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2월 19일 일본 도쿄 신주쿠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열린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와의 토크쇼에 참석한 일본 독자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019년 2월 19일 일본 도쿄 신주쿠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열린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와의 토크쇼에 참석한 일본 독자들. ⓒ뉴시스·여성신문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2016년, 민음사)이 일본에서도 화제다. 2020년 가을 집계에 따르면 2018년 출간 이후 누적 판매 부수가 20만 부를 넘었다고 한다. 문예 부문에서는 베스트셀러 축에 드는 숫자다. 특히 한국 작품의 번역서가 세운 기록이라는 점이 이례적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82년생 김지영』이 인기를 끄는 것은 의외다. 60년대 학생운동의 맥락에서 '우먼 리브 운동(women’s liberation movement)'이 일어난 것이 1970년대 초. 80년대에는 호황과 함께 시장으로서의 '여성'이 대두되었고 더불어 페미니즘의 대중화도 진행되어 이른바 '여성 시대'를 맞이했다. 우에노 지즈코 등 페미니즘 작가가 널리 읽히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한편 한국에서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책이 주목받게 된 것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2018년 미투 운동 이후의 일이다. 일본 독자들은 왜 새삼스럽게 『82년생 김지영』을 읽는 것일까?

『82년생 김지영』 일본판 표지.
『82년생 김지영』 일본판 표지.

얼굴을 도려낸 일본판 표지 그림

책의 역자 사이토 마리코(斎藤真理子)는 그 이유를 작품성에서 찾는다. 물론 주제 자체가 국경을 뛰어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부각하는 문학적 기법이 특별하다는 것이다. 일본판 출판사 지쿠마쇼보(筑摩書房)의 웹사이트에 실린 글이다.

우선 소설에 등장인물의 외모 묘사가 거의 없다. 독자는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김지영이라는 인물의 얼굴이나 복장이 어떠한지 구체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다. 성형, 가난한 대학 시절, 취업 면접과 같은 장면에서만 예외적으로 외모 묘사가 나온다. 여기에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다. 개인의 개성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이 반영되는 상황에만 외모 묘사를 넣음으로써 젠더 차별의 원인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개인을 희석하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김지영에게 투영할 수 있게 된다. 얼굴을 도려낸 일본판 표지 그림은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소설 초반에 나오는 빙의 현상에 대해서도 같은 해석을 내릴 수 있다. 빙의 같은 인상적인 소재는 일반적인 소설에서라면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던가 아니면 복선으로 사용해 후반에서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기존의 문법을 무시한다. 빙의 장면은 초반에 몇 번 등장하고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소설가라면 절대 놓치지 않을 장치를 작가는 그냥 그렇게 버려버린다. 역자는 여기에도 제한적 외모 묘사와 같은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한다. 빙의가 너무 자주 등장하면 독자가 김지영에게 투영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30년 공백’ 메우는 ‘K페미’

한편 날카로운 분석과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유명한 페미니즘 문예 비평가 사이토 미나코(斎藤美奈子)의 평은 신랄하다(그녀는 역자의 언니다). 출처는 지쿠마쇼보의 홍보지 '지쿠마'다.

그녀는 이 책이 문학적으로는 그다지 재미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이 책은 형식적으로는 소설을 표방하지만, 그보다는 젠더 불평등 입문자를 위한 교과서에 가깝다. 그래서 젠더 입문서로 읽는다면 나름의 의의를 찾을 수 있지만 이미 그런 유의 책은 그녀의 저서를 포함해 30년도 전부터 출판되고 있는 일본이다. 그래서 그녀는 의아해한다. 왜 일본의 젊은 여성들은 이 책을 읽는 걸까?

사이토는 '30년의 공백'이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페미니즘 운동과 연구에서 한국보다 일찍 출발했지만 이후 발전이 더뎌지면서 한 세대 분의 공백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나카 미쓰, 우에노 지즈코, 오구라 지카코와 같은 빛나는 유산은 모두 어머니 세대에 속한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읽을만한 적당한 입문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 공백을 메꾸는 것이 이른바 K-페미 책이라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국내 작가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80년대 말에 '52년생 김영숙' 같은 외국 책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30년의 공백'이 생겨난 원인에는 2000년대의 백래시(backlash, 반동)가 있다. 앞으로 10년. 한국에도 찾아올지 모를 반동의 물결에 미리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필자 나일등 :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br>『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필자 나일등 :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