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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재조정의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조직이 재생과 회복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 쇄신은 관념적 논쟁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pixabay

어떤 조직이든 위기를 겪는다. 특히 조직이 추구해왔던 핵심 가치를 배반하는 사건이 조직 내부에서 터졌을 때 구성원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만약 내가 존경하는 학과장이 알고보니 흑인 학생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데 적극적으로 가담해왔다면 어떨까?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던 우리 조직의 핵심 인물이 성폭력 가해자라면, 그리고 믿었던 동지들도 이를 묵인했다면? 평생을 사회 환원에 매진했던 이가 우리 단체의 기금을 지난 수 년간 횡령해왔다면 믿을 수 있을까? 다른 누구의 조직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이야기다.

위기에 처한 조직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구성원들의 극명한 분열과 적개심 앞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배신, 절망, 상처를 넘어 공동체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재조정의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모든 조직이 이같은 재생과 회복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 쇄신은 관념적 논쟁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참여 못지 않게 리더들의 결단과 추진력이 중요하다. 조직 개혁은 구조적이고, 전략적이며, 동시에 지속가능할 때만 의미가 있다. 이는 리더를 포함한 핵심 주체들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 학계에서 내가 속한 조직도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뼈아픈 비판과 고통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갈등이 표면화된 이후의 싸움은 만만치 않았다. “시끄러운 소수가 조직을 망치고 있다”, “계속 이렇게 나오면 조직을 떠나겠다”는 발언들이 나오면서 서로에 대한 반감이 악화되기도 했다.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구성원들을 향한 사적인 공격도 이어졌다. 침묵하거나 방조하는 이들 역시 상처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구성원들이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가면서 이 공동체를 더 정의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물론 쉽지 않았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흐름이 또렷하게 보인다는 점이 작은 희망을 준다. 위기 상황에서 급히 만들어진 임시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공동체로부터 배운 것들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조직의 특수한 형편을 반영하는 내용은 제외하고 일반적인 항목들로 한정했다.)

첫째, 예산을 재배치하라. 선언도 중요하지만 자원이 움직여야 한다. 손상된 가치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 손상으로 인해 가장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은 구성원들은 누구인가? 이는 균일한 정체성으로 구성된 집단이 아닐 수도 있다. 여성인가, 청년인가, 혹은 이른바 “말단 직원”인가? 구조적으로 차별받아 온 구성원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비슷한 종류의 폭력 및 피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인적, 물질적 자원을 투자하라. 기존의 항목에 예산을 추가할 수도 있고, 새로운 예산 항목을 만들 수도 있다. 우리 조직의 경우 재정이 부족해 별도의 기금을 조성해 기부금을 받을 예정이다. 단, 이는 분명히 조직 쇄신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둘째, 상징 자본의 배치 역시 달라져야 한다. 이를 “인정의 재분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손상된 가치의 회복에 기여한 구성원, 혹은 그 가치를 오랜 시간 추구해 온 구성원은 상징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조직 내에서 인정받고 보상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실질적으로 소수자를 위해 애쓴 사람이 반드시 보답을 받고 힘을 얻게 된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학습되어야 한다. (가해자들의 카르텔이 안정적으로 지원받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이같은 일상적이고 문화적인 인정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리더십을 구성하는 직책을 다양화함으로써 주변부에 있던 이들을 중앙으로 끌어당겨야 한다. 자리는 곧 상징이다. 공동체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이들의 목소리를 중심에 놓기 위해 어떤 자리들이 새롭게 마련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리더로 진입했을 때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상징 자본의 재배치는 앞서 말한 예산 재배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셋째, 규약과 인사정책을 비롯해 조직의 비전과 행동 방침을 담은 문서들을 재점검하고, 수정을 거쳐 공표한다. 담론 싸움도 중요하지만 명문화의 힘도 크다. 미처 놓친 부분은 없는지, 새롭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없는지, 미묘하게 배제적인 표현은 없는지 리더들이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검토하는 과정에 다양한 계층의 구성원들을 참여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만약 우리 조직처럼 각 조항의 수정이 구성원들의 투표로 확정되는 경우 적극적이고 투명한 소통을 통해 투표 전까지 합의 수준을 확보한다. 또한 세부 그룹들이 논의를 거쳐 입장문을 발표하는 것도 가능하다. 함께 토론하는 과정 그 자체로 각자의 언어와 관점을 조율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구성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라. 조직의 여건에 따라 가장 힘든 방안일 수도 있겠다. 서로의 차이만 확인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고, 예상보다 갈등의 골이 더 깊다는 점에 고통스러워 할 수도 있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직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이 새로 태어나야 한다면 결국은 이런 시간을 지나야 한다. 집단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위기를 각자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왜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 중요한지, 앞으로 무엇을 함께 하고 싶은지, 얘기하고 듣는 시간을 조금씩 (때로는 소규모로) 마련하는 것도 괜찮다.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해결책보다는 오히려 이런 기회들이 공동체의 진정한 회복과 재생에 기여할 수 있다. 줌을 활용한 모임은 역설적으로 보다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대화를 가능하게 하기도 했고, “비공식적” 자리를 조직이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점을 구성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대화에 앞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헌신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명확한 가해자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위기 상황이 단지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조직의 책임, 사회의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한다. 경우에 따라 개인에 대한 징계가 필요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공동체가 해야할 일은 구조와 문화를 쇄신하는 것이다. “조직 구조”와 “조직 문화”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앞서 논한 것들을 외면한 채로 그저 “문화만”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체적인 문제 해결 과정이야말로 효과적인 학습의 장이며, 새로운 관계 맺기와 문화적 실천의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것을 돕는다. 이같은 깨달음과 반복의 과정을 거쳐 문화도 바뀌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새롭게 형성된 문화는 보다 수평적인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평등한 구조는 다시 문화적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한다. 진통이 있더라도 길게 보고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조직이 위기를 해소하는 과정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짧은 글로는 담을 수 없는 고통의 과정이다. 2019년부터 시작한 일이 여전히 미완이다. 역량 있는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쉽지 않았다. 아마도 가치 자체가 흔들렸을 때 일어나는 조직 쇄신은 다층적인 결별의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대와의 결별, 기득권과의 결별, 과거와의 결별. 한편에서는 혁신의 “진정성”을 확인하려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가 하는 작업이 “도를 넘었다”고 했다. 어쩌면 이 모두가 일말의 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기 해소의 목적은 가치의 회복이지 조직 보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공동체를 살리는 것과 낡은 권력을 지키는 것은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의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비난과 공격이 따르겠지만 새로운 시대를 한걸음 앞당기는 과업에 많은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동참하길 바란다.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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