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백과사전 ‘페미위키’
여성혐오적 한국어표현 기록

ⓒ이은정 디자이너 ⓒ픽사베이
ⓒ이은정 디자이너 ⓒ픽사베이

아들 많은 집의 외딸을 흔히 ‘고명딸’이라고 일컫는다. 반면 딸 많은 집 외아들은 ‘고명아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고명딸’은 등재돼있지만 ‘고명아들’을 일컫는 용어는 없다.

음식에서 ‘고명’은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맛을 더하기 위해 얹거나 뿌린다. ‘고명딸’(고명+딸)도 주재료 위에 장식하는 고명처럼 아들만 있는 집에 돋보이는 혹은 분위기를 돋워주는 딸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 용어는 20세기 소설이나 사전에서 확인되고 있다. 전남과 평안 지방에서는 고명딸 대신 ‘양념딸’이라고도 한다.

'고명딸'은 있어도 '고명아들'은 없는 현실

국립국어원 화면 중 일부.
국립국어원 화면 중 일부.

고명아들이라는 용어가 없는 이유에는 과거 농경사회에서부터 시작된 남아선호사상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자녀를 가질 때 아들을 낳는 것을 선호했던 문화적 관습 때문에 아들은 여럿이 있다면 딸은 하나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고명딸이라는 표현이 여성혐오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상 정보가 여성혐오·남성중심적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위키 사이트인 ‘페미위키’(Femiwiki)는 “언뜻 좋은 의미 같지만 고명이나 양념처럼 조금씩만 첨가돼야 썩 보기 좋다는 속뜻을 가지고 있다”며 “양념 역시 고명과 비슷한 뜻을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주의적 관점을 지닌 사용자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페미위키에서는 고명딸과 같은 ‘여성혐오적인 한국어표현’을 기록하고 있다. 페미위키 운영진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페미위키 사용자들은 우리 문화 전반에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여성혐오적인 현상·행위·언어 등을 발견하고 분석·기록하는데 큰 관심을 두고 있다”며 “여성혐오적인 한국어 표현 역시 그 문제의식 하에서 편집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고명딸 카드뉴스의 경우 여성혐오적인 사회에 공기처럼 녹아 있는 여성혐오적인 언어습관을 지적하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선정한 소재였다”고 덧붙였다.
 

"한국어는 인식만 바꾸어도 언어습관 성평등해질 수 있어"

‘여성혐오적인 한국어표현’을 기록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언어가 사회구성원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페미위키 운영진은 “(비교적) 한국어는 상당히 성평등하고 소수자 포괄적인 언어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성차별적인 표현은 우리의 언어습관 속에 아직 많이 남아 있다”며 “다른 언어들과 달리 한국어의 경우 인식만 바꾸어도 우리의 언어습관이 상당히 성평등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언어습관이 개선되면 무의식적으로 녹아들어 있던 여성혐오적인 사고방식 역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같은 언어표현을 다루어보았다”고 설명했다.

여성혐오적 표현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쓰이고 있는 원인에 대해서는 단답으로 정답을 내놓을 수는 없다고 했다. 페미위키 운영진은 “여성혐오적 표현은 남성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대부분 점유하다시피하고 여성을 사적 세계에 머무르도록 강제하는 가부장제와 성차별의 파생물이라고 생각한다”며 “여전히 남성이 세계의 기본값이고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 역할, 타자로 존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더 큰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여성조차, 이러한 기득권의 이념을 그대로 내면화하고 있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페미위키운영진
여성혐오 관련 서적. ⓒ페미위키운영진

또 다른 여성혐오적 용어…미망인·사모님·리벤지 포르노

페미위키 운영진은 고명딸과 비슷한 여성혐오적 용어로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의 ‘미망인’ △여성인 윗사람을 남성의 아내로만 대상화하는 ‘사모님’ △은연중에 범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리벤지 포르노’ 등을 꼽았다. 이들은 “이같은 여성혐오적 표현 사례를 모은 것은 페미위키 사용자들”이라며 “사례 모집은 해당 문서의 편집에 참여했던 운영진에게 물어본 결과, 평소 언어습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성별 특정 표현을 접하면 그 어원을 살펴보고 기록된다고 한다”고 밝혔다.

페미위키의 앞으로의 계획은 위키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깨며 여성주의적 정보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알리는 것이다. 운영진은 “처음에는 위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고 딱딱한 백과사전 이미지라 접근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페미위키는) 여성주의적인 관점을 더해 다양한 페미니스트와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정보 집합체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팬데믹 시대에 접어들면서 단절되고 파편화된 페미니스트들의 연결망 역할을 페미위키가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며 “지난해 여성주의와 코스메틱을 주제로 한 온라인 공부방을 진행했는데 올해도 공부방이나 독서모임, 수다회 등 코로나시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페미위키 사이트 화면 중 일부.
페미위키 사이트 화면 중 일부.

 

페미위키(Femiwiki)란?
누구나 쓰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페미위키는 2016년에 만들어졌다. 페미위키 운영진은 현재 총 12명으로 활동가로서 페미위키를 홍보하고 사이트를 관리, 유지, 보수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용자의 성별을 수집하지 않는 젠더 블라인드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페미위키 운영진은 현재 총 12명으로 활동가로서 페미위키를 홍보하고 사이트를 관리, 유지, 보수하며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운영진의 과반수 이상이 여성이며 젠더퀴어 등 퀴어 정체성을 가진 활동가도 함께 모두를 위한 페미위키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사용자의 성별을 수집하지 않는 젠더 블라인드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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