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발표한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
2차 피해를 받던 피해자에게는 너무도 절실했던 '사실 확인'
사실은 있으나 조치는 없다
2차 가해에 대한 조사와 징계까지 이어져야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은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출범 우리는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기자회견을 열고 한 활동가는 팻말을 들고 있다. ⓒ홍수형 기자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은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출범 우리는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기자회견을 열고 한 활동가는 팻말을 들고 있다. ⓒ홍수형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피해자에게 벌인 일련의 언동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25일 발표했다. 2020년 7월 박 전 시장에 대한 직권조사 실시 결정 후 6개월 만의 결론이다.

이번 직권조사 결과의 가장 큰 성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사건 발생 직후 김주명, 오성규 전 비서실장, 민경국 전 인사기획비서관, 신승목, 김민웅 등이 남발한 거짓 허위 사실과 그에 따른 2차 피해를 생각하면 피해자에게는 이런 사실확인이 너무도 절실 했을 것이다.

인권위는 수년간 이어진 박원순 시장의 성폭력의 내용을 밝혔다. “박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성추행을 했다고 한다. 박시장 지지자들은 그동안 ‘증거를 내놓으라’고 윽박 질렀지만 해당 사실은 피해자의 일관적인 진술 뿐 아니라 박시장의 부적절한 문자를 본 참고인들의 진술, 그리고 피해자 핸드폰의 포렌식 증거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피해자에 사적 노무 지시 및 수행 확인 또한 진실로 확인되었다. 피해자는 자신의 업무 외에도 “샤워 전・후 속옷 관리, 약을 대리처방 받거나 복용하도록 챙기기, 혈압 재기 및 명절 장보기 등 사적영역에 대한 노무까지 수행"해야 했다. 또한 피해자가 비서실에서 일하며 발생하는 성폭력과 성차별노동에 의한 고충에 전보를 요청했고, 그 요청은 수년간 반려 됐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위원회는 해당 사실에 대해서 “피해자는 비서실 근무 초기부터 비서실 업무가 힘들다며 전보 요청을 한 사실 및 상급자들이 잔류를 권유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고 적시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인권위는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를 의결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한다. 2021.01.25. ⓒ사진공동취재단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인권위는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를 의결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한다. 2021.01.25.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4월 서울시 비서실 성폭력 사건과 박원순 성폭력 사건에 대해 법원과 인권위 모두 같은 판단이다. 모두 박 전 시장의 성폭력과 그로 인한 피해자가 심각한 피해를 사실이라 명시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그 다음이 없다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 사실 확인 이후 필요한 것은 바로 책임자에 대한 징계다. 성폭력에 대한 단호한 처벌은 그 자체로 사회 전 구성원을 위한 교육이며 사건 예방 장치 중 하나다. 특히 해당 사건은 지난 반년 간 전현직 비서실장 발 2차가해가 있었기 때문에 징계와 같은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권위는 그저 공무원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매뉴얼 미비를 탓했다. 인권위는 대부분의 고충처리 시스템이 가해자의 성희롱 여부에만 맞춰져 있다고 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서울특별시 성희롱 예방지침>에서는 성희롱,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2차 피해 예방과 2차 피해 발생 시 조치해야 하는 것을 기관장의 책무로 하고 있으며 서울시가 성희롱/성폭력 방지조치를 위한 연간 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있다. 또한 징계조항에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은폐하거나 피해자에게 제10조제1항 각 호의 불이익 조치에 해당하는 추가 피해가 발생한 경우 관련자에 대해 행위자에 준하여 징계 할 수 있으며, 제10조제2항(2차 피해 방지, 피해자 근로권 보호 등) 에 따른 적절한 조치 또는 제10조 제4항에 따른 비밀유지 불이행으로 인한 추가 피해에 대해서도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되어있다. 이번 인권위 조사에서는 전현직 책임자들의 행위가 이 조항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또한 인권위는 피해자 휴대전화의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객관적 자료를 확보했지만 박시장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결과는 입수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박시장 업무용폰이 경찰 사건결과 발표후 며칠 만에 유가족에게 인계된 바 있다. 박시장 업무폰은 피해자의 피해를 밝힐 중요 증거다. 서울시는 박시장 업무 폰을 중요 증거 자료로 보관해야 마땅한데 그러지 않았다. 사라진 서울시 자산의 업무폰, 해당 사건의 부적절성이 짚어지지 않았다. 또한 사적노무의 건에서 약을 대리처방 받은 내용이 나오지만 의료법 위반까지 연결시키지 못했다.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업무폰 명의변경 및 인계 사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업무폰 명의변경 및 인계 사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너무 박한 평가일지 모르겠지만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는 절 반짜리 결과다. 인권위가 밝힌 ‘박원순 성폭력은 참이다’ 라는 증명을 바탕으로 박시장 업무폰 포렌식 수사를 포함하여 2차 가해에 대한 수사와 징계, 사적노무, 의료법 위반 위법 여부 판단 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국가의 인권보호 책무를 가지고 있는 최고기관이 이 사인에 대해 평가하는 정도로 밖에 보고서가 나오지 못한 이유, 이번 조사결과가 지난 9월 인권위원장 인터뷰보다 못한 것이 서울시의 전직 비서실장과 박시장 지지자들의 압박 때문이라면 그 또한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사건의 진실 판단은 이렇게 오래 끌 일도 아니었고, 복잡할 문제도 아니었다. 가해자가 도피하지 않았다면, 여성계 대모인 민주당 의원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부르며 제 집단 지키기에 골몰하지 않았다면, 이미 오래 전에 명징한 판정이 나왔을 것이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은 시작됐을 것이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건에서 이른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집단들은 여성 시민의 기대를 배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이라도 서울시는 관련자 징계 조치 절차를 밟아야 하고 민주당은 4·7재보궐 선거에서 후보자를 내지 않음으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겨우 진실의 머리가 드러났을 뿐이다. 박원순 성폭력 사건의 진실은 이제 시작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