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등 7개 문화예술계 반성폭력운동단위
27일 전주대 박교수 성추행 무죄판결 파기환송 요구 긴급집담회

전국적인 관심과 연대를 요청했다.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문화예술계 박 교수 성추행 사건의 무죄판결 파기환송을 대법원에 요구하는 긴급집담회에서 발언하는 마임창작자 이산 씨.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2018년 ‘연극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전주대 박모 교수 성추행 사건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여성·시민단체가 27일 긴급 집담회를 열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페이스북 생중계된 집담회에는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등 7개 문화예술계 반성폭력운동단위가 참여했다. 이들은 박교수 사건에 대한 2심 재판 과정과, 1심 실형 선고 이후에도 박 교수를 징계하지 않은 전주대를 비판했다. 대법원에 박 교수 무죄판결 파기환송도 촉구했다.

박 교수는 2018년 ‘연극계 미투’ 가해자로 지목돼, 제자와 동료 교수를 성추행한 혐의로 1심 징역형, 2심 무죄를 선고받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중요 부분에서 일관”되고 “경험하지 않으면 진술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진술들이 있다”고 판단해 박 교수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반대로 2심에서는 피해자 진술이 일관성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대법원 선고는 오는 2월 4일로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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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맡은 마임창작자 이산 씨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0일 법리 검토를 시작했는데, 선고 기일이 빨리 고지된 것으로 보아 무죄 판결을 확정하려는 것 같아서 긴급 집담회를 열게 됐다”고 밝혔다.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송원이 발언하고 있다. ⓒ긴급집담회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 캡처
문화예술계 박교수 성추행 사건의 무죄판결 파기환송을 대법원에 요구하는 긴급집담회가 27일 온라인 개최됐다. 이날 집담회 현장에서 송원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긴급집담회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 캡처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아직도 공론화조차 어려워

이날 참석자들은 아직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은커녕 공론화조차 어려운 현실을 지적했다. 송원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활동가는 “학교 내부에서도 문제제기를 하면 학과가 사라진다거나 내부에 불화를 만든다면서 아무 말도 못 하게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며 학생들 사이에서도 불신이 깊어지고, 공론화가 점점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 공연예술계 내에서는 ‘박 교수는 무혐의’라는 말이 떠돌았다며 “어떤 지역 문화예술 단체도 피해자를 지지하거나 관련 성명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전북 지역에서는 ‘미투 가해자’들이 모두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런 분위기가 박 교수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하면 불리하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으면 성추행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가해자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위드유’의 김윤진 안무가는 인맥이 중요한 예술계 특성상 피해 고발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예술계 특성상 주관적 평가, 판단이 정말 중요하며 공인된 시험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대학 내 활동뿐 아니라 졸업 이후에도 공연 활동을 하려면 추천이나 소속 등 교수 중심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말했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에서 활동하는 강윤지 연출가는 공연예술계 내 성폭력이 교육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현실을 지적했다. “공연예술 실습 중 교수님이 만지면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한다”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서도 아니고 성희롱이 뭔지 몰라서도 아니다. 몸의 중심, 발음, 소리, 걸음걸이 등으로 캐릭터를 창조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육과 성희롱이 반복적으로 교차되면 가해자는 언제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변명하고 도망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예술계 박교수 성추행 사건의 무죄판결 파기환송을 대법원에 요구하는 긴급집담회를 27일 열었다.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문화예술계 박교수 성추행 사건의 무죄판결 파기환송을 대법원에 요구하는 긴급집담회가 27일 열렸다.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대학은 학내 성폭력 '방관'하거나 피해자 입 막으려 해

문화예술 분야 대학들이 학내 성폭력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을 묻기는커녕, 방관하거나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다. 송진희 부산문화예술계반성폭력연대 공동대표는 예술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다. 송 대표는 교수의 권력형 폭력은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가 많다며 “심각한 사건도 가해 교수를 파면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 조사 과정에서 2차피해가 발생한다거나, 피해자와 연대자들을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취급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가해 교수의 학과 피해자에게 문제 해결 시도를 그만두라고 종용하거나, 우리도 노력하고 있다, 너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느냐면서 피해자의 입을 막는 행위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여성예술인연대의 김화용 씨는 가해 교수가 외부 심사위원, 자문 등 결정권자의 위치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술계 내 성폭력 가해 교수가 절대 학교 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며 “특히 전통예술이나 클래식 음악·무용 등은 도제식 교육 방식이 남아있다. 입시 과정부터 창작 활동, 구직 활동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게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여성문화예술연합의 신희주 영화감독은 문화예술 분야 대학 정책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문체부와 교육부의 협조 강화 ▲대학마다 예산 및 역량 편차가 커 개별 대학에서 피해자 지원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학교 밖 법·의료 지원체계와 연계 ▲가해 교수가 현업 예술가로서 지원을 받거나 심사를 할 수 없도록 징계 제도 연계 ▲정기적인 성차별 실태조사 통해 개선 방안 마련 ▲학내 성희롱 고충처리기구 운영 내실화 등이다. 신 감독은 “성폭력 문제 해결의 많은 부분이 대학의 자율에 맡겨졌지만 여전히 대학들이 사법 처리 결과를 따르겠다며 교내 성폭력 사건을 방관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집담회에 참여한 7개 문화예술계 반성폭력운동단위는 박 교수 성폭력 사건에 관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송원 활동가는 “2심 무죄 판결 이후 절망과 무력함을 느낀다. 전국적으로 관심 가져주시고 연대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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