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 부인 강난희씨 자필 편지 확산
“성희롱 해당” 인권위 판단 부정 취지로 읽혀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이 영결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지난해 7월 13일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이 영결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배우자 강난희씨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자필 편지가 온라인에서 확산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편지는 “박원순 전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6일 일부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강난희 여사 입장”이라며 자필 편지 사진을 공개했다. 해당 편지는 A4용지 3장 분량으로 2장은 6일 작성됐고, 나머지 1장은 지난달 2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는 탄원서다.

편지는 “박원순의 동지 여러분, 강난희입니다”라고 시작한다. 글쓴이는 박 전 시장 추모단체인 ‘박원순을 기억하는 사람들’(박기사)이 지난 1일 입장문을 언급하며 “저희 가족은 큰 슬픔 가운데 있다”고 썼다. 앞서 박기사는 “박 전 시장의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인권위 판단이 나온지 1주일 만인 지난 1일 입장문을 통해 “박원순의 공과 과를 구분하고 완전한 인간은 없다”며 “인권위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피해자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고 밝혔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배우자 강난희씨 입장문. 사진=SNS 캡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배우자 강난희씨 입장문. 사진=SNS 캡쳐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주장  

강씨는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다”며 “나의 남편 박원순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4년간 지켜본 내가 아는 박원순 정신의 본질은 도덕성”이라며 “도덕성의 토대 위에 박원순은 세상을 거침없이 변화시켜 왔다”고 썼다.

인권위에 제출했다는 탄원서에는 “박 전 시장의 인권을 존중해달라”며 인권위원들에게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박기사 측은 7일 언론을 통해 “해당 편지는 강 여사가 작성한 게 맞다”고 확인해줬다. 단체는 온라인 공개 경위에 대해서는 “박 전 시장 가족 측이 박기사에 직접 전달해왔고 일부 관계자들이 온라인에 공유하며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편지는 일부 박 전 시장 측근과 지지자들이 공유하며 온라인에서 퍼지면서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내용이 담긴 대자보와 메모들이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도서관 입구에 부착돼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지난해 7월 16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내용이 담긴 대자보와 메모들이 1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도서관 입구에 부착돼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그럴 분 아냐” 전형적인 2차 가해

2차 가해는 성폭력 등 범죄행위로 1차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피해사실을 근거로 피해자를 모욕하거나 배척하는 등 2차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일컫는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1월 25일 공개한 ‘여성폭력 2차 피해 방지 지침 표준안’에서는 2차 피해를 ‘여성폭력 피해자가 사건 처리와 회복과정에서 입는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로 규정했다.

여성가족부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피해자들은 △공감이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의심받거나 참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당한 처우를 암시하거나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발언 등으로 성희롱을 축소, 은폐하려 했다”, “조사과정에서 행위자 편을 들거나 불공정하게 진행했다”는 등 사건 처리과정에서 2차 피해를 경험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가해자의 행실이나 업적을 근거로 “믿고 싶지 않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2차 가해다. 누구나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 또한 될 수 있다. ‘그럴 사람’은 정해져 있지 않다.

‘박원순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주위의 말 때문에 바로 고발에 나서지 못했다고 밝혔다(2020년 7월 13일 피해자 지원단체 기자회견). 피해자는 고발 이후에는 전·현직 공무원과 지지자들의 전방위적인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피해자 신상을 공개 게시하고 루머를 공유했다.

법원이 1월14일 “피해자가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판결한 데 이어 인권위가 1월25일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30일 “박 전 시장이 사망하기 직전 ‘피해자와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있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 법원에 이어 인권위까지 박 전 시장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리면서 2차 가해는 줄어드는 듯 했으나 이번에 강씨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피해자는 또 다시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 SNS와 기사 댓글에는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인권위 판단을 부정하거나 피해자의 진술을 왜곡하는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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