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우선’ 연연 않고 성폭력 고발
“누구나 피해자, 가해자 될 수 있다”
메시지 통해 여성들에게 희망 전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혁신위원회 혁신안 발표를 하고 있다. 2020.08.13. ⓒ여성신문·뉴시스
장혜영 정의당 의원 ⓒ여성신문·뉴시스

자신이 겪은 일을 겪었다고 말하는 데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라면 더욱 그렇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공동대표(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의 고발은 그래서 더 의미 깊다. 공개적으로 “어떤 여성이라도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천명한 그들의 고발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는 자양분이 됐다.

인권과 성평등 이슈에 앞장서 목소리를 내온 정의당, 그곳에서 “실질적 성평등 사회 구현”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된 김종철 전 대표가 성추행 가해자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더구나 피해자는 동료이자 현직 국회의원이다. 장 의원은 피해자임을 스스로 드러내며 “피해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저에게 닥쳐올 부당한 2차 가해가 참으로 두렵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만일 피해자인 저와 국회의원인 저를 분리해 영원히 피해 사실을 감추고 살아간다면, 저는 거꾸로 이 사건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이라며 피해 사실을 드러낸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장 의원은 특히 “제가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은 결코 제가 피해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성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들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한, 누구라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수형 기자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공동대표 ⓒ홍수형 기자

이보다 앞서 신 대표는 준강간치상 사건의 피해자로 법정에 서야했다. 그는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서울 서대문구갑에 출마하며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임을 밝혔다. 가해자는 신 대표가 8년간 몸담은 녹색당 소속 당직자 A였다. A는 지난해 2월 ‘허위소문을 없애는데 도움을 주겠다’며 신 대표를 유인해 성폭행하고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1심 재판부는 1월 22일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A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고 가해자를 법정구속했다. 재판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A측 변호사는 ‘피해자다움’을 문제 삼았다. 신 대표는 증인신문 때 “성폭행을 당했는데 어떻게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진짜’ 성폭력 피해자라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럼에도 신 대표는 무너지지 않았다. 가해자의 엄벌을 요구하는 여성 연대가 신 대표 곁에 있었다.

두 사람의 용기로 사회는 조금씩 변화한다. ‘피해자다움’과 ‘가해자다움’은 없다는 사실과 함께 시스템을 통해 성폭력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겼다.

장 의원은 입장문에서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남성조차 왜 눈앞의 여성을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번번이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졌다. 현직 국회의원도 ‘여성’으로 위치시켜 성범죄 피해자를 만드는 일상화된 ‘강간 문화(rape culture)’에 대한 문제제기다. 정치권은 이제 “이 질문을 직시해야 하고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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