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근친 성폭력 미투 확산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요구하는 한국의 ‘공폐단단’

 

영화 '셀레브레이션'의 한 장면. 영화는 친부성폭력 피해자가 침묵을 깨고 아버지를 직면해 도덕적 처벌을 쟁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진='셀레브레이션'
영화 '셀레브레이션'의 한 장면. 영화는 친부성폭력 피해자가 침묵을 깨고 아버지를 직면해 도덕적 처벌을 쟁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진='셀레브레이션'

 

독자를 절망과 죽음에 몰입된 인물들과 밀착시켜 죽음과의 거리를 좁혀주는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독보적이다. 그의 단편소설,’인스부르크 상인 아들의 범죄(1967)’의 주인공인 게오르크는 부모한테 ‘짐승같은 폭력’을 당했다. <내가 그에게 왜 우냐고 물으면 그(게오르크)는 그 무대의 커튼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그 끔찍한 장면…늘 보이고 들린다는 것이다. 자면서도… ‘아버지’ ‘어머니’ ‘생가죽 채찍’ ‘지하실’ 같은 말을 했다.> 화자는 게오르크의 룸메이트이다. 결국 게오르크는 자살한다. 아들의 자살은 그 자신과 가족에게 저지른 범죄라고 게오르크 아버지가 말했다. 하지만 룸메이트는 게오르크를 파멸시킨 당사자가 그의 아버지인 것을 잘 안다. 게오르크가 장애아라고 당했던 짐승같은 폭력에 대해서 숨기지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게오르크가 감금과 구타가 아니라 성폭력을 당했었다면 룸메이트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침묵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근친성관계는 사회적 금기이기 때문에 친족성폭력이 벌어지면 피해자는 무거운 침묵에 눌려지기 쉽고 치유할 수 없는 고통속에서 살아가게된다. 치유와 생존을 위해서 피해자는 그 침묵을 먼저 깨야하는데 그러기위해선 모진 결단과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토마스 빈테베르그 감독의 덴마크 영화 ‘셀레브레이션’(1998)은 친부성폭력 피해자가 침묵을 깨고 아버지를 직면해 도덕적 처벌을 쟁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네 명의 자식 중 쌍둥이 남매가 아버지의 성폭행 피해자다. 피해자 아들 크리스찬은 아버지의 거창한 60세 생일파티에 초대돼 집에 온다. 그는 축하 만찬에 참석한 가족들과 친지들 앞에서 아버지한테 어린날 당했던 성폭행을 회상하듯 폭로한다. 참석자들은 당황하면서도 짓궂은 농담을 들었다는 듯 슬쩍 수습하고 넘어간다. 크리스찬은 어린 남매를 아버지가 어떻게 성폭행했는지 재차 폭로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어려서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 기질이 있었다며 상상력이 과도하다는 듯이 나온다. 폭로를 고수하던 크리스찬은 집밖으로 쫓겨나고 나무에 묶인다. 참석자들은 좀 어수선해도 파티를 이어간다. 크리스찬은 느슨히 묶였던 손을 풀고 온힘을 다해 파티장에 돌아와 아버지의 범죄를 다시 증언한다.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인 쌍둥이 린다가 아버지의 성폭력때문에 자살했단 사실을 알게 된 여동생 헬렌이 용기를 내서 크리스찬편에 서면서 가해자 친부편에 섰던 사람들이 더이상 친부의 성폭력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게 만든다. 

영화는 가족, 친척과 가까운 지인들까지 ‘대가족’ 범위에서 친부의 성폭력 피해를 폭로해서 인정받고 가해자를 도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전투인지 예리하게 짚어간다. 모든 것을 걸고 치뤄야하는 전투와 같다. 친족성폭력은 그처럼 침묵을 깨고 범죄를 폭로하기가 힘들어서인지 예외적으로 벌어지는 충격적인 범죄로 착각할 수 있지만 현실에선 ‘평범’하리만치 광범하게 벌어지고 있다.
2018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전체 성폭력범죄의 10.9%가 친족 성폭력이다. 무수한 친족 성폭력이 벌어지고 있지만 피해자의 치유생존과 피해예방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활성화되고 있지 못하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친족 성폭력 범죄 공소시효 10년은 50% 이상의 피해자들이 성년이 된 후 10년이 지나 피해신고를 하기 때문에 범죄자 처벌을 막는 주요인이 되고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이며 성폭력상담가인 김영서는 ‘평범’하게 도처해서 벌어지고 있는 친족성폭력에 대한 경종을 울리면서 피해자치유, 범죄예방과 사회안전을 위해서 공소시효 폐지를 요구한다. 그는 ‘가장 오래기다린 미투’로 침묵을 깨고 범죄를 처벌할 수 있도록 공소시효 폐지를 요구하는 ‘공폐단단’에 참여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 평범(친족성폭력의 편재)을 깨고, 우리의 평범을 찾자’는 공폐단단의 외침은 정당하고 절실하다. 

