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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주부는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말하는가? 직장처럼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니 노는 사람이고 가치없는 존재로 취급되는 이 논리는 세상에서 가장 비합리적이고 언어도단이다.

‘전업주부 경력 23년차’에 의하면 주부는 그 어떤 일보다도 종합적이고 전문성을 띄는 일이다!

나는 내가 만드는 가족을 통해 이론을 실현해 보고자 전업주부를 선택했다. 그래서 일터를 집 안으로 옮겼을 뿐, 나는 직업인이라는 마인드셋을 하고 철저한 직업의식을 갖고 출발했다. 여자니까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새로운 일자리에 적응하고 배우는 직업인으로 임했다. 내 생활방식도 아침 늦잠은 버리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긴장감과 함께 재구조화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밥을 짓고, 다양한 도시락과 저녁식단 개발을 위해 레시피를 펴놓고 연구했다. 자녀수, 출산시기, 양육과 교육관 등 가족계획을 수립하면서 어떤 부모가 될 지 롤 모델을 찾으며 전업주부의 종합적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남편과 긴밀한 의논을 하며 만전을 기했다.

삶의 변화에 적응하며 한달이 훌쩍 지나고 내게 큰 충격이 왔다. 이전까지 매달 통장에 입금되던 월급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매우 생소했다. 물론 월급을 받기로 한 전업주부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미국사회의 낯선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이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데 훨씬 많은 시간과 감정다독임 과정이 필요했다. 남편은 ‘내가 버는 것이 우리의 것'이라고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주었으나 전업주부의 노동력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비합리적이고 냉정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1년 후 아들을 낳고, 3년 터울의 딸도 낳았다. 출산과 동시에 말 그대로 24시간 내내 가동되는 풀타임 엄마와 주부로 근 20년 넘게 살았다. 결혼 전에 아침잠을 떨치지 못했던 나는 완전 탈바꿈하여 밤새도록 자다깨다 하며 24시간이 모자라 늘 피곤을 달고 살았다. 질 좋은 홈스쿨링을 위해 신문, 잡지, 맘사이트 등을 검색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자료를 수집했다. 또한 집안구조도 아이들 연령에 따라 유아원과 도서관으로 꾸몄다. 중고생 때는 성적관리는 물론 특별활동 매니져가 되어 전심전력의 교육코치로 변신했다. 그 결과 두 아이들은 착한 마음씨에 예의바르고, 배려심 있고, 남의 고통을 아파할 줄 아는 모습으로 성장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날 때를 대비해 나의 제 3의 인생계획을 시작했다. 아이들의 엄마호칭에서 내 이름 석자로 나를 소개하며 정체성 찾기와 아이들이 학교에 머무는 긴 시간을 활용해 금형회사(Metal Product Company)의 컴퓨터 사무직을 약 2년간 풀타임으로 일했다. 또 둘째가 고교졸업반 때는 10년마다 실시되는 미국 인구조사 센서스국 사무직으로 1년간 풀타임으로 일했다.

그러나 내가 정식으로 풀타임 사무직에 들어가는 관문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석사학위 소지자로서 그 분야에서 10년 넘게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20년 전에 중단된 ‘경력단절자'로 인식돼 초보단계부터 시작해야 했다. 내가 전업주부로서 쌓은 이력은 직업세계에서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동안 부부싸움도 시간이 없어서 미뤄왔을 정도로 전업주부로 눈코뜰새없이 살았던 내 삶은 정말 자타가 공인하는 최선의 결과이지만, 사적인 이익으로만 평가될 뿐 사회구성원을 배출해냈다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노고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있고, 사회체계로 연결되어 내 삶을 연속시킬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은 현실에 또 한번 부딪쳤다.  그러니 요즘의 MZ세대들은 기피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고, 비혼과 저출산이라는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사회적 생산을 위해 가정에서 정서적 물리적 재충전과 돌봄의 재생산 기능이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높이 재평가되고 있지만 주부에 대한 평가절하와 편견을 쇄신하지 않고는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주부는 가정의 중심축으로서 가족 구성원을 돌보며 가정의 행복을 창출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평균 20-25년을 전업주부로 살며 쌓은 경력과 삶의 지혜가 사회적 노동력으로 축적되는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황은자(베로니카)
황은자(베로니카) H&C 교육컨설팅 대표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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