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수목드라마 ‘런온’의 착한 사람들

자아상실 조차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게 지금까지의 러브스토리라면 ‘런 온’의 여성들은 사랑하면서도 굳세게 자신을 사랑한다. 일을 통해 자신을 지켜나간다. (왼쪽부터) 배우 최수영, 신세경, 차화연. ⓒJTBC ‘런 온’
 러브스토리이지만 ‘런 온’의 여성들은 사랑하면서도 굳세게 자신을 사랑하고 일을 통해 자신을 지켜나간다. (왼쪽부터) 배우 최수영, 신세경, 차화연. ⓒJTBC ‘런 온’

드라마 ‘런 온’(극본 박시현, 연출 이재훈)이 관심을 끈다. 신세경, 임시완, 최수영, 강태오 등 사랑스러운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해서 뻔하지 않은 러브라인을 그려나가니 신선하고 재미있다. 마음속에 있는 자의식을 응원하는 찰진 대사들이 몰입도를 높인다.

‘런 온’에서 선악의 기준은 ‘나다움의 실현’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다움을 추구하는 착한 세계와 나다움을 억압하는 권위주의 꼰대의 나쁜 세계가 충돌한다.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살아가려는 이들의 로맨스와 성장이야기다. 제목 ‘런 온’은 계속 달린다는 뜻인데, 착한 세계 젊은이들은 상호존중하는 관계의 완성을 향해 계속 달려 나간다. 자아상실 조차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게 지금까지의 러브스토리라면 런 온의 여성들은 사랑하면서도 굳세게 자신을 사랑한다. 일을 통해 자신을 지켜나간다.

최고의 대스타인 배우 육지우는 배우 일을 그만두고 내조하라는 남편의 강요에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왜 당신만 나를 소모품 취급해? 그럼 이혼하든가!”라고 일갈한다.  ⓒJTBC ‘런 온’
최고의 국민배우 육지우는 배우 일을 그만두고 내조하라는 남편의 강요에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왜 당신만 나를 소모품 취급해? 그럼 이혼하든가!”라며 맞선다. ⓒJTBC ‘런 온’

“영부인 보다 내 일이 좋다”

대스타인 배우 육지우(차화연 분)는 대선주자급 막강 실세 정치인인 기정도 국회의원(박영규 분)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지만 자기 일을 너무나 사랑한다. 배우 일 그만두고 정치인의 내조에 충실하라는 남편의 강요에 육지우는 인상을 팍 쓰고 일갈한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태어나면서부터 주인공 아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왜 당신만 나를 소모품 취급해?… 그럼 이혼하든가!” 라며 맞선다. 배우라는 자기 직업을 너무 사랑하는 육지우는 자기 일을 사랑하는 프로페셔널 커리어우먼으로 주인공 오미주를 비롯한 젊은 여성들에게 롤모델로 설정돼 있다.  

오미주는 “평생 같이 살아가야 할 ‘나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늘 노력한다. 연애도 좋지만 ‘나 자신이 없어지도록 죽도록 하는 사랑’ 같은 건 하지 않는다. ⓒJTBC ‘런 온’
오미주는 “평생 같이 살아가야 할 ‘나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늘 노력한다. 연애도 좋지만 ‘나 자신이 없어지도록 죽도록 하는 사랑’ 같은 건 하지 않는다. ⓒJTBC ‘런 온’

“사랑해도 나를 지켜야겠다”

주인공 오미주(신세경 분)는 영화번역가 직업을 가진 커리어우먼이다.  가난하게 외롭게 자랐다. 스스로 보육원 보호종료아동이라 부른다.  실력과 자존심 하나로 버티며 꽤 인정받는  번역가로 성장했다. 오미주는 “평생 같이 살아가야 할 ‘나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늘 노력한다. 연애도 좋지만 ‘나 자신이 없어지도록 죽도록 하는 사랑’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사랑과 자존심이 상충할 때는 자신을 다치지 않게 하도록 선택하는 편이다. 따라서 국회의원 아들 기선겸(임시완 분)과의 연애도 쉽지 않다. 자기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해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서단아는 재벌가에서 태어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늘 무언가를 빼앗기며 살아왔고, 더 이상 빼앗기지 않기 위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미대생과의 러브라인도 자기자신에 집중하고 자신을 지켜나가면서 전개된다. ⓒJTBC ‘런 온’
서명그룹 상무 서단아는 재벌가에서 태어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늘 무언가를 빼앗기며 살아왔고, 더 이상 빼앗기지 않기 위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미대생과의 러브라인도 자기자신에 집중하고 자신을 지켜나가면서 전개된다. ⓒJTBC ‘런 온’

마음의 언어 배우며 성장하다

또 한 명의 여성은 재벌가 3세 서단아(최수영 분)다. 특권이 일상인 금수저 세계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살지만 원칙과 실력을 갖췄다. 재벌가에서 태어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늘 무언가를 빼앗기며 살아왔고, 더 이상 빼앗기지 않기 위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서단아는 적통의 장녀로 태어났지만 후처의 아들에게 밀려 법적 차녀가 됐다. 실력, 원칙, 도덕 없는 콩가루 집안에서 서단아는 유일하게 상식과 실력을 갖춘 여성기업가다. 내면의 상처가 있는 서단아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워크홀릭의 쿨한 태도로  무장했다.  금수저 특권이 통하지 않는 어린 남학생과 사랑하기 위해 뒤늦게 ‘마음의 언어’를 배워나가는 서단아. 그녀의 러브라인 역시 자기자신에 집중하고 자신을 지켜나가면서 전개된다.

런 온에서 선악의 기준은 존중이다. 자기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선하고 그 반대로 남을 무시하고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나쁘다. 육지우, 오미주, 서단아 같은 주체적 캐릭터들과 그들의 파트너인 남성들은 착한 세계에 속한다. 오미주의 연애 상대 마라토너 기선겸, 서단아의 파트너 미대생은 상대를 극도로 존중하고 조금이라도 상처를 줄까 전전 긍긍하는 ‘여성성’이 높은 남자들이다. 육지우가 자신의 일 때문에 육아에 소홀히 했지만 반듯하게 잘 자라준 아들 기선겸에게 고맙고 미안해하는 건 엄마로서 자녀에 대한 존중이다.

반대로 악인은 가족을 존중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마초들이다. 육지호의 남편이자 기선겸의 아버지 기정도는 대선을 노리는 4선 국회의원이다. 당대 최고의 배우와 결혼하고 남매를 모두 스포츠 선수로 키워 인적 자원으로 활용 중이다. “네 인생이 어떻게 네 거야?”, “네 인생의 소유권은 나한테 있어” 이런 류의 '막돼먹은' 발언이 어울린다.  목표달성을 위해 반칙과 비리를 저지르는 데도 능숙한다. 서단아와 기선겸의 아버지들은 본인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자녀들의 결혼을 '기획'한다. 원치않아도 일단 결혼하고 나서 맘대로 살라고 강요한다. 권위주의, 형식주의, 황금만능주의를 상징하는 아버지 세계에 맞서 새로운 세대가 자기 자신을 찾아나가는 이야기가 드라마의 이야기 한 축을 이룬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지만 자극적인 대사나 막장 요소가 적은 탓인지 시청률은 3%대로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상큼한 배우들이 뻔하지 않은 대사를 찰지게 구성하며 새로움을 보여주니 시청률 이상의 기쁨을 드라마였다. 박시현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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