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젠더 프리즘] 피해자 ‘꽃뱀’ ‘은처’ 취급… ‘침묵의 카르텔’ 견고
[불교계 젠더 프리즘] 피해자 ‘꽃뱀’ ‘은처’ 취급… ‘침묵의 카르텔’ 견고
  •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소장
  • 승인 2021.02.05 06:00
  • 수정 2021-02-04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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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젠더 프리즘] ③불교계 미투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2017년 8월 2일 성범죄 가해자인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A스님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 모습. 사진=나무여성인권상담소 제공
지난 2017년 8월 2일 성범죄 가해자인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A스님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 모습. 사진=나무여성인권상담소 제공

 

2018년 전세계 불교계의 정신적 스승인 달라이 라마는 네덜란드를 방문해 불교 교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났다. 불교 지도자들의 성범죄가 한두 번도 아니라며 피해자들을 지지하며 불교지도자들의 성범죄를 1990년대부터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미투(MeToo) 운동이 일어나며 티베트불교 교단 내에도 ‘미투 구루’ 운동이 일어난 것을 인정하고, “종교 지도자들의 성폭력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 지도자라도 법 위에 있을 수 없기에 성범죄로부터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생에 대한 자비심과 지혜를 강조하며 서구에서 급속하게 확장세를 보였던 티베트불교 내 성폭력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달라이라마가 불교지도자들의 성폭력을 꾸짖고 나선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불교계 성폭력 사안은 다른 종교계와 유사하게 피해가 잘 드러나지도 않고, 어렵게 피해를 드러낸다고 해도 피해자 보호 조치가 잘 이뤄지고 않고 있다. 오히려 집안 문제를 교단 바깥에 알려 불교계를 욕먹게 한다면서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앞서는 경우가 많고, 가해자에게는 관대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몇 해 전 불교계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스님의 여성 직원 성추행 사건은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황당하게도 그는 이사장직을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누군가 나쁜 의도로 피해자를 사주했다거나, 사건이 진실과는 달리 부풀려져서 엉뚱하게 이사장스님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등 왜곡된 소문들이 무성했다.

또한 최근 한국에서 상좌불교 교리를 가르치고 전통 수행법인 ‘위빠사나’를 지도하며 포교에 앞장섰던 한 미얀마 승려의 범계 행위와 성폭력 사건 역시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이 사건은 몇 년 전 이미 선원 관계자에게 사건을 드러냈음에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여성신도가 그 스님을 유혹해 계율을 어기게 만들었다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피해자는 선원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력을 수행자 욕망 문제로 접근

대부분의 기성 종교가 그렇듯이 종교 지도자와 신도의 관계는 매우 위계적으로 신도의 무조건적인 복종이 전제된다. 특히 종교지도자가 사회복지기관이나 종교단체 등의 대표인 경우, 영적 교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직장 상사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기 때문에 종교적인 권위는 물론 인사권에 맞서야 하므로 그 피해를 드러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종교적 위계가 강한 교단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성폭력을 인권침해나 폭력으로 보지 않고 수행자 욕망의 문제로 다루거나 신심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해자가 남성 종교지도자이고 대부분의 피해자는 여성이다 보니 여성이 유혹해 욕망을 이기지 못하여 계율을 어겼다고 보는 것이다. 불교경전에는 수행자를 남성으로 전제한 경우가 많아 여성을 유혹자로 비유하며 그에 유혹당하지 말고 정진할 것을 견책하는 내용들이 있다. 성폭력이 사건이 발생하면 종교지도자가 가진 힘과 권위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보기보다는 성적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잠시 실수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둘째, 성폭력을 성폭력이라고 인지하기 어렵다. 내면화된 종교적 교리와 수행이라는 삶의 가치, 수행공동체라는 끈끈한 소속감이 성폭력을 은폐하게 하고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 평소 종교지도자에 대한 존경심이 높았다면 피해자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어렵고 이를 거부해야 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망설이게 되고 무엇보다 신앙심이 의심받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소위 깨달았다는 종교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갖는 집단이라면 문제제기를 했을 때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깼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자신이 믿는 종교가 비난받을까 피해자들은 ‘나만 참으면 된다’고 포기하게 된다. 

종교인 대상 성인지 교육 필요

셋째, 불교는 남의 허물을 보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볼 것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경전에는 그에 이어서 “부득이하게 남의 허물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때를 놓치지 말고 제때에 해야 하며, 거짓이 아닌 진실로 해야 하고 이로움을 주기 위해서 해야 하며…”라는 가르침도 있다. 그럼에도 가해자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은 나쁜 업을 짓는 것이며 전생의 업을 푸는 일이라며 받아들이기도 한다.

넷째, 성폭력을 예방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종책을 수립하는 등의 시대적 변화에 둔감하다. 20대에 성폭력 피해를 입고 아이를 출산했던 여성이 2017년 당시 조계종단의 호계위원(호계원은 사회에서 법원 역할을 하는 곳으로 호계위원은 법관 역할을 한다)이었던 승려를 성폭력 등으로 경찰에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는 급히 환속원을 제출해 멸빈이나 범계로 처벌받지 않았고 사건 역시 고소권 소멸로 불기소됐다. 독신계율을 중시하는 종단에는 ‘은처승’이라는 용어가 익숙하게 회자되는 데 이 성폭력 피해자는 어린 나이에 피해를 입고 무력감, 협박에 의한 두려움, 자포자기,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가해자 곁에서 지내면서 마치 은처처럼 보이는 관계를 몇 년간 지속해왔다. 윤리적으로 비난받는 은처라는 것이 혹시 성폭력이라는 범죄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몇몇 종교지도자들의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다. 공동체 문제임을 직시하고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가 지속되지 않게 하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 교단 차원의 과제를 남긴다. 성폭력은 인권과 연관된 규정되는 사회적 가치이기 때문에 성인권교육이나 젠더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은 종교인의 경우 성범죄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 30대 조계종단 승려가 ‘n번방’에서 공유된 성착취물을 유포한 사건은 불교계도 더 이상 성폭력예방, 성인권교육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을 갖게 하는 일이며 간과해서는 안되는 지경까지 왔음을 경고하는 사건이다. 중생구제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엄격한 위계와 권위에 의해 헌신과 봉사로 성폭력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생생한 기준이 되길 바란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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