새내기들은 이름, 나이를 나열하기보다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지 찍어 먹는지 등 일명 ‘TMI(Too Much Information) 자기소개’를 하며 어색함을 해소했다. 전주를 짧게 듣고 노래 제목을 맞히는 게임, 식사하는 소리를 듣고 어떤 음식을 먹는지 맞히는 게임도 진행됐다.

선배들이 학교를 소개한 후 관련 퀴즈를 내면 신입생들이 문제를 풀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생활 정보를 알아가는 식이었다. 정답을 맞히는 신입생에게 모바일 기프티콘을 선물했다. 1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쓰고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문우현 경북대 총학생회장은 “신입생을 대상으로 200명 사전 신청을 받았는데 이틀 만에 참가 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국동현 부총학생회장은 “비대면 OT지만 게임의 형태를 빌려 재밌고 흥미롭게 진행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16일 경북대 총학생회가 신입생에게 학교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경북대 총학생회

서울대 공과대 학생회도 21일 비대면 OT를 앞두고 다양한 게임을 준비 중이다. 신입생들이 다 같이 화면으로 모여 ‘인간 하트’를 만드는 게임이다. 학과별로 누가 더 빨리 하트 모양을 만드는지를 가려 승자를 가린다. 김지은 서울대 공과대학 학생회장은 “지난 1년간 비대면 생활에 적응하다 보니 이번 OT를 무사히 준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면무도회부터 칵테일 모임까지...다채로운 OT 프로그램도

연세대 중앙새내기맞이단 단원들이 1월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을 활용해 신입생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세대 중앙새내기맞이단
연세대 중앙새내기맞이단 단원들이 1월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을 활용해 신입생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세대 중앙새내기맞이단

연세대 새내기들은 중앙새내기맞이단이 마련한 다양한 랜선 모임에 참여하면서 친해졌다. 가면을 쓴 채로 줌에 접속해 서로의 실명을 유추해가는 ‘가면무도회’, 각자 집에서 칵테일을 만들어 함께 마시는 ‘칵테일 모임’, 밤새 마피아 게임을 하는 ‘게임 모임’, 학교와 기숙사를 소개하는 ‘랜선 투어’ 등이다. 

연세대 중앙새내기맞이단은 1월 초부터 이러한 줌 OT 콘텐츠 14가지를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신입생 커뮤니티에 콘텐츠를 홍보해 신청자를 모집해 진행했는데 인기가 좋았다. 참여자들은 ‘비대면이라서 사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재밌었다’, ‘기획해줘서 고맙다’, ‘비대면으로라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등 후기를 남겼다.

차유진 연세대 중앙새내기맞이단장은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모든 행사가 취소돼 20학번 학생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그렇게 겪고 나니까 이러한 신입생 문화를 후배들에게 물려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각양각색 비대면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추후 줌으로 모여서 공부하는 ‘토익 모임’, ‘운전면허 모임’ 등도 열 계획이다.

입학 전 대학 강의를 미리 들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학교도 있다. 이화여대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이꿈비(이화와 함께 꿈을 향해 비상하라)’ 프로그램을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인문·자연계 교수가 줌을 이용해 강의했다.

'이꿈비' 프로그램에서 한 교수가 '미리 듣는 대학 강의'를 통해 비대면으로 신입생을 만나는 모습. ⓒ이화여자대학교
'이꿈비' 프로그램에서 한 교수가 '미리 듣는 대학 강의'를 통해 비대면으로 신입생을 만나는 모습. ⓒ이화여자대학교

전북대도 OT 대신 학교 소개 영상을 만들어 전달했다. 홈페이지에 신입생 OT를 위한 별도의 웹사이트를 만들어 대학생활 가이드북, 도서관 이용 방법, 취업 관련 지원 서비스 등 신입생이 궁금해할 만한 실용적인 정보만 올렸다. 학생들은 페이스북 페이지 등 공식 SNS채널 등으로 소통한다. 문채연 전북대 총학생회 대외협력국장은 후배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쉽다면서도 “토익 시험 관련 기업 홍보 등 대면 OT 행사에 포함된 불필요한 절차가 사라진 건 좋다고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려대도 10일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으로 비대면 OT를 진행했다. 사전 편집 영상을 활용해 각 단과대학 대표자와 동아리연합회, 학내 언론사 및 특별기구 등을 소개했다.

고려대에서 진행한 신입생 OT. 사회자가 진행하는 생방송과 사전 촬영 영상 자료로 이루어졌다.  ⓒ고려대학교교육방송국 KUBS
고려대에서 진행한 신입생 OT. 사회자가 진행하는 생방송과 사전 촬영 영상 자료로 이루어졌다. ⓒ고려대학교교육방송국 KUBS 

신입생들 “동기·선배들 직접 만날 수 없어 아쉽지만
비대면 시대의 소통에 적응하고 있어”

새내기와 재학생 모두 학우와 교수들을 직접 만나거나 식사하고, 조언을 들을 기회가 없다는 데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비대면 소통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소통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23일 비대면 OT를 앞둔 윤예신(21)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신입생은 “동기 및 선배들과 직접 만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또 온라인으로 하는 것이다 보니 연결 상태에 따라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기도 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비대면 OT에 참석하는 이명주(20) KC대학교 빅데이터경영학과 신입생은 “평소 궁금했던 대학 학생회나 동아리에 대해 선배님께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여서 기대된다”면서도 “동기를 비롯해 선배님들과 교수님들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비대면 OT에 참여했다는 서울 소재 대학 신입생 윤모(20)씨는 “직접 만나는 것과 같은 친근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면서도 “코로나 시국에 안전하게 OT를 진행하고, 학교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특히 줌에서 한 명씩 자기소개하고, 자신에 대한 퀴즈를 내고 서로 맞히는 게임을 진행해 흥미로웠다”고 소감을 말했다. 충남 천안시 소재 대학에 진학하는 송모(20)씨는 지난 8일 비대면 OT에 참가했다. 그는 “실제로 교수님과 학우들을 만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면서도 “진학 전에 학과 정보와 수업 내용을 간단히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코로나 학번' 세대들은 이렇듯 비대면·디지털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중이다. 감염병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확 달라진 대학생활과 관계맺기 경험은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대학 문화의 변화, 나아가 일터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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