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난 국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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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만큼 협업을 잘하는 종족도 드물지만, 한국인만큼 위계를 따지는 종족도 드물다. 그 위계의 구조는 엄격할뿐더러 세밀하고 촘촘하다. 인간관계마다,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이 위계의 구조는 깊이 드리워져 있고, 우리의 아이들은 이 위계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법부터 배운다. (중략) 우리는 왜 그토록 ‘평등과 정의와 형평’을 갈망하면서, 동시에 위계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가? 왜 평등과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뒤로는 학벌과 직업, 연공서열 위계에 집착하는가?” (프롤로그 중에서)

2019년 세대론과 불평등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으며 한국 사회에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 2019)의 저자,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신작이다. 

전작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여전히 위계와 불평등으로 고통받고 있나”에 대한 동시대적인 분석을 담고 있다. 이번 『쌀 재난 국가』에서는 쌀, 재난, 국가라는 세 키워드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경쟁·비교 문화는 어떻게 형성됐는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이해하려면, 동아시아 사회가 반복되는 재난에 대항하여 먹거리(쌀)를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 만든 사회제도와 습속을 먼저 규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한반도에서 고대국가가 형성된 시기부터 현재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이르기까지 ‘벼농사 체제’의 유산을 폭넓게 살펴본다.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차별, 학벌주의, 연공서열과 여성 배제의 구조, 부동산 문제 등 현대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 대부분이 벼농사 체제의 유산과 긴밀히 맞닿아 있음을 밝힌다. 

저자가 제시하는 벼농사 체제의 유산 일곱 가지는 다음과 같다. 우산 재난에 대비한 구휼국가의 발전, 협력과 경쟁의 이중주 시스템인 공동노동 조직, 표준화와 평준화의 기술 튜닝 시스템이 긍정적 유산이다. 

부정적 유산으로는 나이에 따른 연공서열 문화, 연공급 위주의 노동시장, 여성 배제의 사회구조, 시험을 통한 선발 및 신분 유지와 숙련의 무시, 땅과 자산에 대한 집착 및 씨족 계보를 통한 상속이 이루어지는 사적 복지체제의 구조를 들었다.

이러한 벼농사 체제의 유산은 수백, 수천년 동안 진화해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 하 ‘동아시아적’ 혹은 ‘한국적’ 제도가 됐다. 나이와 경험이 많은 농부에게 중요한 의사결정을 맡기던 것이 현대 기업 조직의 연공 문화와 임금제도로 정착했다. 이런 연공서열 문화가 오늘날 한국 사회 불평등 문제의 핵심이며, 가장 먼저 개혁해야 할 문제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철승/문학과지성사/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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