변호사이자 피해자의 쌍둥이 남매인 카미유 쿠슈네르는 최근 펴낸 책 ‘대가족(La familia grande)’에서 뒤아멜의 성폭력 의혹을 폭로했다. ⓒ프랑스 LCI 방송화면 캡처
변호사이자 피해자의 쌍둥이 남매인 카미유 쿠슈네르는 최근 펴낸 책 ‘대가족(La familia grande)’에서 뒤아멜의 성폭력 의혹을 폭로했다. ⓒ프랑스 LCI 방송화면 캡처

 

지난 1월 7일 프랑스에선 계부의 성폭력을 폭로한 책, '대가족'이 출간돼 대대적인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피해자보호와 가해자 처벌에 관한 법 개정, 범죄 예 등에 걸쳐 뜨거운 논의가 일 고있다. 저자인 카미유 쿠슈네르는 30년도 전인 14살 때에 쌍둥이 남자형제가 누구에게라도 말하면 자신은 수치로 죽어버리겠다면서 13살 때 시작된 계부의 성폭력에 ‘안된다’고 말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해서 계부의 범죄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계부는 프랑스 정계 학계 재계와 문화출판미디어에 걸쳐 막강한 위세를 갖고 있던 법정치학자인 올리비에 뒤아멜인데 ‘대가족’이 나온 이후 모든 직책들을 내놓고 수사를 받고 있다.

피해자의 친부는 ‘국경없는 의사들’의 공동창립자이자 두번의 장관을 지낸 베르나르 쿠슈네르이고 2017년 사망한 친모 에블린 피지에는 법학교수며 문인이었다. 2008년 피해자 아들은 친모에게 처음으로 계부의 성폭행을 알렸지만 친모는 아들 말을 믿지 않고 계부 편에 서서 침묵으로 범죄를 은폐시켰고 대가족과 같은 친지써클의 인물들도 뒤아멜의 범죄를 침묵으로 은폐해왔다고 저자는 폭로했다.

책 출간 이후 가장 오래 기다려온 미투, ‘#Metooinceste’(미투엥세스트)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2020년 프랑스의 한 통계에서 5~10%의 사람들이 아동청소년기 근친 성폭력의 피해자라고 보여주고 있는데 김영서와 같이 쿠슈네르도 친족 성폭력은 가족의 배경에 상관없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부합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프랑스는 근친 성폭력 공소시효를 현재 20년에서 머지않아 30년으로 10년이 더 연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쿠슈네르는 책을 쓰고서 자유로워졌다면서 수많은 피해자와 가족들이 자신의 책에서 용기를 얻어 침묵을 깨고 자유롭게 될 수 있길 바란다면서 자신도 2020년 1월에 출간된 책 ‘동의’가 그에게 침묵을 깨는 용기를 주었다고 언급한다. ‘동의’ 저자인 바네사 수프 링고라는 14살 때에 50대 저명한 문인인 ‘가브리엘 마츠 네프’와 가졌던 관계에 대해서 쓰면서 청소년과 성인의 성관계를 취향의 문제나 권리의 문제로 차치하면서 개입하지 않았던 사회의 그릇된 행동을 설득력 있게 비판하면서 미성년자들이 성인에 의해 어떤 식으로 착취당할 수 있는지 경고했다. 2017년 말 시작된 미투 운동은 수프 링고라의 ‘동의’를 거쳐 쿠슈네르의 ‘대가족’까지 미투 혁명에 불꽃을 이루면서 프랑스 사회를 변혁시켜가고 있다. 한국에선 김영서와 ‘공 폐단단’ 피해 생존자들이 자신들의 치유와 생존을 위한 사회운동을 통해서 한국 사회를 깊숙이 변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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